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과 정윤회 문건 사건 시점, 등장인물, 권력형 사건 등 유사점
- 굿모닝 윤창열 정대철 희생양, 청와대 문건은 박관천 희생양 분위기
- ‘윤창열 리스트’ 등 온갖 소문과 루머가 나돌았지만 실체 규명 실패
현 정권 비선 실세로 지목받고 있는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의혹 문건’ 사건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11년 전 노무현 정권 초기에 불거진 이른바 ‘굿모닝 게이트’ 사건이 데자뷰로 오버랩 되고 있다. 두 사건이 불거진 시점과 등장인물, 권력형 사건, 검찰 수사 및 결과(?) 등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윤창열 전 회장.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굿모닝게이트’는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6월에 터졌고, ‘정윤회 문건’ 사건은 박근혜 정부 집권 2년차에 발생했다. 등장인물 또한 화려했다. 굿모닝게이트에는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정대철 대표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 인사 40여 명이 리스트에 오르내렸다.
정윤회 문건 사건에는 정 씨를 비롯해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핵심 참모진 등 여권 핵심 실세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여권 핵심 실세들이 연루된 의혹을 받았던 만큼 권력형 사건으로 분류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도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에서 정윤회 사건 또한 용두사미로 막을 내릴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03년 정관계 로비 파문을 일으켰던 쇼핑몰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지검 특수2부(채동욱 부장검사)는 윤창열 전 회장의 대형 사기극으로 결론 내렸다. 당시 정관계를 비롯한 검경 로비 의혹 및 특혜 분양 의혹에 대해서는 별다른 수사성과를 내지 못해 부실 수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40여 명의 리스트가 나돌았던 정치권 인사들 중에서는 정대철 전 의원만이 유일하게 구속됐다.
현재 정윤회 문건 사건 수사도 지지부진하다. 청와대 문건 유출 경위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청와대 문건과 ‘박지만 미행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만 구속했을 뿐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6일 오전에 문건 유출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피의자신분으로 재소환했지만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단서를 확보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특히 검찰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이나 ‘박지만 미행보고서’ 등에 적시된 내용을 이미 허위로 결론을 내리고 문건 작성자 및 배후자, 유출자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검찰은 정윤회 씨와 이른바 ‘십상시’ 회동 의혹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루머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이 청와대 문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꼬리 자르기’ 식으로 흐르고 있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청와대 문건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찌라시(증권가 정보지)’라고 일축한 발언이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윤창열 전 회장과 정대철 전 의원이 ‘굿모닝게이트’ 사건의 희생양이 된 것처럼 청와대 문건 사건은 구속된 박관천 경정을 희생양으로 여권 실세 등 모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굿모닝게이트 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6월 만기 출소한 윤창열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11년 전 굿모닝게이트의 실체에 대해 털어놨다.
무엇보다 윤 전 회장은 정 전 의원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유신독재 체제에서 목숨을 바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신 정일형 박사님과 실천력과 정의와 봉사의 여신이신 이태영 변호사를 남들이 평가하는만큼 나 역시 존경하고 흠모해 왔다”고 전제한 뒤 “바로 그 자제분(정대철)의 평소 정치철학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때 내 양심속의 의리가 발현됐고, 아무 사심없이 정치적으로 헌금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 전 회장은 항소심 결심 공판때 “정 전 의원에게 전달한 돈은 순수한 정치자금이었다”고 양심선언을 해 검찰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사진=서울 중구 을지로 6가에 위치한 굿모닝시티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렇다면 당시 나돌았던 ‘윤창열 리스트’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난 2003년 6월에 수면위로 부상한 굿모닝게이트의 발단은 의외로 단순했다. 굿모닝시티 개발사업 초기 윤 전 회장이 사업부지를 물색하고 있을 당시 400억대 부지 매입에 관여했던 A 씨의 투서가 발단이 됐다. 윤 전 회장은 “A 씨가 부지매입 과정에서 예상금액보다 싼 가격에 거래를 성사시켜주겠다고 나서 일을 맡겼지만 실제로 A 씨는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며 “그렇지만 그동안의 수소를 인정하는 취지에서 수억원을 사례비로 건넸는데도 A 씨는 수억원을 추가로 요구하며 오랫동안 괴롭혔다”고 회고했다.
윤 전 회장은 A 씨의 요구를 묵살했고, 결국 A 씨는 문건을 만들어 행정기관과 사정기관에 보냈다. 이후 문건 내용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정관계 인사를 비롯한 유력인사 40여 명이 오르내리는 이른바 ‘윤창열 리스트’로 확전됐고,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당시 청와대 핵심라인에 포진해 있던 386 실세들을 중심으로 한 신주류와 당권파인 구주류간에 권력암투설이 설득력 있게 나돌기도 했다. ‘정윤회 문건’ 사건을 둘러싼 여권 내 권력암투설이 나돌고 있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윤 전 회장은 “인간말종같은 사람의 투서가 게이트 사건으로 확대될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윤창열 리스트’ 등 온갖 소문과 루머가 나돌았는데 구속된 상황에서 어떤 항변이나 해명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윤 전 회장은 옥중에서 쓴 ‘굿시티 전쟁’을 통해 “내 잘못의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누구에게나 인정할 준비가 돼 있다”며 “굿모닝시티 분양 건으로 인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석고대죄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윤 전 회장은 “당시 검찰 수사가 기획수사 형태로 진행됐고, ‘대어(정대철) 사냥’에 초점이 맞춰져 굿모닝 분양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며 “재판부 또한 당시의 ‘마녀 사냥’ 분위기에 도취돼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전 회장의 재판 과정에서 일부 방송사와 유력 일간지들은 “윤 전 회장이 대출 사기에 개입하거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정정보도를 게재하는 등 마녀사냥식 보도를 인정하기도 했다.
또한 굿모닝시티 계약자협의회는 법무부 장관에게 윤 전 회장을 선처해 줄 것을 요청하는 처벌불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협의회는 당시 탄원서를 통해 “윤 전 회장은 아직도 사리사욕을 버리지 못한 일부 전직 임원 등 주변 인물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피해를 당한 수분양자들을 위해 차명으로 등기돼 있던 토지 등 여러 건의 재산을 계약자협의회에 반환하여 피해구제에 협조했고, 아직도 굿모닝시티 수분양자들이 납부한 분양대금을 불법적으로 편취해 부당이득을 취한 불법행위자들의 재산을 반환받는 일에 협조함으로써 선량한 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윤 전 회장에게 아직도 굿모닝시티에 미련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윤 전 회장은 깊은 한 숨을 들이킨 뒤 말문을 이어갔다.
먼저 윤 전 회장은 “10년이란 세월을 옥중에서 생활하면서 3번이나 기절을 했다. 억울한 만큼 정부에 대한 불신도 많았다. 하지만 내 잘못과 과실도 분명 있었던 만큼 인내하면서 조용하게 내실을 다지고 몸 관리에 신경을 썼다. 출소 후에도 1년 6개월 동안 몸 관리에 치중하면서 사업구상에 몰두했다.”고 옥중 생활 소회 및 출소 후 근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사업가는 운명인 것 같다. 잘하면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 및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반면 잘 못하면 독박을 쓰는 수 밖에 없다”며 “굿모닝시티에 대한 애증이 많은 만큼 현 상황을 잘 살펴보고 있다. 서두르거나 무리하지는 않겠지만 관계자들의 권유가 잇따르고 분위기가 조성될 경우 결자해지 차원에서 2선에서 돕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고 강조했다.
과연 숱한 화제와 뒷말을 무성히 남긴 굿모닝게이트 사건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정치적 판단 및 사법부의 결정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존재한다. 따라서 청와대 문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정치적 눈치를 살피지 않고 오로지 실체적 진실만을 파헤쳐 11년 전 굿모닝 사건과 오버랩되지 않는 신뢰받는 검찰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