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모임’이 지난 12일 정동 프란체스코수도회 교육회관에서 ‘새로운 정치세력,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1차 국민대토론회를 열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제1야당마저 우경화의 늪에 빠져 새누리당과 가까워지면, 양극화의 심화로 갈수록 고통 받는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은 누가 대변해야 합니까. 그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줘야 합니까. 바로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고, 국민모임이 가고자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1일 정동영 전 고문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치연합 탈당 및 국민모임 신당 창당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한창 새정치연합 전당대회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 전 고문의 탈당 소식은 “당에 비수를 꽂았다”는 볼멘소리와 “전대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이라는 평이 뒤섞인다.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정 전 고문 탈당에 신년 기자회견장에서 “안타깝고 참으로 서운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비대위에 관여하는 한 고참 당직자는 “정동영 전 고문 탈당을 당에서 그리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국민들이 느끼는 야권 분열에 대한 짜증스러움과 비판을 의식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혹자는 이번 국민모임 신당 작업에서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 돌풍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때와는 조건이 확연히 다르다. 윤희웅 민(MIN)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야당에 대한 불신과 새정치에 대한 대중의 갈망 등 신당에 대한 필요조건은 상당히 충족된 상태”라면서도 “필요조건이 곧 충족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 전 고문 합류로 대중 주목도가 높아진 측면은 있으나, (정 전 고문이) 과거에 비해 대중 동원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윤 센터장은 국민신당이 힘을 받기 위한 충족조건으로 “정의당이나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 패배한 쪽의 합류 여부, 그리고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기 위한 또 다른 대권주자의 참여”를 꼽았다. 앞서의 당직자는 “새정치연합에 문재인 지도부가 들어설 경우 천정배 전 장관이나 김두관 전 지사, 안철수 의원 정도가 이탈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무엇을 위한 신당이냐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새정치연합 안에서는 추가 이탈자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천정배 전 법무장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눈치다. 천 전 장관이 최근 ‘호남의 희망찾기’라는 이름의 릴레이 토론회를 열면서 신당 합류 또는 4월 재·보궐 선거 무소속 출마설이 제기되는 까닭에서다. 천정배 전 장관은 지난 19대 총선 당시 서울 송파을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에 천 전 장관의 입장은 한마디로 ‘내 마음 나도 몰라’다. 그는 15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내가 신당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물으니, 뭐라고 말은 해야겠고, 답답하다”면서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정치인데 현 상황에서 탈당하겠다는 것도, 안하겠다는 것도 다 우스운 소리다. 광주에서 토론회를 연 것도 기존에 하던 연구소 활동의 일환이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국민모임 신당 작업이 지난해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4월 재보선 판이 갑작스럽게 커진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결국 ‘선거용 정당’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명분을 앞세웠으나, 실상 비어있는 지역구 세 곳(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 중원, 광주 서구을)을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어느 쪽에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진보진영의 자구책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장 먼저 합류를 선언한 정 전 고문 역시 “4월 관악을 보궐선거를 위한 행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잖다. 현재 새정치연합 관악을 경선은 친노계 정태호 지역위원장과 지난 대선 때 안철수 의원을 지지했던 김희철 전 의원의 맞대결이 예상되고 있어 안에서는 묘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정동영 전 고문의 최측근은 “현재 정국 구상 중에 있어 당분간 언론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 이후 이야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광주 역시 ‘천정배 보선 출격’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천정배 전 장관의 한 측근은 ‘광주 서구을 무혈입성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1년짜리 의원직에 무리한 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천 전 장관은) 무소속으로 나가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사람”이라며 “광주시당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 하나 없는 게 지금의 새정치연합이 아니냐. 호남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7월 재보선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는 김두관 전 경남지사 역시 신당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역시 희망사항에 가깝다. 김두관 전 지사는 내년 총선 김포 재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김포시는 분구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어 안에서도 국회 입성 가능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국민모임과 이름이 비슷한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국민동행)’과의 연대 이야기도 슬며시 나왔다. 국민동행은 상도동계 김덕룡 세계상공인협회 이사장과 동교동계 권노갑 상임고문이 이름을 내걸고 있는 만큼 연대할 경우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국민동행 측은 “신당 관련 작업에는 전혀 관계돼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새정치연합과 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독자적으로 개헌 등에 관한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현재 국민모임 신당에 참여 의사를 밝힌 인사는 최규식·김성호·임종인 전 민주당 의원과 유원일 전 창조한국당 의원, 최순영 전 민노당 의원 정도다. 유원 일 전 의원은 <일요신문>에 “나도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보고 알았다. 아직 신당행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전해왔다. 그는 지난해 새정치연합에 입당한 상태다. 그러면서도 그는 “새정치연합은 희망이 없다”고 단언하며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연합은 책임질 줄 모르는 정당이다. 국민들 대부분 잊고 있는데, 지난 총선과 대선 패배 이후 그 책임자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지도부를 떠난 적이 없다. 지금 당대표 선거에 나온 박지원 문재인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원내대표를 거친 박기춘 전병헌 우윤근 모두 19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이었다. 조정식 사무총장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단 한 사람도 총·대선 패배에 책임지지 않고 선거 끝나고 원내대표 하고 사무총장 하고 이젠 당대표까지 하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정당이 있을 수 있고 어떻게 이 당에서 국민들이 희망을 느낄 수 있겠느냐.”
이런 가운데 정의당 측은 국민모임과의 합당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지난 1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진보의 힘을 모으는 것이 정의당에 주어진 사명”이라며 “더 큰 진보정치로 나아가겠다”며 진보그룹 통합 의지를 비쳤다. 현재 진보그룹은 정의당과 신당 추진 세력, 해산된 통합진보당 세력, 그리고 노동당, 이렇게 크게 네 그룹으로 나뉘어 있어 이를 하나로 모으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많다. 정의당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연합에 ‘통 큰 연대’를 제의했다가 “무시를 당했다”며 독자 노선을 걷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한 재선 의원은 “걔네들이 뭉치겠어? 진보그룹은 못 뭉친다. 새정치연합에 흡수되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은데 자존심상 또 그렇게는 안 한다”며 “당장 이정희 전 대표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일부 인사들이 합류 의사를 밝힐 경우 안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천호선 대표야 노무현 정부 인사인데 전당대회 결과를 보고 행보를 정하겠지. 민주당이 밉고 친노계가 밉다고 나간 사람들 치고 잘 된 사람들이 없다”고 내다봤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