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경찰서 전경과 A 이비인후과 CCTV에 찍힌 압수수색 모습. 경찰과 건보공단, 보험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진료실 내부를 조사하고 있다.
“잠시만요! 어떻게 오셨어요?”
“경찰서에서 왔는데요.”
“잠시만요. 수술방이어가지고요.”
2014년 8월 13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남 A 이비인후과에 서초경찰서 지능수사팀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해당 병원이 허위진단서를 발급해 보험비를 청구한 혐의를 포착,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였다. 경찰은 A 이비인후과와 함께 원장 안 아무개 씨의 자택까지 전방위적 압수수색을 이어갔다.
경찰이 병원 대기실 등에서 안 원장과 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여러 자료를 요구할 무렵, 수술실에는 두 명의 환자가 마취 상태로 수술 중인 상태였다. 원장이 경찰에게 “지금 환자가 누워있어 수술해야 되는데”라고 말하자, 경찰은 “됐습니다. 일 보세요. 수술하세요”라고 답한다. 하지만 각종 문서를 요구하는 경찰을 상대하느라 원장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렇게 압수수색을 한 지 13분가량이 지난 후, 경찰은 환자가 누워 있는 수술실로 직접 들어와 압수수색을 이어갔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원장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문서를 묶는다며 스테이플러를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수술실 압수수색은 ‘7분 30초’가량 진행됐다. 이후 이 사건은 ‘수술실 압수수색 사건’으로 명명돼, 경찰의 무리한 수사가 논란이 되며 의료계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원장님, 보험사 직원이 경찰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경찰 압수수색이 끝나고 몇 주 후, 병원 한 직원은 원장에게 이상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봐도 경찰과 함께 온 사람 중에 이전에 병원에 찾아온 보험사 직원과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원장이 직접 확인해보니 보험사 직원이 맞았다. CCTV를 확인해보니 보험사 직원은 마치 경찰처럼 행동했다는 게 병원 측의 주장이다. 병원 한 관계자는 “보험사 직원이 컴퓨터와 USB를 압수수색하고 직원들을 상대로 진술서를 받아가는 등 경찰이 할 역할을 오히려 주도적으로 했다. 압수수색에 25명이 참여했는데 최소 10명이상 L 보험사 직원이 동원된 것이 확인됐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보험사 직원은 경찰 압수수색 당시 동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은 이에 대해 “압수수색 당시 경찰관, 건강보험공단 직원 및 금융감독위원회 파견 보험사직원 등이 참여했다”며 “자문을 구하기 위해 동행한 것일 뿐,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병원 측과 의료계는 “보험사 직원이 경찰을 사칭했다는 자체가 문제”라며 반박했다. 결국 전국의사총연합은 서초서 경찰과 보험사 직원 등을 공무원 사칭, 허위 공문서 작성,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상황에 의료계와 보험업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해당 사건이 아직 검찰 수사 중이기에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경찰의 보험사기 수사가 그간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 특히 이 과정에서 경찰과 보험사가 부적절한 ‘유착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경찰 입장에서는 실적이,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금 환수가 달려 있는 만큼, 둘 사이의 긴밀한 공생 관계가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같은 일각의 의구심에 경찰은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유착이 아니라 ‘협조’에 가깝다는 게 주장이다. 경찰 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보험 쪽이 전문적인 수사영역이기에 금감원과 협조 하에 보험사 직원을 대동하는 것”이라며 “보험사 쪽에서 첩보를 받아서 수사를 개시한다고 유착으로 본다면 할 말이 없다. 보험 영역은 보험사 쪽이 제일 잘 알기에 제보를 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전했다.
하지만 유착 의혹은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보험사 쪽에 경찰 출신들이 많이 진출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이 최근 경찰청에서 받은 ‘총경 이하 직원 퇴직 후 재취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6년간 172명의 퇴직 경찰관 중 73명(42.4%)이 민간보험사로 재취직했다. 다른 업종에 비해 유난히 많은 셈. 보험범죄를 조사하기 위해 민간보험사들이 앞다퉈 경찰 출신들을 영입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보험업계에 ‘경피아’(경찰과 마피아의 합성어)가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수술실 압수수색 사건’ 당시 경찰과 동행한 보험사 직원 중 일부도 경찰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험사 측에서 수사를 거의 ‘완료’ 시켜 놓는다는 전언도 있다. 보험업계에 정통한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보험범죄의 경우 미리 경찰들이 잘 움직이질 않는다. 보험사 내부 특별조사팀(SIU)에서 ‘90%’ 정도 사전 수사를 완료해놓고 경찰들에게 의뢰하는 식이다. 그래서 경찰들이 범죄에 관해 잘 모르는 부분도 있고 SIU가 잡아놓은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상당하다. 좋게 말하면 협조지만 나쁘게 말하면 유착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라며 “문제는 SIU가 어느 정도 권리를 행사하는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수사권이 없음에도 월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 자료가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 2010년 한 대형 보험사 특별조사팀은 경찰의 수사기록을 열람, DB화해 사내에 보관해온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당시 해당 보험사 특별조사팀은 경찰, 당사자 외에는 열람이 불가능한 수사기록을 입수해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DB를 구축한 것으로 파악됐다(박스기사 참조). 보험이용자협회 김미숙 대표는 “보험사는 일단 자사 보험가입자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지만 타사 보험가입자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수사가 개시되고 압수수색을 함께 진행한다면 타사 보험가입자들의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 부분에서 수사기록이 유출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록이 유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보험사는 제보만 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수술실 압수수색 사건’은 경찰의 무리한 수사와 보험사와의 유착 의혹 등이 무성한 가운데 향후 검찰 조사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보험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토대로 보험범죄에 대한 수사를 전반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바른수사연구소 장기현 소장은 “보험제도의 근간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단속이 필요하지만 보험사에 의존한 무분별한 수사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며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입각한 합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 경찰수사의 정당성도 인정받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