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실직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남자는 제일 먼저 털어놓고 의논해야 할 아내에게 그 사실을 숨겨야 했을까. 왜 여전히 차를 두 대씩 굴리고, 여전히 출근하는 척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내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건넸을까. 책임감만 충천한 한국의 불쌍한 중산층 아버지가, 자기의 잘못과 실패와 불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외로운 가장이,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른아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평생고용이 사라진 이 시대는 사람을 위한 세상 같지 않다. 자본을 위한 세상 같다. 오늘 거액 연봉자라고 해도 그가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시대고, 매년 재계약 시기가 되면 피가 마르는 미생들이 너무 많은 시대다. 어떻게 하면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을 늘려 불안하기만 미생의 삶을 줄일 수 있을까, 하고 고뇌하는 지도자는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능력이 많은 젊은이들이 다 계약직, 비정규직인데, 그 자리 꿰 차고 있는 것이 너무한 것 아니냐며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시대이기도 하다. 당연히 인간 값이 껌 값인 시대다. 학교에서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가르치면서.
그러니 이 시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고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고하는 훈련을 길러야 한다. 더 이상 사람 값을 직장에 따라, 연봉에 따라, 사는 지역에 따라, 학교에 따라 매기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 강남에 살지 않으면 어떤가. 생활비 적게 들어 좋은데. 월급이 적으면 어떤가. 마음이 편한 게 최고지. 명품이 없으면 어떤가. 내가 명품인데. 차가 없으면 어떤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면서 일상이 운동인데. 이렇듯 어떠한 상황이 와도 ‘나’에 대한 믿음,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존이다. 무엇보다도 자존은 ‘나’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불운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 그는 자신의 행운과 성취를 자기와 동일시한 사람이다. 당연히 불운과 좌절과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자존심이 센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존감이 박약한 사람이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어려움에 직면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기의 어려움을 떠벌리라는 말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누구와 함께 나누어야 하는지 침착하게 생각하는 데서 성장하는 것이 삶의 지혜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