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주인공은 최근 서울지법 동부지원(형사5부 최건호 판사)에서 사기공갈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한아무개씨(26·여). 한씨의 수법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지난 2000년 8월 친구의 이름을 도용해 서울 강남의 한 결혼정보회사 회원으로 가입했다. 한씨가 친구의 이름을 도용한 것은 카드금이 연체돼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회원으로 가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로부터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 후 그녀는 몇 명의 남자를 만났다. 물론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었다. 애초부터 돈많은 남자를 만나는 게 목적이었던 한씨에게 웬만한 수준의 남자는 눈에 차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씨는 ‘돈’ 목적 때문에 이런저런 남자들과 계속 만남을 가졌다. 그녀는 소개받은 남자들과 자연스럽게 한두 차례 만난 뒤 자신의 몸을 허락하고는 ‘용돈’식의 돈을 요구했다. 물론 상대 남자가 ‘화대’라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처음에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의외로 상대 남성들로부터 쉽게 돈을 받아든 한씨의 행동은 점차 대담해졌다. 초반엔 업체 소개로 사람을 만났지만 나중엔 직접 상대 남성을 찾아나섰던 것. 한씨는 만나는 남자들마다 자신을 대학 후배라고 말하며 접근했다.
하지만 일회성 ‘푼돈’ 벌이에 이력이 난 한씨는 제법 큰돈을 뜯어내는 ‘작업’에 본격 나섰다. 현재 경찰을 통해 피해가 확인된 상대 남성은 두 명. 영업용 택시 기사인 허아무개씨(39)와 K대 강사인 김아무개씨(45)가 그들.
어처구니없게도 결혼정보회사의 회원으로 가입한 이들 두 남자는 모두 유부남이었다. 돈을 노리던 한씨에게는 더이상 좋은 먹거리가 아닐 수 없었던 셈.
한씨가 허씨를 만난 것은 지난 2000년. 한씨는 허씨와 몇 차례 관계를 맺은 뒤 “부모님 병원비가 필요하다”며 총 2천6백여만원을 뜯어내는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한씨는 곧바로 허씨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그뒤 새로운 먹잇감을 찾고 있던 한씨에게 딱 맞는 남자가 나타났다. 대학 강사인 김아무개씨가 주인공이었다. 한씨는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붙임성 있는 성격 탓에 남자로부터 호감을 받아오던 터여서 김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그리 큰 힘은 들지 않았다.
한씨가 김씨를 만난 시점은 2001년 8월. 두 사람이 만난 과정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한씨에게 김씨를 소개한 사람은 이 결혼정보회사의 또다른 회원인 C씨. 유부녀인 C씨와 김씨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나 정을 통해오던 사이였다. 그러던중 회사측이 C씨에게 “김씨를 한씨에게 넘겨주라”고 간청해 C씨는 한씨에게 자신이 사귀어오던 김씨를 소개해주었다.
한씨는 김씨를 만나 30분 만에 바로 모텔로 향했다. 그 후 한씨는 김씨와 4개월 정도 교제하면서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섯 차례에 걸쳐 협박해 모두 5천만원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 한씨는 김씨에게 “아이를 낙태했다”, “아내에게 관계를 털어놓겠다”면서 김씨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한씨가 실제 낙태를 했지만 김씨의 아이는 아니라는 종합병원 진단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송파경찰서가 한씨의 매춘 행위에 대해 본격 수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5천만원의 거액을 뜯긴 김씨가 한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시킨 뒤였다.
김씨가 고소장을 내게 된 것은 자신의 외도 사실이 부인에게 들통난 때문이었다. 남편으로부터 돈까지 뜯긴 사실을 전해들은 김씨의 부인은 한씨를 남편에게 소개해준 C씨를 수소문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등 적극적으로 남편을 도왔다.
한편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서울지법 동부지원 형사5부 단독 최건호 판사는 판결문에서 “한씨는 결혼상대를 만나기 위해 결혼정보회사의 회원으로 가입했다지만 의도적으로 소개받은 남자들과 대가성이 있는 성관계를 가졌고, 피해자들의 돈을 대부분 돌려주지 않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며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한씨는 1심 판결에 대해 “결혼을 전제로 만났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지난 2일 서울고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