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그룹이 조성한 비자금은 회사의 ‘군 공사 수주 로비’를 위해 사용됐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대보그룹은 지난 2011년 1월 이천 육군항공작전사령부 관사 사업권을 따냄에 이어 2012년 11월에는 주한 미군의 시뮬레이션 센터와 숙소 공사, 2014년 4월에는 파주와 양주의 육군 병영 시설 공사를 차례로 따냈다. 그야말로 군 공사 수주에서 ‘승승장구’한 셈이다. 한 건축업계 관계자는 “대보건설은 업계에서 관급 공사를 주로 해서 노하우를 쌓은 업체, 특히 현금을 많이 보유해서 안정성이 있는 곳으로 인식이 되어 있다. 군 공사 수주도 이러한 맥락에서 상당한 경쟁력이 있어 여러 유명 건설사를 제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관급 공사의 이면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눈길을 끈 것은 대보가 2011년에 따낸 이천 육군항공작전사령부 관사 사업권이다. 관사는 500억 원 규모의 B 아파트로, 지난해 12월에 준공됐으며 이천시 대포동에 위치해있다.
국방부는 해당 관사 사업을 2010년에 발주했는데, 당시 대보그룹은 치밀한 로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방부에서 이천 육군관사 공사 입찰심사위원을 선정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대보그룹은 바쁘게 브로커를 준비시킨다. 그리고 입찰심사위원 선정 하루 전날, 예비역 대령 출신 민 아무개 씨를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하고, 예비역 중령 출신 장 아무개 씨를 영업이사 자리에 앉힌다. 두 사람의 임무는 오로지 ‘전방위적 로비’였다.
민 부사장과 장 이사가 심의위원 중 ‘군 평가위원’을 담당했다면, 회사 임원들은 ‘민간 평가위원’을 담당했다. 대보그룹 재경팀은 최등규 회장의 지시 하에 로비 자금을 브로커에게 일괄 배분했다. 로비 자금 규모는 ‘수억 원’에 달했다.
민 부사장은 자신의 라인에 있는 사람 중에 평가심의위원들과 안면이 있는 시설장교나 시설 군무원 출신 브로커를 가동시켰다. 이들에게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7000만 원가량을 쥐어주며 심의위원들에게 전달하라 지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브로커 중 일부는 평가심의위원에게 돈을 전달한 것처럼 보고 후 자신이 임의 사용하기도 했다. 소위 ‘배달사고’인 것”이라고 전했다.
이것을 의식한 것인지 민 부사장은 지난해에는 직접 자신이 심의위원 2명에게 2000만 원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돈을 전달한 방식도 기막혔다. 직접 제과점에서 빵을 구입한 민 부사장은 빵 아래에 5만 원권으로 1000만 원을 깔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빵 봉투로 포장해 심의위원들에게 전달했다. 겉보기엔 부담이 적은 ‘제과 선물’처럼 위장한 것이다.
장 이사는 민 부사장보다 조금 더 대담했다. 장 이사는 2011년 평가심의위원 5명 중 3명에게 각각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씩을 직접 쥐어줬다. 이중 심의위원인 현역 대대장실에 직접 찾아가 대대장이 사무실에 없자 책상 서랍 안에 돈 봉투를 직접 넣어 두고는 전화로 “돈을 넣어 놨다”라고 알려줬다. 장 이사에게 돈을 받은 심의위원 세 명은 모두 당시 대보컨소시엄에 1위 점수를 주었고, 공사 수주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검찰 관계자는 “심의위원이 현역 군인인 경우 대부분 공병이나 시설장교 출신이기에 전역한 선배 장교 브로커들의 집중 로비 대상이 됐다”라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 로즈데일 빌딩에 위치한 대보그룹.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렇듯 대보그룹의 군 로비 실태가 드러나면서, 대보그룹의 비자금이 군에 얼마나 전방위적으로 퍼졌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뇌물액은 ‘2억 5000만 원’ 상당이다. 하지만 대보그룹의 비자금은 파악된 것만 그에 100배가 넘는 ‘211억 원’에 달한다. 그동안 대보그룹은 10여 개가 넘는 군 관급 공사를 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군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대보그룹 수사 이후로 군 공병대대 내부가 엄청 분주해졌다. 도대체가 뇌물이 어디까지 뻗어갔는지 군 당국에서도 감을 잡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보그룹 사태처럼 공병대대 출신이라면 현역도, 예비역도 브로커가 되거나 직접 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군 조사당국 차원에서 은밀하게 조사를 이어갈 것 같다”라고 전했다.
검찰에서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다”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천 군 관급공사에서 뇌물이 전달됐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도 대보그룹이 군 관급공사를 했지만 여기에 비자금이 쓰였는지와 관련해서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 그렇다고 비자금이 모두 군 수주 공사에만 쓰이진 않았다. 최 회장 개인 용도로도 일정 부분 사용됐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비자금이 정관계 쪽으로 뻗어나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대보그룹 계열사 대보정보통신의 경우 한국도로공사 관급 공사를 대거 수주해 유착 의혹(박스기사 참조)이 일고 있다. 이밖에 정치권에도 광범위한 로비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권 쪽으로 비자금이 간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대보그룹 사태를 통해 군 당국이 ‘군피아’ 수사를 확대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일고 있다. 건설업체가 군 관급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예비역 출신 장교들을 끌어 들여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보그룹 사태로 시작된 수사가 군피아 수사로 확대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제어하지 않으면 ‘제2의 대보그룹 사태’가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대보그룹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군 로비 전략’을 만들어 심의위원들에게 치밀하게 접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보는 평가심의위원 후보군부터 선물, 접대 등으로 착실히 관리해, 심의위원으로 선정되는 동시에 위원별 배점 비중에 따라 뇌물 액수를 최소 1000만 원에서 최대 3000만 원으로 차등 지급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국방부 심의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국방부 심의위원으로 선정되는 순간 외부인사와의 통신이나 접촉을 하지 않도록 공지를 받게 된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외부인사와 접촉할 수 있다. 업체 심의를 할 때는 합숙을 하기도 하는데, 전문가들끼리는 우수 업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만 가끔씩 이해가 안 되게 부족한 업체를 미는 ‘튀는’ 발언을 하는 위원도 있다. 결국 위원 개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데 업체에서 마음먹고 들어오면 어쩔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최등규 회장의 몰락 껌팔이 소년 - 1조클럽 기업가 - 로비 종합선물세트 대보그룹 최등규 회장은 업계에서는 ‘자수성가형 사업가’, ‘껌팔이 성공신화’로 통한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서울에 상경한 그는 신문배달, 껌팔이 등으로 생활을 하다가 자금을 모아 독서실을 열어 첫 사업을 시작한다. 이후 부동산 사업 등으로 자금을 모아 1981년 대보실업(현 대보그룹)을 창업,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다. 35년 만에 대보그룹은 매출 1조원, 계열사 7개, 임직원 수 3500명에 달하는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대보그룹을 승승장구하게 했던 관급 사업이 대보의 발목을 잡게 된다. 시작은 지난해 10월 도로공사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의혹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언주 의원은 대보정보통신이 한국도로공사 퇴직자를 영입해 휴게소 입찰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대보정보통신은 최근 4년 동안 도로공사로부터 일감을 넘겨받아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대보정보통신의 전신 또한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였던 고속도로정보통신이기에, 유착 의혹은 더욱 불거졌다. 앞서 이러한 의혹을 잡고 지난해 9월 대보그룹을 압수수색했던 검찰은 11월부터 최등규 회장의 비자금 조성 정황을 잡고 최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수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최근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및 군 공사 수주 로비 혐의를 잡고 수사 발표를 한다. 자수성가로 날개를 달았던 최 회장이 몰락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방식은 매우 치밀하게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최 회장은 전현직 임원 명의로 차명계좌 23개를 동원했다. 계좌에 상여금을 넣고 빼는 방식으로 51억 원을 조성했고, 납품 업자를 상대로 허위 계산서를 매입해 법인 자금을 입금한 뒤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211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비자금은 로비자금 외에도 자녀들 대출 변제, 개인금고 보관 등으로 사용됐다. 최 회장과 임직원이 구속된 이후 대보그룹 내부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대보그룹 관계자는 “각 회사의 대표이사들이 책임경영을 통해 오너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직원들 역시 흔들리지 않으려고 차분히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