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흥업소 종사 여성만을 골라 강도 강간을 일삼아 온 강씨가 현장검증에 나서고 있다. 그의 범행 수법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빼닮았다. | ||
지난 3일 서초경찰서에 검거된 한 살인 사건 피의자를 두고 강력반 형사들이 꺼낸 말이다. 이 피의자는 무려 4년 동안 서울 논현동과 반포동 일대를 무대로 이른바 ‘나가요’ 여성들을 대상으로 강도·강간을 일삼아오다가 끝내 살인까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피의자는 노점상 출신인 강아무개씨(34). 공교롭게도 강씨는 ‘연쇄살인범’ 유영철(34)과 몇 가지 비슷한 면면을 보여 형사들을 놀라게 했다.
유영철이 출장안마 여성들에 대한 분노로 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것처럼 그 역시 유흥가 여성에게 적개심을 품고 이들을 노려왔다는 점, 둘 모두 한번 검거된 뒤 교도소에서 자신의 범죄수법을 보다 치밀히 연구해 완전범죄를 꾀했다는 점 등이 가까운 예.
만약 이번에 강씨가 검거되지 않았다면 제2의 유영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최근 몇년간 강씨는 논현동 거리에서 가방 등을 파는 노점상을 해왔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호떡 장사에도 나서는 등 나름대로 살기 위해 애쓴 흔적도 엿보인다. 그러나 노점 행상은 강씨가 범행대상을 찾는 그만의 수단이기도 했다.
강씨는 밤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유흥가 여성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희생자’를 물색했다. 실제 강씨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룸살롱,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노래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이었다.
강씨의 노점상이 위치한 A은행 논현지점 앞은 그 일대 여성들이 꼭 거쳐가는 길목이었다. 노점상이란 그럴듯한 위장막을 친 그는 손댈 만한 여성을 발견하면 일단 미행을 했다. 그리곤 ‘찜’한 여성이 혼자 사는 것을 확인하면 자신의 범행 리스트에 올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면 강씨는 작은 가방을 메고 점찍은 여성의 집을 방문했다. 피해여성들이 문을 열게 하는 가장 좋은 수법은 “가스 검침 나왔다”는 거짓말이었다.
강씨의 이 말에 백이면 백, 모든 여성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쓴 강씨의 칼이 피해여성의 목을 겨누었다. 서슬 퍼런 강씨의 기세에 대다수 피해여성들은 꼼짝 못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 강씨가 현장검증에서 범행 당시를 재연하고 있다. | ||
모든 상황이 종료되면 강씨는 피해여성들에게 ‘이불을 덮어쓰고 있으라’고 시킨 뒤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피해여성들은 강씨가 현장을 뜬지도 모른 채 무서움에 떨다가 한참 뒤에야 일어설 수 있었다.
처음 강씨가 이런 수법의 범행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부터였다. 고향이 제주도인 강씨는 1999년 상경해 유흥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중 단란주점 한 곳에서 3년 가까이 DJ로 일했다고 한다. 2000년에는 유흥가에서 만난 여성과 동거를 하기도 했었다.
강씨가 유흥업소 여성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가 유흥가 여성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던 데다 자신과 동거하던 여성이 6개월 만에 결별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버렸던 데 대한 분노가 컸기 때문이었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를 포함해 아버지와 함께 살던 여자들 4명이 모두 아버지를 버렸고, 나 자신도 동거하던 여자에게 배신을 당해 여자들에 대한 증오심이 생겨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동거녀가 떠나고 이별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될 무렵부터 강씨는 여성들에 대한 범죄를 시작했다. 2001년 12월13일 오후 5시께 서울 반포동 주택가. 골목 어귀에 선 강씨는 어느 한 집을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뒤 그 집에서 한 여성이 나왔다. 강씨는 곧바로 이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칼을 들이댄 뒤 그녀가 나온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방안에는 또 다른 여성 두 명이 자고 있었다. 머리채를 붙잡힌 여성은 친구집에서 놀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강씨는 세 여성에게 각각 이불을 덮어쓰게 한 뒤 이들의 지갑을 털었다.
먼저 돈을 챙긴 강씨는 이들을 상대로 번갈아가며 욕정을 채웠다. 이것이 현재 밝혀진 강씨의 첫 범행이었다.
이후 강씨는 간간이 돈이 필요하거나 여성에 대한 복수 충동이 일 때마다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이 현재 밝혀낸 사건만 해도 13건. 하지만 신고되지 않은 범행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동안 이어지던 강씨의 ‘여성 유린극’은 사실 지난 연말 한 번 꼬리를 밟혔다. 범행을 마치고 나오던 길에 피해여성의 신고를 받고 즉각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던 것. 그러나 초범이었던 강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4개월 만에 다시 거리로 돌아왔다.
철창에 갇혀 있는 동안 강씨는 자신의 범행을 더욱 철저하게 연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출소 후 그의 범행은 더욱 ‘완전범죄’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는 오직 혼자 있는 여성만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돌발 상황에 대비했고, 가스검침원을 가장해 주변사람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침입을 했다. 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철저히 가렸다. 범행이 거듭될수록 강씨는 자신의 범행이 완벽해져가는 것을 즐겼고 그럴수록 범행은 더욱 잦아졌다.
▲ 서초경찰서 김한곤 형사가 강씨의 범행수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이날 역시 강씨는 반포동의 한 빌라 지하에 가스검침원을 가장한 채 들어갔다. 그곳은 노래방에서 일하던 피해여성 마아무개씨(34)의 집이었다. 강씨는 평소 수법대로 마씨를 제압하려 했다. 그러나 마씨의 반항이 워낙 드세자 결국 집 안에 있던 칼로 마씨의 목과 가슴을 7군데 찔러 잔인하게 살해하고 말았다.
살해 후 강씨는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마치 원한에 의한 살인인 것처럼 위장했다. 돈은 하나도 가져가지 않은 채 범행에 사용한 칼을 죽은 피해자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피해자의 집에 있던 여성용 샌들을 신고 핏자국을 이리저리 묻히고 다닌 뒤 자신의 신발은 욕실에서 물로 씻었다.
마씨의 시신은 그후 6일간 집 안에 방치됐다. 무더위로 시체가 썩어가면서 지독한 냄새가 풍기자 8월27일 집 주인이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해 그녀의 죽음이 알려졌다.
경찰은 즉시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잔혹한 범행 수법 때문에 처음에는 원한에 의한 살인에 초점을 맞추고 주변을 조사했다. 그러나 마씨 주변에선 별다른 원한이나 채무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자칫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마씨와 마지막 통화를 한 친구의 말이 단서로 떠올랐다. 당시 마씨가 “지금 옆에 가스검침 아저씨가 와서 가스를 점검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강씨는 이전까지의 범행에서 피해자들이 문을 열자마자 칼을 들이댔으나 마씨의 경우 전화통화를 하면서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곧장 범행에 돌입하지 못했다.
경찰은 ‘가스검침원’을 가장한 그간의 강도·강간 사건들과 침입 수법이 비슷한 점에 착안해 강도 피해여성들을 불러 동일전과자의 사진을 대조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간 살펴본 강도 및 강간 전과자 사진만 무려 3만8천4백31건. 이런 과정을 거쳐 비슷한 수법의 범행을 저질렀던 강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형사들은 추석 연휴도 반납한 채 피해자의 집 앞과 강씨의 연고지 등에서 잠복과 탐문을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강씨의 행적을 포착해 지난 10월3일 충북 음성군에서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강씨를 검거한 서초경찰서 김한곤 형사(41)는 “강씨의 수법이 점점 대담해지고 교묘해져 가고 있었고 범행 횟수가 점점 빨라진 것으로 보아 검거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제2의 유영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강씨 범행의 특성을 설명했다.
사실 그간 강남 논현동 일대에는 강씨의 범행 때문에 ‘공포의 가스검침원’ 괴담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다. 강씨가 검거되면서 괴담의 실체가 밝혀졌지만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흥가 여성들은 아직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 피해여성은 “우리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고 성매매 특별법으로 단속도 심해진 데다 강력범죄의 위험에까지 노출돼 있으니 정말 살기가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