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정의선 부자는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실패로 일석삼조의 기회를 잃었다. 아래 작은 사진은 현대기아자동차 빌딩 전경. 임준선·최준필 기자
정몽구 회장 부자가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에 나선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서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일감몰아주기 등 공정거래법 이슈를 피할 수 있는 총수일가 지분율 30% 미만을 맞춘다는 명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이미 한 차례 옥고를 치른 만큼 자칫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공정거래법 위반 가능성에 대해 대비하려 했다는 설명은 어느 정도 설득이 있다”고 풀이했다.
두 번째는 순환출자 해소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가 가장 대표적이지만, 이밖에도 여러 작은 순환출자 고리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제철이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 5.66%다. ‘현대모비스-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의 고리다. 그룹 주력사 가운데 이 지분을 인수할 곳은 없다. 상호출자나 순환출자 제한에 걸려서다. 결국 총수일가가 사들이는 게 가장 낫다. 현대모비스는 그룹의 지주사 격이다. 총수일가로서는 지배구조 핵심 밖에 있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일부 팔더라도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손해 볼 게 없다.
세 번째가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를 위한 사전포석이다. 현대차그룹 경영권의 핵심은 기아차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이다. 따라서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과 정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이 가장 유력했다.
이렇게 되면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대신 현대모비스를 지배하고,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대신 현대글로비스를 지배하게 된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라는 순환출자 구도도,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글로비스’라는 수직구도로 바뀐다.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30만 원을 돌파하면서 정 부회장은 보유 지분과 현대이노션 지분매각대금 3000억 원을 합치면 기아차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 16.88%와 맞먹는 자산을 갖게 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룹 물류를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왜 기아차가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으로 순환출자구조 해소만 한 게 없다”면서 “이미 현대차와 기아차는 주요 계열사 지분을 나눠 소유하고 있어 이 정도 명분이면 주주들이 크게 반대할 리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일석삼조’의 기회를 잃었다. 지분 매각 실패는 현재로서 현대글로비스에 투자할 후보가 없다는 점을 확인시킨 셈이 됐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뭔가 수익보장을 해줄 장치를 해주고서라도 반드시 성사시켰어야 하는 딜(Deal)”이라며 “정 부회장 지분이 현대모비스로 이동해도 현대글로비스가 투자자들이 탐낼 만한 가치를 가질 것이란 믿음을 (시장에) 심어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제 정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에 접근할 대안으로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카드가 있다. 현대모비스도 사실상 현대·기아차의 AS부품 유통으로 돈을 번 회사다. 현재 영위 중인 모듈사업도 물류와 유통 비중이 상당하다. 현대모비스 주주들의 반대가 거셀 수 있지만, 정 부회장 시대에도 계속 그룹 지주사로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반대급부가 설득 논리가 될 수 있다.
다만 주식 맞교환 때보다 정 부회장이 확보할 수 있는 지분율이 좀 줄어든다. 지난 12일 종가 기준으로 합병이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정 부회장이 확보할 합병법인 지분율은 10.4%다. 대규모 신주발행에 따른 주가희석 효과 때문에 주식맞교환 때 확보할 수 있는 지분율 14.67%보다 낮다. 정 회장 지분율은 8.5%(주식맞교환시 12.26%)까지 올라간다.
문제는 또 있다. 합병을 하면 기아차가 여전히 단독으로 1대주주(11.4%)를 유지해 기존 순환출자 구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정 회장과 기아차가 공동으로 현대모비스를 지배하는 현 지배구도가 그대로 연장되는 셈이다.
정 회장 부자가 다시금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실패를 거울삼아 투자자들을 유치할 확실한 당근을 제시한다면 꼭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익명의 펀드매니저는 “변하지 않는 분명한 한 가지는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주주로 있는 한 현대차그룹은 어떻게 하든 기업가치를 올리려 할 것이란 점”이라며 “맞교환을 하든, 합병을 하든 결국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높아야 하고, 급락하던 주가가 나흘 만에 반등한 것도 결국 이 같은 구조를 투자자들이 간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