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두 형제의 어머니가 12월11일 오전 10시20분께 머리 뒷부분을 둔기로 맞아 피를 흘린 채 옥상에 신음중인 것을 남편 박아무개씨(43)가 발견,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고 전하고 있다. 또 주변사람의 말을 빌려 평소 숨진 조씨가 장애자인 두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는 내용과 함께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흐른 지난 2월19일 김해경찰서가 조씨 살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붙잡은 인물은 ‘뜻밖에도’ 바로 조씨의 남편 박씨였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식 결과 박씨의 아파트 거실과 욕실에 숨진 조씨의 혈흔과 뿌리째 뽑힌 머리카락 등이 발견됐고 박씨의 속옷에서도 조씨의 혈흔이 묻어 있는 것이 밝혀졌다. 경찰은 박씨가 집안에서 조씨를 살해한 후 집 바로 위 옥상으로 끌고가 조씨가 타인에게 폭행당한 것처럼 위장한 것으로 보았다.
검찰 또한 경찰 수사 결과를 토대로 보강 수사를 벌여 피의자 박씨를 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했고, 얼마 전 결심 공판에선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창원지법 형사3부(최인석 부장판사)는 피고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이 피고인의 아파트 및 옥상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고 집안 곳곳에서 혈흔이 발견됐고, 제3자의 출입 흔적이 없어 피고인을 범인으로 의심할 만하지만 직접적인 범행도구와 목격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판결 직후 “박씨가 범인이 분명하다”며 항소를 제기한 상태. 항소심에서 박씨의 혐의를 놓고 피고측 변호인과 검찰측의 뜨거운 한판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사건은 남편이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점과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자칫 90년대 중반 유·무죄를 놓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의 재판(再版)이 될 양상이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아내 살인 혐의로 논란이 됐던 미국의 유명 미식축구선수 OJ 심슨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해 ‘김해판 OJ 심슨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기도 하다.
1심 재판 과정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던 것은 박씨의 속옷에 묻었던 ‘비산혈흔’(飛散血痕)과 집안 곳곳에서 발견된 혈흔, 그리고 살해동기였다.
우선 비산혈흔은 피가 튕기거나 뿌려져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통 총을 쏘거나 물건으로 타격했을 때 생기는 형상이다. 그런데 이 비산혈흔이 박씨의 러닝셔츠에서 발견된 것.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씨 속옷에 묻은 핏자국은 박씨가 둔기로 아내 조씨의 머리를 내리치면서 생긴 것으로 본다”며 여전히 박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피고 박씨와 변호인측은 “아내 조씨가 발견될 당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며 “혈흔은 박씨가 조씨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묻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타격으로 피가 분출되어 생긴 것으로 보기에는 그 양이 너무 적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논란거리는 박씨의 집안과 욕실 곳곳에서 발견된 혈흔. 검찰측은 “박씨가 집안에서 아내 조씨를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조씨를 옥상으로 옮긴 것이다”고 추정했다. 특히 집안에서 발견된 혈흔에서 조씨의 침이 섞여 나오고 욕실에서 조씨의 머리카락이 발견된 점을 들어 검찰은 “머리카락은 박씨가 조씨와 심하게 다투다가 머리채를 잡는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또 피에 침이 섞인 것은 박씨의 구타로 조씨의 입에서 피가 흘렀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 박씨와 변호인측은 박씨가 옥상에서 신음하던 조씨를 집안으로 끌고와 욕실 등에서 피가 흥건한 조씨의 입에 손가락을 넣는 등 구조활동을 하면서 침이 섞인 피가 나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머리카락 역시 구조과정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박씨의 변호인측은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부분 또한 피고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가 무엇보다도 의문을 제기한 것은 불분명한 살해동기에 대한 부분이었다.
검찰은 박씨가 골재판매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 10억대의 빚을 지게 된 상태에서 신형 승용차를 사려고 하다가 아내 조씨로부터 핀잔을 듣자, 이에 격분해 다툼 끝에 조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씨는 수사과정에서 승용차 구입 문제로 약간의 다툼은 있었으나 곧 화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결국 재판부는 부도로 인해 2001년 12월 협의이혼한 박씨와 조씨가 이혼 후에도 사실상 혼인관계를 유지해왔고 부부관계도 원만했다는 점, 박씨가 조씨의 명의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장애자인 두 아들에게 아내 조씨가 꼭 필요한 존재인 점을 들어 박씨를 범인으로 보기에는 살해동기가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부검 결과 조씨가 상당한 구타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만일 부부싸움을 했다면 박씨의 몸에도 그에 상응하는 타박상이나 반항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발견되지 않은 점을 들어 재판부는 피고 박씨측의 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또 하나 검찰측에 불리하게 작용한 것은 조씨의 사망 시간이었다. 박씨가 119에 신고할 때 조씨는 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고 병원으로 옮긴 지 12시간 이상 경과한 후에 사망했다. 박씨의 변호인측은 검찰의 주장대로 박씨가 조씨를 살해하고 은폐하려 했다면 조씨가 사망한 후 신고를 하는 것이 상식이지 의학지식도 없는 박씨가 아직 살아 있는 조씨가 회복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고했겠느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검찰은 “옥상이긴 하지만 아파트 구조상 집 바로 앞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사람의 출입이 잦은 오전시간에 누가 사람을 죽이겠나. 설사 그렇더라도 (옥상에서 범행이 이뤄졌다면) 주위 사람들이 조씨의 비명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나왔을 것이다. 박씨가 범인임에 틀림없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직접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정황으로 보나 간접적인 증거를 종합하면 박씨의 유죄를 확신하다”며 “추가적인 증거확보와 이미 제시된 증거를 재해석해 항소심에선 박씨의 유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부싸움 당시 둘째아들이 같이 집에 있었기 때문에 둘째아들의 진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으나 자폐 정도가 심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다”며 애를 태웠다.
검찰과 박씨측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진실공방에서 과연 향후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