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힌 사람은 장용관씨(가명·45). 장씨는 지난 7년 동안 이웃 횟집에서 광어 숭어 방어 등 활어를 모두 1천여 회(피해액 7천여만원)나 훔쳐온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측에 따르면 그의 도둑질은 지난 93년, 약 10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장씨는 문제의 횟집 맞은편에서 작은 얼음공장을 운영하던 인물. 그러나 ‘야간작업을 한 뒤 출출할 때’마다 그의 직업은 바뀌었다. 뜰채를 들고 건너편 수족관으로 향했던 것.
횟집으로서는 코앞에 커다란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활어를 놓고 벌어진 얼음공장 사장과 회센터 사장의 쫓고 쫓기는 7년간의 추격전을 따라가봤다.
지난 93년 여름 경기도 수원에서 회센터를 시작한 왕종호씨(가명ㆍ39).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단잠에 빠져있던 어느날 새벽녘, 그는 홀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언뜻 잠을 깼다. ‘고양이가 돌아왔나?’ 키우다가 너무 살이 쪄 다른 사람에게 준 고양이가 돌아온 것으로만 생각한 왕씨.
반가운 마음에 불을 밝힌 순간 그는 너무 놀라 졸도할 뻔했다. 시커먼 사내가 수족관에서 광어 한 마리를 건져올린 채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맞은편 얼음가게의 장씨였다.
당시 왕씨의 회센터는 내부에 살림집과 본식당이 있고 외부에 천막으로 만들어진 간이 식당이 함께 있던 상태. 장씨는 아마도 천막이 쳐진 공간으로 침입한 것 같았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애교로 끝날 수도 있던 장씨의 행동이 문제가 된 것은 상습적이라는 데 있었다. 그로부터 또 얼마가 지난 뒤 역시 새벽을 틈타 광어를 훔쳐내던 도중 왕씨에게 적발된 것. 참다못한 왕씨는 “횟감이 필요하면 돈을 내고 사먹을 일이지 이게 무슨 짓이냐”며 따졌다.
그때마다 매번 장씨가 늘어놓은 변명은 ‘얼떨결에’ ‘술기운에’ ‘술안주가 필요한데 문을 연 가게가 없어서’ 등 말도 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몇 차례 정통으로 걸린 것이 찜찜했는지 그 이후 한동안 왕씨의 회센터 수족관에 장씨의 손이 타는 일은 없었다. 아니, 적어도 왕씨가 직접 ‘현장’을 목격하는 일만은 좀체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달 결산을 할 때면 손실이 꼭 십수 마리씩 발견됐다.
워낙 꼼꼼했던 왕씨는 활어 마릿수를 정확히 꼽아두고 있었던 것. 없어지는 것은 활어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손님이 뜸할 때 가게를 잠시라도 비우면 회를 담는 접시나 초고추장까지 수시로 없어졌다.
그때마다 왕씨는 장씨를 떠올렸지만 별다른 증거는 없었다. 가끔 장씨와 마주치면 “고기가 자꾸 없어지는데 혹시 못봤느냐”라며 슬쩍 떠보는 게 고작. 물론 그때마다 장씨는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치곤 했다는 게 왕씨의 설명이다.
사정은 그 후로도 몇 년간 비슷했지만 현장을 포착하기는 쉽지 않았다. 설사 현장을 잡는다고 할지라도 그 당시의 범행 이외의 것을 부인할 게 뻔한 상황. 왕씨로선 그동안 입은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서는 장씨의 활어절도가 상습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야 했다. 왕씨가 엉거주춤하게 있는 동안 더욱 대담해진 장씨는 환한 대낮에도 수족관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번개같이 활어를 훔쳐가기도 했다.
고민 끝에 왕씨는 가게 한켠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난 3월 30만원을 들여 구입한 카메라는 잦은 오작동으로 왕씨를 애먹였다. 결정적으로 수족관에 손을 대는 장씨의 모습이 잡히더라도 선명하게 식별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화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즈음 왕씨를 더욱 화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날 왕씨의 아들(16)이 아침에 집을 나서다 초고추장과 간장을 들고 가는 장씨를 발견한 것. 당황한 아들은 “아저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라며 따졌지만 장씨는 너무도 태연하게 “응, 부모님에게 이거 좀 가져간다고 그래라”라며 바람같이 사라졌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왕씨는 아예 휴대용 캠코더로 범행 현장을 직접 포착하기로 작심했다. 가장 의심되는 시간대인 새벽 5시 무렵부터 캠코더를 들고 나선 왕씨. 하지만 이상하게도 장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과외의 잠복근무가 열흘 가까이 이어지자 무엇보다 왕씨의 생활이 먼저 피폐해졌다. 틈만 나면 캠코더를 들고 수족관을 지킨 탓에 피곤에 지쳐 가게 문을 오후 늦게야 열기도 했다. 그런 남편을 보고 왕씨의 아내가 먼저 ‘활어도둑 잡다가 당신 먼저 잡겠다’며 만류를 했을 정도.
그러던 지난 6월 초 왕씨가 장씨의 범행시각을 파악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느날 새벽 4시30분께 상가에서 밤을 새우고 돌아오다 건너편에서 얼음공장 주위를 분주하게 오가는 장씨를 발견한 것. 순간 왕씨의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내가 헛일을 했구나. 그래 새벽 4시다’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왕씨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렌즈를 새벽 4시를 향해 맞춰놓은 왕씨는 짧은 기간 동안 무려 18차례의 절도행각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를 신고한 것은 아니었다. 장씨를 찾아가 ‘이젠 활어 도둑질을 중지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것. 하지만 지난 7년간 이어져온 장씨의 활어 절도행각은 지난 15일까지도 그치지 않았고, 왕씨는 결국 경찰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