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부터 친박 의원들과 ‘문고리 권력 3인방’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1년 3월 당시 박근혜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장 앞에서 안봉근 비서관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새누리당 내에선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정호성 제1부속·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 거취가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비박계는 이들이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친박계는 그간 입을 닫고 있었다. 3인방을 향한 박 대통령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는 까닭에서다.
그런데 지난 12월 18일 친박 중진 정우택 의원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남긴 글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 의원은 “이번 파문에 거론된 관계자들도 더 이상 대통령에게 짐이 되지 않고 국정운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거취 표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정 의원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해 3인방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박 대통령은 인적 개편을 통한 위기 돌파를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때 이뤄졌던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도 박 대통령은 3인방에 대해 “이들이 무슨 권력자냐. 말이 안 된다”며 재신임 의사를 피력하는 동시에 세간의 소문을 일축한 바 있다. 그 후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선 3인방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여기에 검찰 수사 결과 문건 내용이 허위인 것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청와대 내에선 연말 내에 사태가 정리될 것이라는 안도감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현재 새정치연합은 각 계파가 내년 2월 전당대회 채비에 전념하고 있는 터라 이번 사태를 계속 끌고 갈 여력이 그다지 없다. 이재오 심재철 의원 등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3인방 사퇴를 부르짖어 왔지만 이마저도 최근 들어선 주춤한 모습이다.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앞두고 당분간은 현 정권과 마찰은 피하고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원로 자문그룹 7인회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 힘의 원천은 공고한 40%대의 지지율이다. 그런데 지지층이 이탈하고 있다는 건 바로 레임덕으로 갈 수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인적쇄신과 같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향후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인사는 “우리를 비롯해서 청와대 참모, 친박 의원들은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박 대통령에게 (3인방 경질을) 건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친박 의원들 속내는 다소 복잡해 보인다. 박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수행을 위한다는 명분 뒤엔 정치적 이해득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알람시계’는 2016년 총선으로 맞춰져 있다. 이대로 가다간 ‘친박’이라는 꼬리표가 총선에선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공천조차 받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도 팽배하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지금 친박은 갈림길에 서 있다. 김무성 대표 체제 후 가뜩이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데 박 대통령 지지율까지 빠져버리면 친박 결속력은 급속도로 느슨해질 것이다. 친박 의원들로선 박 대통령이 아니라 총선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이번 정윤회 문건 사태가 친박 의원들의 ‘탈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보는 이유다.
정우택 의원
몇몇 친박 인사들은 “3인방은 철저하게 몸을 낮추는 스타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박 대통령과 오래 일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친박 의원은 “권력의 척도는 실력자와의 거리에 있다. 박 대통령과 매일 함께 다니는 3인방이 실세가 아니라면 누가 실세냐”면서 “박 대통령 의원 시절 전화를 걸면 안봉근 비서관이 받아 바꿔줄지를 결정한다.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3인방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개 비서관 맞다. 그런데 상관이 박 대통령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3인방과 친박 의원들 간 불협화음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초선의 한 친박 의원이 박 대통령이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에 타려 하자 3인방 중 한 명으로부터 제지당했다는 얘기도 그 중 하나다. 또 박 대통령 의원실로 급한 보고서를 들고 갔다가 한 시간 이상 기다리고도 그냥 발길을 돌려야했다는 의원들은 여러 명이다. 이들은 3인방이 일부러 ‘물을 먹였던’ 것으로 생각했단다. 한때 친박 좌장이었던 김무성 대표 역시 박 대통령에게 3인방에 대한 문제점을 건의했다가 ‘한소리’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박 대통령이 3인방은 끝까지 안고 갈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의원 때와 지금은 다르다. 결국은 박 대통령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