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살 때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혜택을 주는 ‘복합할부금융’ 수수료율 등을 놓고 현대차그룹과 삼성카드가 대립을 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자동차 복합할부금융은 차를 할부로 구매하는 고객이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캐피탈사가 카드사에 차 값을 일시불로 대신 갚아주고, 자동차 회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카드사는 자동차 회사로부터 받은 수수료의 일부는 고객에게 캐시백 형태로 돌려주고, 나머지는 캐피털사와 나눠 갖게 된다.
다소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복합할부금융은 소비자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기에 그동안 큰 문제없이 운영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현대차가 “수수료가 과도하다”며 이의를 제기하면서부터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카드업계는 복합할부금융을 통해 차를 판매하는 국내외 자동차업체들 가운데 유독 현대차가 나선 것을 두고 현대카드·캐피탈을 지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최근 자동차 할부시장에서 현대카드·캐피탈이 맥을 못 추고 있는 만큼 현대차가 총대를 메고 시장 판도를 바꾸려 한다는 것이다.
2013년 기준으로 삼성카드의 복합할부 시장 규모는 1조 2500억 원으로, 현대카드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2013년 하반기부터는 현대카드가 복합할부 상품을 많이 취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난해 기준으로 삼성카드의 시장 규모는 훨씬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는 지난해 KB국민카드에서 시작해 최근 BC카드까지 대형 카드사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카드업계를 평정할 태세다. 가장 먼저 협상 테이블에 앉은 KB국민카드는 현대카드가 주장하는 ‘적정수수료율’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체크카드 수수료율과 비슷한 1.5%선에서 합의점을 도출했다. 사실상 현대차가 판정승을 거둔 셈인데, 이 과정에서 현대차는 “카드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하는 등 초강수를 두며 KB국민카드를 당혹케 했다.
특히 KB카드와의 협상과정에는 현대자동차 이원희 재무담당 사장이 협상테이블에 앉는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출동했다. 이원희 사장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직접 만나 수수료율에 관해 담판을 지었다.
이어진 BC카드와의 협상에서도 현대차는 강경 노선을 굽히지 않았다. 현대차와 BC카드는 시한을 연장하면서까지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결국 복합할부금융은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BC카드로 현대차를 구매하려면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고, 복합할부금융은 이용할 수 없다.
카드업계는 현대차의 다음 행보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현대차의 최종목표물로 예상되는 삼성카드와의 담판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삼성카드와 현대차의 가맹점 계약기간은 오는 3월 만료되는 만큼 양측은 조만간 연장 여부를 위한 협의를 시작하게 된다. 카드사들은 현대차의 삼성카드의 협상 결과가 사실상 복합할부금융 시장의 존폐를 결정지을 중대 사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카드는 KB카드와 BC카드를 차례로 상대하는 동안 삼성카드를 향한 칼날을 갈아왔다. 몇 차례 협상 테이블에 앉는 동안 카드사를 상대하는 노하우도 쌓았다는 것이 내부 평가다. 삼성카드도 이미 반격의 칼을 빼든 상태다.
이에 삼성 측은 ‘신복합할부’라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며 선수를 치고 나섰다. 신복합할부는 고객이 카드로 결제를 하면 30일 뒤에 캐피탈사가 카드사에 대금을 갚는 방식이다. 한 달 뒤에 대금결제가 이뤄지는 셈이기에 한 달치 이자는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기존 방법과 차이가 있다. 삼성카드가 이 방법을 들고 나온 이유는 “1~2일 뒤에 대금을 갚으면서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한다”는 현대차의 명분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기존 복합할부 상품은 고객이 카드로 차 값을 결제하면, 카드사와 연계된 캐피탈사가 결제금액을 1~2일 만에 갚아주고 고객으로부터 매달 할부금을 갚은 형식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카드사가 1~2일 만에 캐피탈사로부터 대금을 받기에 신용공여 및 대손(대출 손실) 비용이 없는데도 1.9%의 카드 수수료를 챙기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해왔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고객에게 실제로 카드대금이 청구되는 한 달 뒤로 대금결제일을 미루면 현대차는 더 이상 수수료 인하를 요구할 근거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측은 삼성카드의 신 복합할부금융 상품이 ‘꼼수’라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삼성카드의 새 상품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대신 계열사인 기아차를 이번 싸움에 끌어들이며 확전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기아차는 자동차 할부 금리를 기습적으로 인하하며 반격에 나섰다. 기아차는 지난 7일 이 달부터 모든 차종의 할부기준 금리를 평균 1%포인트 낮췄다. 할부 금리가 낮아지면 저금리를 앞세운 복합할부 상품의 장점이 사라지는 만큼 굳이 복합할부를 이용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렇듯 현대카드를 돕기 위해 시작된 현대자동차의 카드시장 개입은 자칫 삼성그룹 대 현대차그룹의 자존심 대결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