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어느 나라나 넘치는 성욕을 주체 못해 여러 여성을 섭렵한 권력자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일본의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도 그렇다. 그는 일본에서 소문난 바람둥이로, 어딜 가나 여자를 찾았다고 한다. 당시 메이지 일왕이 그에게 “밤놀이를 조금 삼가는 것이 어떠냐”고 충고까지 했을 정도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홍등가를 찾은 이토 히로부미가 게이샤(기생)에게 첫눈에 반하고 마는데, 그녀를 마차에 태우고 밤새 정을 통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 때문에 훗날 “일본에서 처음으로 카섹스를 즐긴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라고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중국이라면 마오쩌둥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그는 여성 편력도 가히 ‘혁명적’이었다. 마오쩌둥은 총 네 번 결혼했는데,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밤마다 무도회를 열어 미녀를 물색했다.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한 여성들은 배우부터 외국 여기자, 열차승무원까지 다양했다고 전해진다. 말년에는 미인 간호사를 곁에 두고 총애했으며 죽기 전까지 섹스에 적극적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대륙의 남다른 스케일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고대 중국의 왕들은 처첩의 수도 상상을 초월한다. 수나라의 양제는 성을 즐긴 대표적인 왕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거느린 궁녀의 수는 무려 6만 명에 달했다. 이는 매일 밤 다른 여성과 관계를 가진다고 해도 166년이나 걸리는 숫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양제는 미녀를 더 모집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미인 콘테스트’를 개최했다고 하니 그저 입이 벌어질 따름이다.
여색(女色)에 탐닉한 문인으로 눈을 돌리자면,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를 들 수 있다. 사실 위고의 삶은 스캔들로 얼룩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가 부인과 사랑에 빠져 간통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이 있는가 하면, 당시 인기 절정의 여배우 쥘리에트 드루에와는 죽기 전까지 불륜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위고는 아내와 드루에의 눈을 피해 다른 여인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70세가 넘어서도 젊은 하녀와 바람이 나는 등 위고는 그야말로 왕성한 성욕의 소유자였다. <여자의 일생>을 쓴 모파상도 희대의 바람둥이로 유명하다. 그는 자유분방한 성생활로 인해 매독에 걸렸지만 이후에도 수많은 여성들과 잠자리를 계속하면서 남다른 정력을 과시했다.
이들 못지않게 화려한 남성 편력을 지닌 역사 속 여성도 있다. 특히 빠질 수 없는 인물이 18세기 러시아를 통치했던 여제 에카테리나 2세다. 그녀는 12명의 연인을 두었는데 가장 사랑했던 이는 10세 연하였던 크림반도의 총독 포템킨이었다. 그러나 에카테리나 2세는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좋아하는 타입의 남성과 밤마다 성을 만끽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여왕의 남자는 300명 이상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일본인 여성 가운데 섹스 스캔들로 관심으로 모은 인물은 헤이안 시대의 시인 이즈미 시키부다. 유부녀였던 그녀는 일본의 왕자 다메타카친왕과의 염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외도사실에 격분한 남편이 떠나갔고, 아버지는 딸의 행동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면서 부모자식의 관계를 끊었다. 하지만 이즈미의 스캔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메타카친왕이 죽은 뒤 이번에는 그 친동생 아쓰미치친왕과 격렬한 사랑에 빠져 또 한 번 일본이 발칵 뒤집어졌다. 이즈미가 ‘관능의 가인’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측천무후
그렇다면 역사적 인물 중 색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이는 누가 있을까. 일설에 의하면 나폴레옹은 ‘냄새 도착증’으로 알려졌다. 특히 카망베르 치즈가 애처였던 조세핀의 체취와 같다고 하여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전쟁터에서 돌아올 때도 조세핀에게 “지금부터 목욕을 하지 말고 기다려주시오”라고 편지를 썼다는 일화가 있다.
<보바리 부인>을 남긴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냄새 중에서도 극도의 구두냄새 도착증. 사랑하는 여자의 땀 냄새가 베인 구두를 더없이 좋아했는데, 구두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편 <주간겐다이>는 “유럽 귀족들의 사디즘과 마조히즘 성향은 유모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유아기 때 교육을 위해 유모가 엉덩이를 때렸던 기억이 원인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서 잡지는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영국의 왕 에드워드 8세도 사실은 엉덩이를 세게 때리는 것에 성적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면서 “세기의 러브스토리 뒤에는 에드워드 8세의 성적 열등감을 심프슨 부인이 감싸준 사연이 숨어 있다”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