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평생 반려자를 목빠지게 기다렸던 총각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최근 중·소 결혼정보업체 회원으로 가입한 일부 남성들이 여성 회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술집 마담들의 ‘덫’에 걸려 자존심을 구긴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
불황으로 영업난에 시달리는 일부 룸살롱, 단란주점 마담뚜들이 의도적으로 결혼정보회사 회원으로 등록한 뒤 파트너로 만난 총각들을 자신의 안방으로 유인해 ‘술값 바가지’를 씌우거나 결혼을 빙자해 고가의 선물을 받아내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간큰 마담들은 결혼정보회사와 은밀한 계약을 맺고 주머니가 두둑한 남자들만을 소개 받은 뒤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 총각들의 주의가 요망된다.
[사례 1]
수원에 거주하며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김생민씨(가명·43)는 지난 10월 초 A결혼정보회사에 70만원을 내고 초혼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줄곧 독신을 고집했지만 “올해를 넘기지 말았으면 한다”는 홀어머니의 등쌀과 가을이 가져다준 외로움을 이기기 힘들어 결혼을 결심한 케이스. 하지만 그는 걱정이 앞섰다. 과연 마음에 드는 이상형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회원으로 가입한 지 일주일이 지나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괜찮은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확실하다”라는 결혼정보회사의 귀띔을 받은 김씨는 내심 부푼 가슴을 안고 수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소개받을 파트너를 기다렸다.
시간은 오후 7시. 안절부절 타 들어 가는 속을 잠재우기 위해 물 한모금을 들이키며 레스토랑 입구쪽을 바라보던 김씨는 한 여자의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다. 큰 기대는 안했지만 예상보다 젊고 늘씬하면서 옷차림 역시 세련된 30대 초반의 여인이 자신에게 다가왔던 것. 그 여인은 자신을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한영란(가명)으로 소개했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속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씨는 술을 마시고 싶다며 김씨의 손을 잡아 끌었다. 한씨의 미모와 적극적인 성격에 마음이 끌린 김씨는 거리낌 없이 그녀를 레스토랑 근처의 소주방으로 데리고 갔다.
두 시간이 넘도록 소주잔을 주고 받은 그들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급기야 한씨는 김씨 옆자리로 옮겨 앉으며 야릇한 시선을 보내기까지 했다. “근사한 곳에 가서 한 잔 더해요.” 얼큰하게 취해 정신까지 몽롱해진 김씨는 한씨의 제안에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의기양양해진 한씨는 서서히 본색을 드러냈다. 김씨의 품에 안겨 온갖 아양을 떨다 한 단란주점으로 그를 데려가 작업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미 상황 판단이 힘든 지경에까지 이른 김씨는 한씨를 품에 안고 양주 2병을 나눠 마셨다. “무슨 여자가 이리도 술을 잘 마실까”라는 생각에 잠시 한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머뭇거렸지만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새벽 2시 무렵, 한씨는 김씨에게 저녁에 다시 보자며 휴대폰 번호를 적어줬다. 김씨는 기분 좋게 술값으로 60만원을 지불한 후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냈고 자신도 집으로 향했다.
그날 아침 9시.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회사로 출근한 김씨는 한참동안 전화기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새벽 한씨가 가르쳐준 연락처는 없는 번호였던 것.
그때서야 김씨는 상황을 직감했다. 김씨는 바로 여자를 소개시켜 준 결혼정보업체로 연락,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항의했다. 결국 나중에 알고보니 한씨는 가명으로 결혼정보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해 김씨 이외에도 여러 남자를 업소로 유인해 돈을 뜯은 전문 ‘꽃뱀’이었다. 김씨가 단란 주점을 찾아갔을 땐 이미 한씨는 잠적해 버린 뒤였다.
[사례 2]
서울 삼성동에 거주하는 정지상씨(가명·38). 8년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사업을 구상중이던 그는 9월 초 한 결혼정보회사 회원으로 가입했다. 미혼인 정씨는 결혼회원이 아닌, 온라인상에서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미팅 회원으로 가입했다. 자신과 성격이 맞는 상대와 온라인상에서 교감을 나누면서 인간성과 외모를 충분히 검증한 뒤 마음에 들면 교제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담당 온라인 커플 매니저를 통해 한 여성을 소개받았다. 그 여성은 자신을 모 여행사 직원인 서른두 살의 신아무개라고 밝혔다. 이후 그들은 한 달간 메일과 인터넷 쪽지를 통해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갔다. 반말까지 쓰면서 은밀한 농담도 주고 받을 만큼 둘 사이는 가까워졌다.
김씨는 차분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신씨에게 빨려 들어갔다. 결국 김씨는 신씨가 보내준 사진을 본 후 만남을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서울 강남의 한 영화관에서 두 사람은 첫 만남을 가졌고, 세 번째 만남에서 잠자리를 가졌다.
이 후 김씨는 신씨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에게 신씨를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신씨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씨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만남을 피하는 경우가 늘어났던 것. 김씨는 “막상 결혼을 하려니 부담스러웠겠지”라며 자위했지만 신씨는 더욱 더 자신을 멀리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김씨는 신씨에게 “꼭 할 말이 있다”며 강남 부근으로 불러냈다.
강남의 모 커피숍에서 만난 두 남녀. 김씨가 자신을 멀리하는 이유를 묻자 신씨는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수술비가 턱없이 모자란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한 법. 김씨는 수술비조로 5백만원을 건네면서 백화점에서 목걸이와 반지 등을 사주며 신씨를 위로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은 신씨의 계략이었다. 신씨는 “술 마시고 싶다”며 회사 사람들과 와본 적이 있다는 룸살롱으로 김씨를 이끌었다. 신씨는 그 자리에서 결혼을 약속했고, 기쁨에 겨운 김씨는 신씨와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이날 청구된 술값은 무려 70여만원.
김씨와 작별의 키스를 나누고 돌아선 신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신씨는 그 룸살롱의 ‘새끼 마담’이었던 것. 다음날 오전 김씨는 신씨에게 연락을 했으나 이미 신씨는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잠적해 버린 상태였다. 신씨가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 호적과 학력, 재직 내용도 모두 거짓이었다. 결혼정보회사측은 김씨를 관리한 담당 직원이 그만뒀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처럼 무자격 결혼정보회사들의 부당 행위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결혼정보회사 회원으로 가장해 총각들의 주머니를 뜯는 마담뚜들의 사기 행각 역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기에 결혼정보회사라는 이름을 내건 미용실, 룸살롱들이 업소내의 아가씨들이나 이혼녀, 필리핀 등 외국인 여성들을 남성들에게 소개시켜주며 돈을 뜯어내는 경우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결혼정보회사의 회원으로 가입하려는 남성들은 사전에 주변의 조언을 듣고 검증된 업체를 선택해야 한다”며 “규모가 적은 결혼정보회사에서 알선한 상대가 무리한 돈이나 선물을 요구하거나 고급 술집에 가자고 조르는 경우 의심을 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