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 ||
최근 조직폭력전담 서울 검·경합동수사부(공동본부장 서울중앙지검 이경재 강력부장·서울지방경찰청 김용화 수사부장)가 지난해 말 서울 잠실에서 발생한 ‘정읍파’ 부두목 홍아무개씨(36) 살인 미수 사건을 저지른 ‘배차장파’ 행동대원급 조직원 13명 중 12명을 구속, 이들이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에서 최고 6년형을 선고받았다고 발표한 것. 특히 한 지방대학의 총학생회장이 조직원의 일원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89년 6월 서울 강남 지역 유흥가를 놓고 대립하던 국내 3대 패밀리 조직 중 하나인 ‘범서방파’의 자금 관리책을 살해한 뒤 그동안 활동이 위축됐던 ‘배차장파’. 그러나 조직의 리더와 함께 활동하는 ‘직계파’ 행동대원이 아닌, 각 지역에 퍼져 있는 ‘소계파’의 행동대원급 조직원들이 상대파의 중심부를 직접 노리는 새로운 방식의 범행 수법을 드러내 보이면서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배차장파’가 ‘정읍파’ 부두목 홍씨의 서울 잠실본동 오피스텔에 나타난 것은 지난해 12월18일. 수일 전부터 홍씨의 소재를 수소문했던 ‘배차장파’ 행동대장급 조직원 유아무개씨(31)는 홍씨의 주소를 파악한 뒤 이날 김아무개씨(26) 등 후배 조직원 5명을 불러 “홍씨가 나타나면 연락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
잠복에 들어간 김씨는 이날 오후 11시 홍씨가 오피스텔에 귀가하자 곧바로 대전, 익산 등에 있는 8명의 조직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결국 유씨 등 모두 13명이 홍씨의 집 앞에 모여 홍씨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놀랍게도 13명 중에는 지방 I대의 현 총학생회장인 임아무개씨(31)도 조직원의 일원으로 범행에 가담했다.
지난 90년 ‘배차장파’에 가입해 활동했던 임씨는 지난 2000년 청송교도소 수용 중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해 지난해 이 대학 목재공업과에 합격했으며, 지난해 9월 이 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튿날 새벽 6시. 아침 운동을 위해 자신의 오피스텔 정문을 나서던 홍씨는 두 명의 ‘배차장파’ 조직원들이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머리, 어깨 등을 맞아 쓰러진 뒤 30cm가량의 회칼을 든 또 다른 두 명의 조직원으로부터 하복부, 허벅지 등 네 곳을 난자당했다. 조직원들은 홍씨가 쓰러진 뒤 유유히 사라졌고, 홍씨는 전치 3주가량의 장요근부분파열상 등을 입었으나 간신히 목숨은 건졌다.
올해 1월3일 ‘정읍파’ 부두목이 칼부림을 당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합동수사부는 두 달여가량 사건 현장 및 배차장파 조직에 대한 탐문 수사 등을 벌여 이 같은 범죄 사실을 확인했다. 그 뒤 합수부는 범행을 저지른 조직원 13명 중 12명을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지명수배된 나머지 1명은 아직 검거하지 못한 상황.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11명 조직원들은 1심 재판 후 항소를 제기,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 조직의 행동대원급 조직원들이 상대 조직 부두목에게 ‘비수’를 날린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현재까지는 사건 발생 보름 전 ‘정읍파’ 조직원이 ‘배차장파’ 조직원을 칼로 찔러 부상을 입힌 사건이 이번 범행의 계기가 된 것으로 결론 내려진 상태. 실제 합수부는 ‘정읍파’ 부두목 살인 미수 사건을 수사하면서 지난해 12월5일 올림픽공원 경륜장 부근에서 양측 조직원간에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는 첩보를 입수, 두 사건을 연관 지어서 수사를 진행해왔었다.
검거한 조직원들에게서도 “당시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이 결투 도중 천아무개의 주머니에 있던 칼이 떨어지자 유아무개가 ‘비겁하게 칼을 쓰려고 했다’고 하면서 그 칼로 천씨를 찌르고 달아났고, 이 때문에 보복을 결심한 것”이라는 진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수부의 고민은 범행 의도와 배후를 확실하게 밝혀내지 못한 부분. 합수부는 ‘배차장파’의 범행이 단순히 행동대원급 조직원들의 우발적인 감정에 의한 응징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합수부는 간부급 조직원들의 가담 여부를 밝혀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폭력 사건이 일반 폭력 사건과는 다르게 피해자와 면식이 없는 하부조직원이 범행에 나섰고, 살인 혐의를 피하기 위해 교묘히 허벅지 등을 가격한 점으로 미뤄 범행이 조직적으로 자행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잔인한 사건에 최소한의 조직원을 동원, 최소한의 처벌을 받고 뒷수습을 할 경우, 조폭세계에서 위상이 높아져 각종 이권 등 자금원 확보에 용이하다는 게 폭력 조직의 불문율로 통한다는 점도 계획적 범행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한편 합수부는 그동안의 수사 결과와 첩보 등에 비춰 ‘배차장파’와 ‘정읍파’ 조직이 경마 사업과 관련한 이권 개입 등의 문제로 그간 대립각을 세워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크린 경마장과 그 주변의 이권을 놓고 두 조직이 맞섰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해 12월5일 양 조직원 간의 ‘대결’은 물론, 같은달 19일의 ‘정읍파’ 부두목 습격 사건도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이 같은 사안이 빌미가 된 칼부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