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6일 태국 사법당국으로부터 한국에 인도된 살인·납치강도 피의자 최세용이 반바지와 트레이닝복, 슬리퍼 차림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이다. 최 씨는 자신을 기다린 취재진을 향해 히죽거리며 웃는 표정을 지어 모두를 경악케 했다. 연합뉴스
최세용이 ‘필리핀 악마’로 불리기까지 그의 행각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세용의 범죄 행각이 처음 세상에 드러난 시점은 지난 2007년 7월이다. 최세용은 김종석, 김성곤 등 일당 두 명과 함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소재 오피스텔에 위치한 사설 환전소에서 여직원을 살해하고, 금고에 있던 현금 1억 8000여만 원을 챙겨 달아났다. 뒤늦게 출근한 환전소 사장은 여직원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칼에 목을 찔린 여직원의 상태는 기도와 경정맥, 경동맥이 모두 절단되는 등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최세용 일당의 해외도피 행각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필리핀에 정착한 최세용 일당은 납치범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대상은 다름 아닌 필리핀에 관광을 온 한국인들. 한때 ‘필리핀 한국인 납치사건’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바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필리핀 조폭이 아니라 최세용 일당이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세용 일당이 사용한 납치 수법은 매우 간단하다. 우선 필리핀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에 ‘동행을 구합니다’라는 쪽지를 보내거나, 동행을 구하는 관광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이후 관광객을 만나 “(내가 알고 지내는)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술집에 가자”고 한 뒤, 술을 주고받으면서 친분을 다진다. 납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은 술자리가 끝난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며 태운 차량에서다. 차에 탄 즉시 “넌 납치됐다. 돈을 내든지 죽든지 선택해라”라고 협박하거나, “우리는 북한공작원이다. 공작금을 내든지 죽든지 알아서 선택해라”라고 협박하는 게 최세용 일당의 주된 수법이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필리핀 현지에 ‘코리안 데스크’라고 한국 경찰을 파견하고 인력을 강화한 것이 사실상 최세용의 납치 강도 때문인 셈”이라고 전했다.
최세용 일당이 납치한 관광객은 시내 외곽의 한 주택으로 끌려간다. 이후 관광객은 손에 수갑, 발에는 쇠사슬이 채워진 채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해서 돈을 송금 받으라고 시키는 것. 관광객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급한 사정이 생겼다”며 수천만 원의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납치를 당했다 풀려난 피해자들은 “최세용 일당이 입막음을 위해 납치한 관광객에게 필리핀 여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게 하고 장면을 찍는 수법도 썼다. 휴대폰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동영상이 있더라”라고 경찰에 증언하기도 했다.
그렇게 최세용 일당이 2008년 1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납치와 강도짓을 한 한국인 관광객만 총 19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파악된 금액만 5억여 원. 이 과정에서 살해된 한국인 관광객은 3명이다. 1명은 현재 실종 상태로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거칠 것 없었던 일당의 범행은 리더인 최세용이 태국에서 붙잡히면서 일단락됐다. 지난 2011년 가을 최세용이 태국으로 도망갔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태국 국경관리소 측에 수사 협조를 부탁했다. 이후 최세용의 아내가 태국을 수차례 입국했다는 것을 감안, 검문소 이민국 직원들이 아내의 신원을 확인해 몰래 뒤를 밟도록 요청했다. 드디어 태국 치앙라이 외곽의 한 커피숍에서 최세용과 아내가 마주 앉았을 때, 이민국 직원은 최세용 앞에 서서 “여권을 보여달라”라고 요청했다.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최세용은 송 아무개 씨로 된 가짜 여권을 내밀었다. 해당 여권 역시 최세용이 필리핀에서 납치했던 한국인 관광객한테 빼앗은 여권이었다. 이민국 직원들은 수배전단을 들이밀며 수갑을 채웠다.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해 사건 이후, ‘5년 4개월’의 기나긴 도피 행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최세용은 태국법원으로부터 여권 및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징역 9년 10월을 선고 받았다.
최세용이 붙잡혔다는 사실을 접한 법무부는 태국 측에 ‘임시인도’ 방식으로 최세용을 인계해 줄 것을 요청했고, 결국 최세용은 2013년 10월 한국으로 송환되기에 이른다. 법무부 관계자는 “임시인도란 외국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한국 국적의 범죄자를 현지에서 형 집행 전에 임시로 인도하는 것이다. 국내 수사 재판 과정을 거쳐 형이 선고되면 외국에서 징역형을 산 후, 다시 국내로 송환돼 징역형을 살게 된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국내로 송환된 최세용은 “태국에 오래 있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말하겠다”며 납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이후 끊임없는 수사로 최세용은 납치 사실을 인정하며 필리핀에서 한국인 시신을 암매장한 곳이 있다고 결국 털어놨지만, 남은 과제는 시신이 정말 현장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최세용의 증언을 토대로 ‘발굴 조사팀’을 꾸려 필리핀 현지로 출동, 과학수사를 벌였다. 그리고 드디어 2014년 11월 25일과 26일에 시신을 찾는 데 성공하기에 이른다(박스기사 참조).
시신 발굴 이후 이제 경찰에게 남은 과제는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되어 실종된 또 다른 피해자들을 찾는 일이다. 최세용과 공범인 김종석은 최세용이 잡힌 지 얼마 되지 않은 2012년 10월 필리핀 현지에서 붙잡혔지만, 유치장에서 유서를 쓰고 자살해 추가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행동대장 김성곤은 2012년 5월 필리핀 경찰에 붙잡혀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필리핀에서 한국인 납치가 악명이 높았던 만큼, 이들의 추가 혐의는 상당할 것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 살해당한 한국인 피해자는 3명, 실종자는 1명이지만, 최근 시신 2구가 발견돼 ‘시신 1구와 실종자 1명’을 찾는 게 급선무인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 관계자는 “나머지 실종자의 소재를 파악하는 한편,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 중인 공범 김성곤의 송환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필리핀 한국인 납치사건의 중심이었던 ‘필리핀 악마’의 잔혹한 범행 전모가 추가로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한국인 시신 수습까지 아들 찾던 아버지 스스로 목숨 끊어 “여기 시신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최세용 일당의 필리핀 은신처에서 최근 한국인 시신 2구가 발견됐다. 사진은 필리핀 유골 발견 현장. 사진제공=부산경찰청 2014년 11월 25일, 필리핀 마닐라 외곽에 소재한 따이따이리잘 지역의 한 주택에서는 굴착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에 필리핀에서 납치되고 살해된 한국인 시신이 암매장 됐다는 정보를 얻고, 필리핀 현지에 한국 수사팀이 급파돼 시신 발굴에 나선 것이다. 수사팀은 발굴 조사팀이라는 명칭을 달고 부산경찰청 조중혁 국제범죄수사대장을 팀장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박사, 법인류학 교수 등 7명의 전문가들이 총망라됐다. 그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셈이었다. 시신 암매장 사실을 자백한 이는 최세용이었다. 최 씨는 지난 2013년 10월 경찰 조사에서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살해하고 암매장했다”는 자백을 했다. 그 후로 1년 만에 경찰은 최 씨가 시신을 암매장한 곳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해당 주택은 다름 아닌 최 씨가 범행 당시 공범들과 함께 머무르던 곳이었다. 당시 최 씨는 주택 뒷마당에 시신을 암매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뒷마당이 현재는 사라졌다는 점이다. 최 씨가 떠난 후 주택에 이사 온 새로운 필리핀 집주인은 뒷마당 위에 별채를 하나 지어 놓았다. 남의 주거지를 파헤쳐야 하는 발굴팀으로선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발굴팀이 집주인을 끊임없이 설득한 결과, 발굴 허락은 받았지만 까다로운 요구 조건이 있었다. 집주인의 조건은 “방바닥 ‘1.5×1.5m’ 크기를 한 번만 파라”, “반드시 원상복구를 하라”는 것. 발굴팀은 그만큼 신중해야 했다. 시신이 암매장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탐측장비를 동원해 지하 흙 성분을 분석했다. 발굴에 대비해 휴대용 치과 X선 촬영기도 준비했다. 위치를 지목하고 방바닥을 파내려갈 때는 점점 좁아지는 구덩이 크기에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기도 했다. 그렇게 타일을 깨부수고 땅을 파내려간 지 이틀 만에 백골상태의 한국인 시신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조중혁 국제범죄수사대장은 “시신을 찾지 못하면 ‘시신 없는 살인’으로 (피의자들의) 공소유지가 어려울 뻔했다”라며 “과학적이고 끈질긴 수사의 결실이었다”라고 밝혔다. 발견된 한국인 시신은 총 2구다. 이 중 한 구는 50대 남성 김 아무개 씨로 신원을 추가 확인 중이며, 한 구는 지난 2011년 9월 필리핀에서 실종, 납치된 홍석동 씨(당시 29)의 시신으로 최종 확인됐다. 당시 홍 씨는 서울의 한 IT 업체에 취직한 지 1년 만에 휴가를 얻어 5박 6일간 필리핀 세부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해 “필리핀 현지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는데 미성년자였다. 부모들이 찾아와 합의금을 내놓으라고 한다”며 1000만 원을 송금하라고 부탁했다. 이후 여러 차례 추가 송금을 요구하다가 끝내 연락이 두절됐다. 한때 ‘홍석동 납치사건’으로 세간이 떠들썩했기에, 그가 끝내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사실에 경찰과 홍 씨의 가족은 허탈한 모습이다. 경찰 관계자는 “홍 씨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한 상태”라고 밝혔다. 홍 씨의 어머니는 2014년 12월 18일 아들의 장례식을 치렀다. 백골로 돌아온 아들의 시신에 어머니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홍 씨의 아버지는 사방팔방 홍 씨의 행적을 찾다가 2013년 1월 1일 끝내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생사도 모르는 아들과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아들을 꼭 찾아 달라”라 홍 씨 아버지가 남긴 짧은 유서였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