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화재 본사가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메리츠타워 입구. 구윤성 기자
금융권은 남 대표의 갑작스런 퇴진이 실적악화에 따른 문책성 인사로 보고 있다. 남 대표의 사의표명이 알려지기 하루 전, 15명이나 되는 임원들이 남 대표와 함께 물러날 것을 통보받았다는 점에서 ‘대주주의 인사권’이 발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임통보를 받은 임원은 경영총괄담당 전무와 경영관리본부장, 신사업본부장 등 핵심 경영진들로, 사장을 제외한 전체 임원 33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한꺼번에 옷을 벗게 됐다.
곧이어 방대했던 조직을 대폭 축소하는 조직개편안이 발표됐다. 메리츠는 사장 자리를 포함한 34개 임원직 가운데 19개를 없애고 15개만 남겼다. 또 기존 8총괄 31본부였던 본사 조직의 본부(총괄)제를 없애고, 총괄은 ‘실’로, 본부는 ‘팀’으로, 팀은 ‘파트’로 격하했다. 경영관리본부와 전략기획본부를 통폐합해 경영관리팀으로 단순화하고, 인사총괄본부도 인사총무팀으로 축소하는 등의 방식이다.
메리츠화재의 이 같은 대규모 인사조치는 설립 9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구조조정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현장 중심으로 효율적인 체제를 구축한 것”이라며 “단순화, 최적화, 정도경영을 3대 키워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메리츠화재는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동부화재에 이어 LIG손해보험과 손해보험업계 4위를 다투는 회사다. 대그룹 소속이 아닌데도 손해보험업계 상위권에 올라있는 보기 드문 경우로, 92년에 이르는 역사를 거치며 쌓아온 저력과 전문경영인들의 경영능력 등이 결합된 성과라는 것이 보험업계의 평가다.
메리츠화재는 최근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왔다. 지난 2012년 창립 90주년 기념으로 선보인 ‘케어프리보험 M-바스켓’의 경우 고객이 몰렸다. 새로 계약을 따오는 보험모집인들에게 지급하는 ‘신계약비’에 회사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13년에는 ‘걱정인형’을 앞세운 독특한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으는 등 한동안 손해보험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성장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2014년 들어 많은 것이 달라졌다. 메리츠화재는 2014년 1분기(1~3월)에 직전 분기 대비 20.3% 감소한 304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보험 신계약은 전년 동기대비 14.5% 줄었다. 적자를 낸 것은 아니지만 매출과 이익이 모두 두 자릿수나 감소한 것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실적은 2014년 한 해 동안 계속 이어졌다. 메리츠는 3분기(7∼9월)에도 당기순이익(363억 원)이 전년 동기대비 19.7% 감소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기조는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2015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결국 ‘전쟁터에 나간 장수’를 교체하는 특단의 조치가 이뤄졌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분석이다.
기존 경영진이 물러난 자리에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배치됐다는 점도 메리츠를 둘러싼 위기의식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메리츠화재는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내정했다. 김 사장은 1989년 한화생명(옛 대한생명)에 입사한 뒤 삼성으로 자리를 옮겨 삼성화재, 삼성투신운용, 삼성증권 등을 거친 금융전문가다.
또 금융감독원 출신으로 얼마 전까지 보험개발원장을 지낸 강영구 씨를 영입해 윤리경영실장(사장)에 앉혔다. 강 사장은 보험감독원에 입사해 금융감독원 보험검사국, 보험감독국 등을 거쳐 보험담당 부원장보 등을 지낸 인물이다.
금융권은 금융지주사의 수장과 금융당국 고위직 출신의 거물급 인사가 동시에 투입됐다는 점에서 향후 메리츠화재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주사에서 리더십이 검증된 경영자에다 금융당국과 원활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인물이 이끌게 된 만큼 위기 타개와 공격경영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
메리츠화재는? 국내 최초 보험사… 한진가 막내가 운영 메리츠화재는 1922년 조선화재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국내 최초의 보험사다. 1950년 동양화재해상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62년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창업자 강의수 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삼성그룹 계열로 편입됐다. 이후 1967년 삼성이 동양화재를 다시 매각하면서 한진그룹 소유가 됐다. 한진그룹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4형제가 그룹을 분할 승계하면서 그룹에서 분리됐다. 조중훈 창업주는 4남1녀 가운데 장남인 조양호 회장에게 그룹의 주력 사업인 대한항공 등 항공 운수업을 넘기며 장자승계 원칙을 세웠다. 조선업은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해운업은 삼남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금융업은 막내 조정호 메리츠 금융지주 회장이 물려받았다. 조정호 회장은 한진그룹에서 분리되던 2005년 사명을 메리츠로 바꾼 뒤 한진그룹과 별개로 독자적인 경영노선을 지켜오고 있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