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7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서 박지원, 문재인, 이인영 후보(왼쪽부터)가 컷오프를 통과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변은 없었다. ‘빅2’로 꼽히던 문재인 박지원 의원과 줄곧 3위권을 지켰던 이인영 의원, 세 명이 당대표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컷오프 막판까지 박주선 의원이 맹추격했지만 486(40대·80년대 학번·60년생)그룹의 지원을 받은 이 의원을 제치는 데는 실패했다.
이로써 새정치연합 2·8 전당대회는 친노계 문재인, 비노계 박지원, 486그룹 리더 이인영 의원이 맞붙는 3파전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싱거운 결과였다. 국민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문재인·박지원 의원에 맞설 이 의원이 앞으로 얼마만큼의 정치력을 보일지가 전당대회 흥행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에선 컷오프에서 누가 1위를 차지했느냐에 시선이 모아졌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후보들의 득표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당 선거관리위원장인 신기남 의원만이 결과를 알 수 있는 개표소에 들어갔을 정도였다.
신 의원은 개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저 혼자 개표소 안에 들어갔지만 득표수는 보지 않았다. (투·개표 위탁업무를 맡은) 중앙선관위 직원이 체크해주는 것만 받아서 나왔는데, 이렇게 철저하게 하는 건 처음이다. 저도 모르고, 선관위 직원도 관심이 없으니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컷오프 세부 결과는 신 의원을 비롯해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 극소수에게만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컷오프 순위가 자칫 본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몇몇 언론에 “(컷오프) 결과가 공개됨으로써 후보 간 갈등이 심화되거나,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당의 오래된 전통”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컷오프 직후 <일요신문>이 접촉한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결과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10년 9월 9일 옛 민주당 전당대회 컷오프에서 당시 후보로 나섰던 이인영 의원이 2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 흘러나오며 논란을 일으켰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 어느 때보다 보안 유지에 성공한 셈이다.
정작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이러한 방침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순위 비공개로 인해 각 후보 진영이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여론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컷오프가 끝난 후에도 문재인 박지원 의원 측은 서로가 1등을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여의도 주변에서도 여러 버전의 컷오프 결과가 공공연히 나돌기도 했다. ‘문재인 1위, 박지원 2위, 이인영 3위’라는 추측이 가장 설득력 있게 돌고 있긴 하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어떤 내용이든 자가발전 가능성이 높다. 각 후보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근거도 없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신문>이 새정치연합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복수의 관계자 접촉을 통해 확보한 컷오프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2위가 유력할 것이라던 박지원 의원이 문 의원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선거 위탁 업무를 맡았던 중앙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철저한 익명을 요구하며 “구체적인 득표수를 밝힌 순 없다. 외부로 새어나가면 난감해질 수 있다. 다만, 박 의원이 문 의원을 조금 앞섰다는 것만 밝혀둔다”고 귀띔했다. 새정치연합 고위 당직자 역시 “솔직히 문 의원이 여유 있게 앞설 것으로 전망했었는데 결과를 접하고 나서 놀랐다. 표차가 얼마 나진 않았지만 박 의원이 1위에 올랐다”고 털어놨다.
한편, 선관위 측은 “컷오프 투·개표 사무를 위탁받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당업무 담당 사무관 1명과 전산담당 직원 1명만 참여해 그 결과를 전달했다. 따라서 선관위 내부의 어느 누구도 개표결과를 알지 못한다. 또 개표에 참여했던 선관위 직원 2명은 결과의 비공개 요구를 익히 알고 있어 내·외부의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당대표 선출 예비경선에 나선 문재인 후보와 박지원 후보가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투표에 참여한 326명(총 선거인단 378명·투표율 82.6%) 중 박지원 의원이 120~130표 사이의 득표로 1위에 올랐고 문재인 의원은 110대 초반의 표를 얻었다고 한다. 둘 다 과반엔 실패했고, 표 차이는 10표 안팎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인영 의원이 100표에 육박하는 득표를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이 역시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 컷오프에서 탈락한 박주선 조경태 의원 표를 감안하면 이 의원은 대략 50~60 사이의 표를 얻은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정치권에선 ‘문재인·박지원 2강, 이인영 1중’으로 예상했었는데 그 구도는 맞았지만 순위는 틀린 셈이다. 물론 컷오프 결과에 대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정치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 순위가 본선에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9월 컷오프에서도 정세균 후보가 1위, 이인영 후보가 2위에 오른 반면 정동영 후보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손학규 후보의 경우 꼴찌에서 두 번째로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손학규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본선 레이스를 펼치는 동안 각종 변수가 등장하며 순위가 뒤바뀌었던 것이다. 또 컷오프에선 제대로 된 표심이 표출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도 “컷오프 순위가 그다지 중요할 것 같지는 않다. 박 의원이 다소 앞섰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 의원 승리가 유력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관건은 문 의원이 70% 이상의 지지율을 받을 수 있느냐다. 그렇지 못할 경우 문 의원은 전대 이후 당을 끌어가기가 상당히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컷오프 결과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일반 당원과 여론조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전당대회와는 달리 컷오프는 통상 계파 간의 세 대결에 의해 좌우된다는 게 정설이다. 컷오프가 당 고문,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시·도지사 등으로 구성된 중앙위원 투표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컷오프 직전까지 새정치연합 최대 계파인 친노가 밀고 있는 문 의원이 과반으로 승리할 것이란 추측이 나왔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지원 의원조차 컷오프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컷오프는 파벌로 가기 때문에 본선 투표와는 조금 다를 것”이라며 열세를 인정한 바 있다.
따라서 문 의원이 2위를 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친노 내에서 반란표가 나왔을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이는 친노진영 분열로 인해 문재인 대세론에 금이 가고 있다(<일요신문> 1181호 ‘문재인 대세론 흔들리는 내막’ 보도)는 정치권 관측과도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3위로 컷오프를 통과한 이 의원에게 친노 이탈 세력이 합류할 경우 박주선 의원 탈락으로 호남권 득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박 의원은 어부지리를 노릴 수도 있다. 문 의원 진영에서 컷오프 2위가 사실일 경우 본선에서 고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