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캠벨은 16세였던 1987년 피렐리 달력에 등장한 뒤 세계적 스타가 됐다. 사진은 2005년 달력을 장식한 캠벨.
‘피렐리’사가 이렇게 누드 달력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타이어라는 제품 특성상 지루하고 따분해질 수밖에 없는 마케팅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주 고객인 스포츠카 오너들과 정비사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홍보비 등을 포함해 매년 달력 제작에만 2억 6300만 유로(약 3580억 원)를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누드 달력으로 인해 타이어가 더 많이 팔리느냐는 의문이다. 단지 달력으로 인해 ‘피렐리’사의 이미지가 보다 세련되게 바뀐 것만큼은 사실이다.
피렐리 달력이 인기인 이유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한정판이라는 데 있다. 매년 2만~3만 부만 제작되는 피렐리 달력은 비매품인 데다 오로지 ‘피렐리’사의 주요 고객들-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유통업체, 자동차 제조업체의 임원들에게만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전달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바티칸 교황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렐리 달력은 매년 특별한 스토리를 담아 제작한다. 위에서부터 1969년, 1984년, 1997년 달력.
모델들에게도 피렐리 달력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행운이자 영광이다. 일명 ‘더 캘(The Cal)’이라고 불리는 피렐리 달력의 모델이 된다는 것은 톱모델로서 인정을 받는 동시에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받는 일종의 보증수표와 같기 때문이다. ‘포드 모델’의 미셸 레오는 “피렐리 달력과 계약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박이다. 모든 톱모델들이 피렐리를 거쳐갔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피렐리 달력을 통해 데뷔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나오미 캠벨이다. 1987년 피렐리 달력에 처음 등장했을 때 캠벨의 나이는 불과 16세였다. 그밖에 지금까지 피렐리 달력을 거쳐간 슈퍼모델들로는 지젤 번천, 케이트 모스, 신디 크로포드, 밀라 요보비치, 하이디 클룸, 소피아 로렌, 페넬로페 크루즈, 알레산드라 앰브로시오, 힐러리 스웽크, 미란다 커 등이 있다.
피렐리가 타이어 제조업체인 만큼 처음에는 모델과 함께 타이어가 종종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점차 타이어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고, 현재는 모델들만으로 화보가 꾸며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모델들의 사진만 싣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는 매년 다른 콘셉트 혹은 자극이 필요해졌으며, 어떤 특별한 스토리가 담긴 형태로 제작되고 있다. 이를테면 화제가 되는 어떤 ‘포인트’가 있다는 것이다.
피델리 달력의 1994년 모델 신디 크로포드(왼쪽)와 2012년 모델 케이트 모스.
가령 1987년에는 오로지 흑인 모델들만 등장해서 화제가 됐는가 하면, 1988년에는 처음으로 남자 모델의 사진을 실어서 주목받았다. 당시 피렐리 달력에 등장한 남자 모델들로는 이완 맥그리거, 존 말코비치, 보노 등이 있었다. 2002년에는 할리우드 배우들을 주제로 한 달력을 제작했다. 브리타니 머피, 에이미 스마트, 셀마 블레어, 그리고 조지 부시 대통령의 조카딸인 로렌 부시가 모델로 섰다.
이밖에 2007년에는 당시 71세였던 소피아 로렌이 반라로 카메라 앞에 서서 화제가 된 바 있으며, 2010년에는 미국의 패션사진작가인 테리 리처드슨이 걸출한 톱모델들의 파격적인 누드 사진을 촬영해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2012년 보도 사진작가인 스티브 맥커리가 제작한 달력은 기존의 누드와는 백팔십도 달라진 분위기를 연출해서 피렐리 달력 팬들에게 다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모델들이 속살은커녕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등장했던 것. 한편 50주년 기념판이었던 2013년 달력은 작고한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의 1986년 미공개 달력을 발행해서 또 한 차례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42호인 2015년 달력은 미국의 패션사진작가인 스티븐 마이젤(60)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그가 택한 주제는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섹시한 소재인 ‘라텍스’였다. ‘라텍스’에서 영감을 얻어 열두 달을 표현했으며, 어딘가 포르노 같지만 미적 표현을 잘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중하고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마이젤은 베일에 싸인 사진작가로도 유명하다. 2002년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사진 찍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데다 인터뷰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이에 사람들은 그가 수줍음을 많이 타거나 혹은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얼굴의 주름살 하나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뭐가 정답이든 그가 괴짜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이 사실.
2015년 달력에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캔디스 허핀이 참여해 화제가 됐다.
근래 들어 떠오르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허핀의 몸무게는 90㎏이다. XXL 사이즈의 옷을 입는 그녀는 사실 말라깽이 모델들이 즐비한 모델 업계에서는 튀는 존재와 다름없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대해 당당한 허핀은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이 몸매로 사는 게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번 달력에서 ‘미스 4월’을 맡은 허핀은 검정색 라텍스 의상을 입고 섹시한 매력을 발산했다. 다른 모델들에 비해 거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뚱뚱한 여자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그녀는 “통일된 신체 사이즈를 지닌 모델의 시대는 지나갔다. 여성들은 각자 다른 신체 사이즈를 갖고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밖에 이번 달력에 선정된 모델들로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인 아드리아나 리마, 조앤 스몰스,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캐롤린 머피, 안나 에버스, 캐머런 러셀, 사샤 루스, 카렌 엘슨, 이사벨리 폰타나, 지지 하디드, 라켈 짐머만 등이 있었다.
리마의 경우에는 2005년, 2013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촬영이었다. 2013년에는 당시 임신한 상태에서 촬영에 임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미국의 떠오르는 신인인 19세의 하디드는 이번이 첫 번째 캐스팅이다. 또한 이번 모델들 가운데 최연소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슈퍼모델인 폰타나는 지난 6년 동안 피렐리 모델로 발탁됐을 정도로 ‘피렐리’ 팬들에게서 가장 사랑받는 모델이다.
이번 달력 제작에 참여한 모델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머피의 나이는 40세다. 지난 몇 년간 가장 수입이 높은 톱모델 가운데 한 명인 머피에게 ‘피렐리’와의 작업은 이번이 세 번째다. 10년 만에 피렐리 달력을 통해 속살을 보인 그녀는 “꽉 끼는 라텍스 의상 때문에 촬영 내내 땀이 줄줄 흘렀다”라고 경험담을 소개했다.
영국의 슈퍼모델 겸 뮤지션인 엘슨은 “피렐리 달력은 여성 그 자체에 관한 달력이다. 이번에 촬영에 임한 모델들은 저마다 다르다. 나는 36세에 가까운 35세며, 아이도 둘이나 있다. 몸매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여성을 기념하는 달력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몸매와 다른 사이즈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바로 이 점이 마이젤이 이번 달력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뚱뚱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도, 40대의 중년 모델도, 아이를 낳은 모델도 모두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소피아 로렌 71세 때 반라 촬영 ‘피렐리 달력’ 역사상 최고령이었던 모델은 이탈리아의 배우인 소피아 로렌(79)이었다. 2007년 ‘피렐리 달력’의 모델로 선정됐던 로렌의 나이는 당시 71세였다. 하지만 70대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로렌은 빛이 났었다. 검정색 속옷과 다이아몬드 귀걸이만 걸친 채 침대에 누워 포즈를 취했던 로렌은 페넬로페 크루즈, 힐러리 스웽크, 나오미 왓츠 등 손녀뻘 되는 어린 모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몸매와 미모를 뽐냈다. 로렌은 당시 촬영할 때의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에 “어린 소녀처럼 매우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런 즐거움은 표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촬영 내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깔깔대고 웃었던 로렌의 생생한 표정은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으며, 피렐리 달력을 통해 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또한 로렌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이탈리아 출신답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모두 스파게티 덕분이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