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 빌딩.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조엘 코른라이히 부행장은 세계적인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에만 20년간 몸담았던 인물로, 한국씨티은행에서 소비자금융부문을 맡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 부임한 그는 한국에 온 지 1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데다, 임기도 내년 10월까지로 10개월 이상 남겨둔 상태다. 그런 그가 지난 11일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한 뒤 올해 말까지만 근무한 뒤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표면상으로 드러난 그의 사퇴 이유는 ‘이직’이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코른라이히 부행장은 씨티그룹을 떠나 아시아 지역의 다른 금융회사 CEO로 자리를 옮긴다고 한다. 씨티은행 측은 “개인적으로 좋은 기회가 생겨 이직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며 코른라이히 부행장의 사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그의 퇴임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외국계 회사 임직원들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스카우트 제의가 올 경우 과감하게 자리를 옮기는 편이지만, 코른라이히 부행장은 씨티그룹에서만 20년을 근무한 정통 ‘씨티맨’이다. 벨기에 출신인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싱가포르, 러시아, 스페인,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의 씨티은행 지점에 근무하며 소비자금융부문을 책임져 왔다. 그런 그가 하필 한국에서 중도하차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융권에서는 그의 사퇴가 우선 최근 불거진 ‘불건전 행위’ 의혹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씨티은행은 제휴사인 모 카드사로부터 접대를 받고 영업점에 해당 카드의 가입을 유도하도록 하는 지시를 내려 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제휴를 맺은 모 보험사의 상품도 영업점에 할당량까지 정해주고 이를 판매토록 직원들을 독려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일련의 불미스런 일에 코른라이히 부행장이 연루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가 미국 뉴욕 씨티그룹 본사의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씨티은행 측은 이런 소문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코른라이히 부행장이 미국 본사로부터 관련 건에 대해 조사를 받거나 사퇴압박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제휴사 상품을 팔 때는 고객에게 반드시 3개 이상의 상품을 함께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씨티은행의 불건전 영업행위 의혹은 그간 수차례 제기돼 왔던 것이 사실이며, 금융당국까지 개입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연출됐다. 일례로 지난 11월 금융감독원은 씨티은행에 지수연계증권(ELS) 불건전 판매 행위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때도 씨티은행 경영진이 불건전 영업을 직접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당시 씨티은행 임원들은 영업점 직원들에게 ELS 상품을 팔 때 목표 고객을 정한 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SNS) 등을 통해 홍보하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 ELS 판매절차 규정을 위배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월에는 모 생명보험사로부터 고객을 유치해주는 대가로 2500억 원이 넘는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적발돼 ‘기관주의’ 등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코른라이히 부행장의 퇴진이 은행장 자리를 놓고 벌인 경쟁에서 패한 후유증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박진회 행장과 마지막까지 한치의 양보 없는 경합을 벌였던 만큼, 패장으로서 퇴진 수순을 밟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시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1인자 자리를 놓고 싸우던 라이벌 밑에 있기는 아무래도 껄끄럽지 않겠느냐”면서 “패배를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나겠다는 의지로 보는 것이 옳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