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용산역세권개발㈜ 관련 비위 제보를 받고 감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용산역세권개발㈜ 측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출입문을 봉쇄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하다 결국 고발됐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지난해 10월 감사원은 용산역세권개발㈜ 현직 대표 박 아무개 씨를 감사거부 및 자료 제출요구 불응을 이유로 고발 조치했다. 이 회사는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프로젝트회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드림허브)의 자산관리 및 운영 업무를 위해 지난 2007년 세워졌다. 프로젝트 무산 이후 잇따라 제기된 소송 업무까지 대리하는 등 용산개발 프로젝트를 맨 앞에서 이끈 곳이다.
드림허브의 대주주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다. 지난해 감사원은 부채급증과 장기파업 등 안팎으로 부침을 겪은 코레일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를 진행했다. 용산개발 프로젝트 역시 감사 대상이었다. 이와 별도로 감사원은 용산역세권개발㈜ 관련 비위 제보를 받고 별도로 감사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용산역세권개발㈜ 측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출입문을 봉쇄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하다 결국 고발된 것이다.
당시 감사원으로부터 들어온 비위 관련 제보는 크게 세 가지다. 전임 대표이사의 과도한 인건비 지급과 불투명한 경비 집행, 그리고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ABS(자산유동화증권)·ABCP(기업어음) 등을 충분히 낮은 금리로 발행할 수 있었음에도 높은 금리로 발행해 수십억 원대 손실을 끼쳤다는 내용 등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용산역세권개발㈜은 사업이 추진되던 당시 대표였던 박해춘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3년간 19억 8000만 원을 지급했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더라도 잔여임기 동안 연봉을 지급하도록 ‘특별 계약’도 맺었다. 2010년 10월 취임한 박 전 대표는 임기를 마치지 못한 지난 2013년 4월 사임했다.
용산역세권개발㈜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홍보 등 용역비 100억 원, 국제설계용역비 540억 원, 컨설팅비 100억 원 등 거액의 사업비를 집행했다. 특히 100억 원 이하의 자금집행에 대한 권한을 드림허브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했다. 그런가 하면 박해춘 전 대표 취임 직후 6500억대 ABS·ABCP 발행금리를 결정하면서 기존 A 증권사가 발행주관사로 선정되었음에도 발행구조 등을 문제 삼아 B 증권으로 변경해 26여억 원의 손실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감사원은 코레일로 연락을 취했다. 코레일은 프로젝트의 대주주로서 이를 감시할 의무가 있음에도 각종 계약서류 및 회계자료를 갖고 있지 않았다. 코레일은 감사원의 잇따른 요구에 따라 용산역세권개발㈜에 수차례 자료 제출 관련 공문을 발송하고 세 차례에 걸쳐 직접 방문했으나, 회사 측은 아무런 소명 없이 출입문을 봉쇄한 상태에서 공문 수령을 거부했다. 내용증명 우편은 ‘폐문 부재’로 반송케 했다.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로 불리던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이 지난해 무산됐다. 용산역세권 개발 조감도. 일요신문 DB
사실 감사원에 접수된 비위 내용은 이번에 고발된 현 대표가 아닌 전직 대표 시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대표를 비롯한 이사진이 대부분 바뀐 상황에서 감사원 고발이라는 부담을 떠안을 필요가 없다. 이와 관련, 용산역세권개발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한 회사 관계자는 “현 박 대표는 박해춘 전 이사장과 친형제처럼 항상 같이 움직여온, 박 전 이사장의 그림자와 같은 인물”이라며 “용산역세권개발㈜는 코레일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도 하다. 회사 자체를 ‘철피아(철도+관피아)가 둘러싸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감사 거부와 관련해 ‘정·관계 커넥션’을 의심케 하는 대목도 있다. 박해춘 전 대표는 지난 2010년 한나라당 충남지사 후보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친이명박계로 거론되지만 김대중 정부 때부터 승승장구 한 재계 인사라는 평이 많다. 노무현 정부 당시 LG카드 대표이사 사장, 이명박 정부 때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등을 지낸 뒤 현재는 동양매직 이사회 의장을 지내고 있다.
사업 추진 당시 경영관리본부장으로 근무한 윤 아무개 씨는 친박근혜계 핵심 국회의원의 후원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현재는 한 공공기관의 감사직을 맡고 있다. 용산역세권개발㈜ 감사였던 성 아무개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서강대 동기동창으로 지난 대선 당시 불법 SNS 사무실을 운영한 혐의로 2013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성 씨는 노무현 정부 때 코레일 자회사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현 감사인 김 아무개 씨 역시 코레일 출신이다.
해당 고발에 관해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자료제출 거부가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며 “결과적으로 감사를 못하고 종료한 셈”이라고 전했다. 다른 감사원 관계자는 “자신들이 공기업이 아니라 제출 의무가 없다는 입장인 것 같은데, 용산개발 사업은 법에 따라 정보 공개가 요구된 경우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자료제출 및 감사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번 감사는 해양수산부, 2018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등과 동시에 진행된 사안이지만 자료 제출 거부로 고발된 곳은 용산역세권개발㈜이 유일하다.
용산역세권개발㈜는 지난해 4월 드림허브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에 편입됐다. 이들은 자료제출을 거부한 이유에 관해 “프로젝트회사(드림허브) 자금 지원 중단으로 정상적인 업무가 어려우며, 현재 진행 중인 코레일과의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를 나중에야 밝혔다고 한다.
<일요신문>은 해당 고발 건 및 관련 내용들에 용산역세권개발㈜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7일 직접 광화문 소재 사무실을 찾았다. 이날 박 아무개 대표를 비롯한 몇몇 직원들이 일상 근무 중이었다. 그러나 용산역세권개발㈜ 관계자는 “대표가 출타 준비 중이다. 명함을 주면 연락드리겠다”고 말했지만 11일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