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장은 “처음부터 이 사건을 검찰에 맡긴 게 잘못”이라며 “특검을 통해 의혹을 종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15일 공개한 문건 유출 경위서 작성자는 누구인가.
“알고 있지만, 아직 밝히기 어렵다. 우리가 이를 공개한 가장 큰 이유는 청와대가 만약 당시(6월경) 이 경위서를 받아들였다면 문건의 유출과 보도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청와대가 묵살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에 대한 보고체계와 감찰체계가 붕괴됐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가장 하고 싶었다.”
―경위서에 포함된 유출 루트 ‘현 민정수석실 행정관(파견 경찰관)→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수사관(청와대에서 복귀)→경찰청 정보분실 경찰관→<세계일보>’와 검찰과 청와대가 지목하고 있는 유출 루트 ‘박관천 경정→서울청 정보분실 소속 최·한 경위’는 다르다. 현재 검찰과 청와대 측은 해당 경위서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 작성한 시기를 보자. 당시 청와대 문건 유출 후 <세계일보>에서 이미 1보를 냈지만, 수사가 진행되거나 무슨 난리가 난 상황은 아니었다. 박관천 경정은 벌써 그만뒀고, 조응천 당시 비서관은 이미 사퇴한 뒤다. 본인의 혐의를 가리기 위해 가짜 유출 루트를 굳이 가공할 이유가 없었다. 난 이 측면을 주시하는 것이다. 다만 (경위서의) 유출 루트를 믿는다는 차원보다는 현재 검찰이 단정적으로, 오로지 최·한 경위를 두고 유출의 주범으로 끝맺을 게 아니라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열어두라는 취지다.”
―결국 현재 검찰의 수사를 믿기 어렵다는 것인가.
“이 사건은 처음부터 검찰이 맡으면 안 됐다. 수사가 안 될 사건이다. 검찰이 뭔가.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휘하 기관이다. 권력 심장부의 비밀스러운 내용을 소신껏 수사할 수 없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김영삼 정부는 정권 말기가 돼서야 수사가 가능했다. 현 정권은 아직 3년이나 남았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기 때문에 무조건 검찰을 욕할 수도 없다.”
지난 17일 박범계 의원의 기자회견 모습.
―검찰에 대한 청와대의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이 뜨겁다.
“크게 세 번의 가이드라인이 있었다고 본다. 첫 번째는 대통령이 ‘관련자 본인들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라고 하셨고, 두 번째는 ‘찌라시’라는 표현이다. 찌라시는 수사할 이유도 없고, 단속하면 그만이다. 정식으로 생산된 문서라면 청와대가 무슨 찌라시 생산소인가. 박근혜 정부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세 번째 가이드라인이 제일 중요하다.”
―뭔가.
“검찰의 수사가 정점에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에서 별도로 특별감찰을 하지 않았나. 그 시기 언론에서 갑자기 ‘7인회’가 등장한다. 7인회가 정윤회 문건 유출의 배후라고 공개된 것이다. 정작 검찰은 이 7인회 모임에 대해 실체가 없고, 그 중심인물인 박지만, 조응천, 박관천(반출에만 관여) 등이 문건 유출에 직접 관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왜 무리해서 감찰을 통해 마치 7인회가 문건 유출의 배후인 것처럼 했을까. 청와대는 결국 정윤회 문건으로 십상시가 드러남에 따라 그 반대 측면인 7인회를 드러낸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검찰 수사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려 했던 것 아니냐.”
―왜 청와대, 특히 김기춘 비서실장은 문건 유출 문제를 계속 무마했다고 보는가.
“청와대는 근거와 출처가 불명확하다고 묵살했다. 하지만 출처는 박지만 쪽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나. 이를 전달한 오 아무개 행정관은 조응천, 박관천, 박지만과 연결된 사람 아닌가(앞서 박 의원은 경위서 작성자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큰 맥락으로는 작성자를 밝힌 셈이다). 앞서 박지만, 정윤회 문건에 대해선 묵살했다고 치자. 그런데 경위서는 왜 묵살했나. 이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다. 결국 앞서 대통령에 보고되지 않은 ‘정윤회 문건’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것 아니겠나. 난 그렇게 해석한다.”
―청와대가 한 경위를 회유했다는 JTBC의 보도가 있었다.
“사실이라면 중요한 것은 회유의 대목이다. 한 경위에 ‘너희들이 유출의 주범이라고 불라’는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이는 검찰의 몫이다. 청와대는 수사가 아닌 감찰이다. 청와대가 할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이는 심각한 수사개입이다. 추정하건데, 아마도 7인회 의혹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떠난) 진술 강요가 회유의 내용이 아니었을까. 그래야 말이 맞다. 회유란 ‘없는 것을 있게끔, 있는 것을 없게끔 하는 것’ 아닌가.”
―야당에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지만 특검 무용론도 만만치 않다. 또 여권이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물론 이 권력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100% 거짓 없이 진실로 규명된다는 기대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문건의 10분의 1이라도 사실이라면 이건 그야말로 국정농단이고 위험한 일이다. 특검을 통해 진실의 10분의 1만 규명되더라도 가야한다고 본다. 또 여당이 만날 하는 얘기가 있지 않나. ‘민생 문제에 발목 잡는다’고. 우리도 국정을 계속 운영해야 한다. 언제나 이 의혹에 매달릴 수는 없다. 그 의혹을 종결시켜야 한다. 최소한 진상 규명이 완벽히 되지는 않더라도, 특검이 ‘파이널 게이트(마지막 관문)’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야 의혹이 사라진다. 여권도 현재의 의혹이 여론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한다면 쉽진 않겠지만, 특검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문제 핵심은 ‘루트와 내용’이다. 문제 해결의 종착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맞다. 두 가지 측면이다. 유출 문제는 일단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 죽은 최 경위와 한 경위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다? 도대체 그 동기가 뭐기에. 일개 정보관이 뭘 믿고 그랬을까. 정보를 다루는 사람은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데 말이다. 다음은 내용 문제다. (비선실세의) 인사 개입 의혹이 난무한다. 유진룡 전 장관과 조응천 전 비서관의 증언이 이미 나왔다. 이를 검찰이 모아서 수사에 반영할까. 쉽지 않다. 결국 해결책은 현재 문제가 되는 사람들을 대통령 스스로 떨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인물은 얼마든지 많다. 이러한 국정쇄신, 인적쇄신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대통령께서) 과연 하실지 모르겠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