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즈 윤락으로 파문을 몰고온 구씨는 보균자 등록 3~4개월 전에 감염사실이 첫 확인된 것으 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 ||
지금까지 언론보도로 알려진 구씨의 ‘활동 지역’은 경남 김해와 전남 여수, 그리고 경기도 화성 등 3곳. 하지만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구씨는 이들 지역 이외에도 경남 고성과 경북 영주, 포항과 부산 등지의 다방에서 수많은 남성들과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맺어왔던 것으로 밝혀져 또 한 차례 에이즈 후폭풍이 이들 지역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구씨가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시기도 언론에 보도된 지난 98년 6월(부산 북구보건소)이 아니라 그해 2월(경남 고성보건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구씨는 이 기간 동안에도 에이즈에 감염된 채 영남 일대의 다방을 전전하며 윤락을 해왔던 것으로 밝혀져 구체적인 실태파악과 역학조사가 시급한 실정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구씨 자신은 이 같은 엄청난 ‘범죄’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실제로 지난 7일 오전 김해경찰서에서 만난 구씨는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미처 몰랐다”며 쓴웃음을 지어 주위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다. 먼저 그녀가 살아온 지난 28년간의 삶을 추적해 봤다.
희대의 ‘에이즈 윤락녀’ 사건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구명애씨의 첫번째 직장은 엉뚱하게도 신발공장이었다. 부산시 북구 구포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출해서 사상구에 있는 신발공장을 찾았던 것.
이곳에서 몇 년을 근무한 구씨는 공장 동료의 소개로 스무 살 되던 해 첫번째 남편을 만나게 된다. 그해 사내 아이까지 얻은 둘은 일년 뒤인 지난 95년 정식 결혼에 이르게 되지만 성격차이로 3년 만에 이혼하고 만다. 구씨는 이혼 이후 다시 원래의 집인 구포로 돌아왔다.
그녀가 ‘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질이 좋지 않은 친구 탓이었던 것 같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들에 따르면 최근까지 그녀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고향 친구들은 모두 2명. 공교롭게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은 이미 이혼을 했고 또 다른 한 명도 최근 이혼 소송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유난히 놀기를 좋아했던 이들 셋은 모이기만 하면 구포에 있는 나이트클럽이나 술집, 노래방을 다니곤 했다. 이 과정에서 구씨는 자연스레 남자를 알게 됐다. 하지만 유흥비를 충당할 만한 돈이 없던 그녀는 급기야 다방에 취직을 하게 된다.
구씨가 에이즈에 감염된 게 바로 이 즈음인 97년께로 추정된다는 것이 보건당국 관계자의 소견. 특히 이 관계자는 “구씨는 과거 면담에서 당시 불특정 남성 2∼3인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했지만 에이즈가 그렇게 쉽게 감염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정기적으로, 혹은 수시로 성관계를 맺었을 것이다”라고 추정했다.
행운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일반인들에 비해 약간 정신적으로 산만한 그녀는 에이즈라는 병의 심각성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경남 고성보건소에서 구씨가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3차 검사를 통보해 온 시기가 지난 98년 2월25일. 당시 구씨는 이 지역에서 달아났는데 이 또한 그녀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에 놀라서라기보다는 ‘왜 보건증이 나오지 않느냐’라고 닦달해대는 다방 주인의 성화를 견디지 못해서였다.
이렇듯 이미 에이즈 감염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난 98년 6월 부산 북구보건소에 에이즈 보균자로 정식 등록되기 전까지 고성과 영주 등지의 다방에서 2∼3개월씩 전전하며 윤락생활을 계속해왔다.
물론 사정은 에이즈 보균자 등록 이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구씨를 에이즈 보균자로 등록한 북구보건소측이 면담을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연락두절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구씨는 당시 포항시 구룡포 등지의 다방을 2∼3개월씩 옮겨다니고 있었다.
에이즈에 감염된 채 영남 일대의 다방에서 수많은 남성들과 관계를 맺어온 그녀는 지난 99년 7월 부산 구포의 한 술집에서 만난 박아무개씨(41)와 결혼하며 잠시 보건당국의 정상적인 관리체계에 편입되기도 한다.
결혼 이후 김해시로 전입한 뒤 김해보건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면담과 건강검진을 받아왔던 것. 남편도 그녀가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결혼 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콘돔 사용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에 에이즈 감염도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오히려 그녀로부터 발생했다. 1년여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워낙 놀기를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 다른 하나는 카드빚이었다. 지난 7일 보강조사를 실시한 경찰은 가출 당시 구씨가 4백만∼5백만원의 카드빚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구씨의 가출은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남편과 시아버지에게는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지난 2000년 9월부터 서서히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 다음달인 2000년 10월 영영 집을 떠나고 만다. 가출 이후 그녀는 알려진 바와 같이 여수 윤락가로 진출했다. 업소에서 불리던 이름은 ‘솔이’. 이곳에서 하루 5명 안팎의 손님을 받으면서 차곡차곡 돈을 모은 그녀는 카드빚을 전부 갚을 무렵인 지난 3월 30대 남자 A씨를 만나게 된다.
여느 윤락녀들과 달리 한없이 순박하기만 한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 A씨는 이날 구씨의 포주 김아무개씨에게 40만원을 지불하고 하루 동안 그녀를 ‘임대’해줄 것을 요구했다. 1회 화대가 3만원임을 감안해 볼 때 결코 손해볼 게 없었던 셈이므로 포주 김씨도 이를 쉽게 허락했다.
구씨를 데리고 나온 A씨는 “내가 수원을 가면 집도 있고 고생하지 않고 잘 살게 해주겠다”며 그녀를 유혹한다. 그리고 두 남녀는 그 길로 곧바로 수원으로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구씨는 그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뜻밖에도 그는 집도 절도 없이 공사 현장을 떠돌아 다니던 막일꾼에 불과했던 것.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구씨는 A씨와 몇 차례 말다툼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그가 소개해주는 대로 경기도 화성의 J다방에 취직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J다방 마담의 남편이 화성 군부대 공사현장에 일자리를 구해준 덕분에 J다방에서 한동안 생활한 전력도 있었다.
여기서 구씨는 ‘솔이’라는 가명을 버리고 ‘숙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다. 한 달에 1백만원을 받기로 하고 J다방에서 일했던 구씨에 대해 마담 B씨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심성은 착했지만 천방지축이었다. 말도 참 많고 어찌나 주위가 산만하던지 커피 타는 법을 알려줘도 돌아서면 까먹곤 했다. 배달 한 번 나가면 돌아오지 않아 내가 찾으러 돌아다녔다. 애인이 직접 데리고 온 아이라 몸을 함부로 굴리게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화성에서는 대놓고 윤락을 하지는 않았다는 주장. 이 부분은 구씨를 직접 수사한 김해경찰서 관계자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마담은 구씨를 친딸처럼 대했고 그녀 역시 마담을 ‘엄마’라고 부르며 유난히 따랐다고 한다. 그러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또다시 그녀의 보건증 때문이었다.
마담은 끝까지 보건증을 발급받을 것을 종용했고 시간이 오래 지난 만큼 에이즈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란 어리석은 기대를 품은 구씨 역시 이에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검사 결과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구씨가 끝까지 방역당국의 추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구씨는 지난 5월21일 김해에서 직접 올라온 보건소 관계자들에게 잡혀 쓸쓸히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다.
최성진 기자 vanita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