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태 선임기자
양력으로는 2015년 새해가 밝았다고 하지만 음력으로 아직 갑오년(甲午年) 말(馬)의 해에 머물고 있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갑오년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모든 부문에서 정부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정을 펼쳐 오고 있는 중에 판교 환풍구 사건으로 또 다시 다수의 인명이 희생되는 참사를 빚었고 러시아에서는 조업 중인 우리 배가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울산의 공장에서는 질소 가스 누출로 인명사고가 발생했는가 하면 파주에서도 동종의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의정부에서는 아파트 화재사고로 인명 피해와 함께 엄동설한에 1백여 명 이상의 이재민까지 발생했다.
갑오년 이후부터는 안전을 강조한 탓에 안전을 등한히 한 사고로 고귀한 인간의 목숨을 잃는 사건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갑오년의 시간은 진행 중이어서 앞사람의 실패(失敗)를 거울삼아 주의(注意)하라는 교훈(敎訓)인 전거복철(前車覆轍)의 용어만 뇌리에 똬리를 틀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다.
중국 전한 5대 황제(皇帝)인 문제(文帝) 때 가의(賈誼, BC 168∼210)라는 신하는 당시 황제에게 “앞 수레의 엎어진 바퀴 자국(前車覆轍)은 뒤따르는 수레를 위한 교훈(後車之戒)이란 속담이 있는데, 전 왕조인 진(秦)나라가 일찍 멸망한 까닭은 잘 알려져 있어 만약 이 같은 과오를 피하지 않는다면 멸망의 전철(前轍)을 밟게 될 뿐이다”고 간하여 나라의 태평성대를 가져오게 했다.
이같은 태평성대를 불러온 충신의 말에서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전거복철후차지계(前車覆轍後車之戒)라는 말이 나왔다.
안전은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 등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한 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빨리빨리’라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결과만 놓고 따지며 과정의 소홀함을 등한히 했던 점에서 무의식적으로 도처에 이 같은 안전불감증이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지 반성해야 할 때가 됐다.
즉 국민들이 안전에 대한 인식인 대충대충이라는 용어가 사라질 수 있도록 뇌리에 의식화될 수 있도록 원천적인 교육을 통해 자라면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민·관 영역 구분 없이 매번 유사사건이 발생될 때마다 사후약방문(事後藥房門)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도 제대로 못한 채 부지불식간 우왕좌왕 방황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는 태도를 보여준 좋지 않은 면도 과거에 있었던 점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흔히 논을 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논에 댈 물이 없어 우물을 판다는 뜻으로 ‘임경굴정(臨耕掘井)’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사고나 사건이 터지면 정부는 국민들의 냄비 근성으로 당시에는 펄펄 끓어 넘치는 대책을 내놓으면서 호들갑을 떨다가도 때만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망각해 버리고 만다. 이 같은 임기웅변식의 안전 대책을 미연에 방지해 제도적․구조적 시스템화할 수 있도록 정부에 장관급 기구로 국가안전처를 조직해 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2일 발생한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LG디스플레이 공장의 질소가스 누출로 인한 인명 피해도 지난 12월 모 지역에서 발생한 질소 가스 누출로 인한 인명사고의 판박이다.
질소 자체는 인명에 치명적인 독성을 갖지 않지만 밀폐된 공간 등에서 누출될 경우에는 사람이 호흡해야만 하는 산소결핍 현상을 초래해 질식으로 인해 인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가스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사고현장 작업 공간에 가스가 누출되어도 이를 감지해 환기할 수 있는 시설은 당연히 갖춰져 있었어야 한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현장도 각종 규제가 완화된 틈을 이용해 신축한 도시형 아파트로 11층 이상에만 소화용 스프링클러를 설치토록 한 규정을 피했고 외벽도 불에 취약한 외벽 마감재 드라이비트 때문에 급속하게 번진 것으로 현장 감식에서 확인됐다.
안전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예측 불가능한 곳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새롭게 심어주고 있다.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원인 규명과 수습은 관계당국의 1차적인 몫이라고 하겠지만 엄동설한에 집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 떨고 있을 아파트 화재 이재민과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유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것 또한 관계기관이 최우선적으로 펼쳐야 할 과업이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재산과 인명 보호 등을 위해 신설된 안전처의 순기능이 기대되고 있는 부문이다.
각종 대형사고로 얼룩진 말의 해 갑오년이 순한 청양의 해 을미년의 밝은 스타트를 방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을미년 새해에는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우선으로 인명을 앗아가거나 예기치 못하게 빼앗기는 사건 사고가 없이 국태민안(國泰民安)한 해가 되길 바라는 것은 기자만의 소회는 아니라 본다.
김원태 선임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