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전경. 왼쪽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하지만 현재 전경련의 상황을 보면 허 회장 이후 회장을 맡을 인물이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4대그룹 총수들은 일찍이 전경련 회장 자리를 고사했다. 더욱이 이건희 삼성 회장은 와병 중이다. 10대그룹은 물론 20대그룹 총수들 중에서도 전경련을 이끌어갈 만한 회장이 보이지 않는다.
신동빈(롯데), 조양호(한진), 김승연(한화), 박삼구(금호아시아나), 김준기(동부) 회장 등이 후보군이지만 이들은 저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 이웅열(코오롱), 류진(풍산), 장세주(동국제강) 회장 등이 눈에 띄지만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박용만 두산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
허창수 회장은 몇몇 경로를 통해 3연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경련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재계 관계자는 “2013년 연임 여부를 결정할 때도 허 회장이 전경련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며 “그러나 당시에도 대안이 없어 계속 떠맡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허 회장 자신도 공개적으로 ‘두 번 했으면 됐지’라는 말을 수차례 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허 회장이 지난해 초부터 3연임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며 “그러나 지금 전경련 사정이 예전보다 더 안 좋아져 허 회장 뜻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비단 이번뿐 아니라 허 회장은 처음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된 2011년과 연임 때인 2013년 모두 회장직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7월 조석래 전 회장이 건강 문제로 전경련 회장을 사임한 후 2011년 2월 허 회장이 제33대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될 때까지 무려 7개월간 전경련 회장은 공석이었다. 당시 전경련은 이건희 회장만 바라보다 7개월을 낭비했고 결국 허창수 회장을 추대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될 당시에도 어려움이 많았고 고사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안다”며 “2013년 연임 때도 난색을 표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전경련은 또 현재 회장단이 예전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전경련 회장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대기업 총수 중에는 구속 중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많거나 아니면 반대로 나이가 어려 전경련을 이끌기에 부적합한 이도 있다. 또 유력 후보 중 한 명이던 조양호 회장은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태다. 박삼구, 김준기 회장은 그룹 추스르기도 바쁜 상태다. 전경련 관계자는 “후보군에 들 만한 대기업 총수가 예전보다 적다”며 “허 회장이 비록 연임을 고사하고 있지만 회장단에서 따로 얘기가 오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허 회장이 만약 3연임을 수용한다면 지난 1977~1987년 10년간 5연임한 고 정주영 회장 이후 처음으로 3연임 전경련 회장이 된다. 역대 전경련 회장 중에서도 3연임 이상을 한 회장은 4, 5대에 이어 9~12대 회장을 지낸 고 김용완 회장, 6~8대 고 홍재선 회장과 정주영 회장, 3명뿐이다.
전경련 회장으로서 지난 4년간 허 회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정부의 각종 규제에 맞서 전경련을 무리 없이 이끌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무용론’이 일어날 만큼 전경련이 최대 위기에 부딪혔음에도 제 목소리를 못 냈다는 비판도 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전경련 회장 자리가 하면 욕먹고 안 해도 그만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라면서 “지금은 대기업들이 전경련에 바라는 게 많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GS그룹 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도 허 회장이 3연임을 고사하는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은 지난 4년간 GS 핵심 계열사들의 실적은 계속 악화됐다. GS그룹의 두 축인 정유와 건설이 불황의 늪에 빠진 데다 전망조차 어둡다. 허 회장이 맡고 있는 그룹 지주회사 ㈜GS는 2011년 932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2012년에는 6842억 원, 2013년에는 5521억 원으로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급기야 지난해는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고작 1586억 원에 그쳤다. 정유 부문과 건설 부문의 실적 악화가 가장 큰 요인이지만 계열사들의 사업 활동을 지배하는 지주회사 성격상 영업이익이 이처럼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문제로 지적될 만하다.
더 심각한 점은 두 부문의 사업 전망이 어둡다는 것. 국제 유가가 50달러마저 붕괴된 상황에서 정유·화학 부문이 큰 타격을 입고 있으며 부동산·건설 경기 침체는 언제쯤 풀릴지 기대하기 힘들다. 허창수 회장 역시 전경련 회장을 고사하는 대부분 총수들의 변처럼 ‘위기에 대처하고 그룹 경영을 챙겨야 할 때’다. 그러나 GS 관계자는 “그룹 상황과 별개로 봉사하는 차원에서 전경련 회장 자리를 맡고 있는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3연임까지는 과하다고 여기시는 듯하다”고 전했다.
제35대 전경련 회장은 오는 2월 전경련 정기총회와 회장단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지금까지는 허 회장 외에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전경련 관계자는 “허 회장이 무슨 일에 나서는 스타일도 아니고 회장단에서도 따로 얘기가 있을 것”이라며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으며 2월에 가봐야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