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9단(오른쪽)이 제58기 국수전 결승에서 ‘국수전 사나이’ 조한승 9단을 꺾고 13번째 ‘국수’가 됐다.
조한승 9단은 제55기 때 도전자가 되어 당시 타이틀 보유자였던 최철한 9단을 3 대 2로 꺾고 우승했고, 이듬해에는 최 9단이 도전장을 들고 찾아와 리턴매치를 벌였는데, 거기서는 3 대 0으로 완봉승을 거둔 데 이어 다음 해 도전자 이세돌 9단까지도 3 대 1로 제압, 타이틀 3연패에 성공하면서 ‘국수전의 사나이’로 자리를 굳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말하자면 올해가 롱런 여부의 고비였던 것인데, 박정환이 도전자로 선발되자 여론은 정상 3인방의 한 사람인 박정환에게 자연스럽게 기울었다. 최철한은 근래 조금 순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있고, 이세돌은 7년 전에 이미 ‘국수’를 역임한 바 있는 데다가 요새는 세계타이틀이나 10번기, 혹은 중국리그 같은 쪽에 마음이 가 있는 것으로 비쳐지는 데 비해 박정환은 부동의 랭킹 1위인데도 현재 자칫하면 무관이 될 처지인 얄궂은 상황에서 ‘국수’에 대한 첫 도전이며, 아직은 타이틀의 질과 양에서 국내외를 가리지 않을 때이기 때문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박정환은 제1-2국을 연승함으로써 일찌감치 대세를 결정했다. 3국에서는 조한승이 반집을 남겨 극적으로 반격의 교두보를 구축하는가 싶기도 했으나 거기까지였던 것.
‘국수’는 국내 최초의 프로기전이다. 기전의 규모, 타이틀 서열에서는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과 GS칼텍스배와 지난해 출범한 렛츠런배 등의 뒤에 있지만, 그래도 최고(最古)의 역사와 전통이라는 훈장 덕분에 여전히 한국 프로바둑의 상징으로 공인받고 있다. 조남철 9단에게서 시발해 김인→윤기현→하찬석→조훈현→서봉수→이창호→루이나이웨이→ 최철한→윤준상→이세돌→조한승, 그리고 이번에 이름을 올린 박정환까지 역대 ‘국수’는 13명이 되었다. 이른바 ‘국수산맥’의 계보를 보자면 하찬석까지는 한국 현대바둑의 여명기, 일본유학파-기타니 문하생들의 시대였다. 하찬석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조훈현은 일본유학파의 막내로 한-일 바둑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면서 서봉수와 함께 한국 바둑의 일대 도약을 이끈 눈부신 기관차였으며 조훈현의 제자 이창호는 한국 바둑의 절정기를 구가했고, 이후는 급속한 세계화의 시대였다. 중간에 유창혁이 빠져 있는 것과 유창혁 대신 루이나이웨이가 끼어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국수’의 위상은 일본의 ‘본인방’과 같다. ‘본인방’은 일본기원 서열에서 ‘기성’ ‘명인’ 다음의 3위지만, ‘적자(嫡子)의 타이틀’이라는 후광이 빛난다. 타이틀을 획득해 재위할 시기에는 일본기원은 그 이름을 ‘본인방 ○○’라고 고쳐 불러준다. 조치훈 9단은 본인방 10연패로 ‘제25세 본인방 치훈’이다. 최고 타이틀 ‘기성’이 생기기 전 ‘컴퓨터’란 별명의 초정밀 계산 바둑으로 이중허리 린하이펑의 두터움을 꺾고 몇 년 동안 ‘명인’ ‘본인방’ 양대 타이틀을 석권했던 이시다 요시오 9단은 ‘제24세 본인방 수방(秀芳)’이다. 두 사람은 각각 그 이름으로, 현재 이렇다 할 타이틀이 없는데도, 일본기원 서열 4-5위에 올라 있다. “나는 1년에 네 판만 이긴다”면서 ‘기성’을 6연패하고 “내가 최고”라고 큰소리쳤던 후지사와 슈코는 인기는 ‘짱’이었지만, 본인방의 적자는 되지 못했다. 조치훈 9단과 평생 경쟁했고 ‘기성’ 8연패의 이력으로 현재 서열에서는 조치훈에 앞서 있는 고바야시 고이치 9단도 그렇게 염원했지만 끝내 본인방에 입성하지는 못했다.
말하자면 ‘국수’가 그런 것. 박정환 9단도 4국을 이긴 후 “국수전은 정말 우승해보고 싶은 기전이었다. 국수 타이틀을 정말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단 박 9단뿐 아니라 한국 프로기사라면 예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때 화려한 전천후 폭격으로 팬들을 매료시키면서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렸던 일지매 유창혁 9단이 국수 계보에 빠져 있는 것은, 유 9단 자신은 대범하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팬들이 오히려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윤준상은 한 번에 그쳤지만, 그래도 국수 반열에 이름이 있고, 조한승은 롱런에는 실패했지만 3연패만 해도 호락호락한 기록은 아닌 것.
돌이켜보면 재작년 3월, 우리 박정환 9단이 중국 판팅위에게 져버린 응창기배 결승이 참 아깝다. 객관적 전력으로는 박 9단이 분명 앞서 있던 때였는데, 박 9단은 응창기배 결승 바로 며칠 전에 농심배에 나가 전력을 소진했던 것. 두 판을 전력투구해 한국에 우승을 안기기는 했지만, 대신 그 피로가 상당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 그러나 다 지난 일. 자, 이제 박정환이 국수 취임을 계기로 삼아, “지금까지 세계 타이틀 같은 큰 마당에서는 결정적 순간에 스퍼트가 약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는 세간의 평을 떨치고 세계 타이틀로 약진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광구 객원기자
‘수읽기’란 바로 이런 것 <1도>는 4국의 한 장면이다. 흑이 박정환. 우하귀 흑1 자리에 손이 먼저 가게 되어서는 도전자가 집으로 앞서기 시작한 느낌. 백은 일단 우상귀 쪽 흑진을 향해 2로 정찰기를 띄웠다. 여기를 적절히 삭감하면 아직 그렇게 서두를 단계라고 본 것인데, <2도> 흑1의 마늘모붙임이 도전자의 강수였다. 야아~ 이렇게, 독하게 받을 줄은 몰랐다. 백이 여기서 3의 곳으로 후퇴할 수는 없는 노릇. 체면과 기세상 백2로 들어가는 것은 무조건이리라. 도전자는 흑3으로 머리를 두들긴다. 백4, 이것도 이렇게 무조건 젖히고 볼 자리. 도전자의 강수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불문곡직 5로 끊어 버린다. 결과는? <3도> 백1~흑14와 이어진 <4도> 백1~흑6까지에서 보듯 백은 아무 소리도 못한 채 잡혀 버린 것. 화장실에 갈 때도 사활책을 들고 간다는, 소문이 자자한 박정환의 힘과 수읽기가 바로 이런 것. 박 9단은 국후 인터뷰에서 “나는 기풍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건 “수읽기로 일관한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었다.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