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국무위원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 티 타임은 소통 강화를 주문하는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청와대
첫번째 술렁임은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는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한국갤럽이 지난 1월 20~22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1명을 상대로 휴대전화 설문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긍정평가는 30%로,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부정평가는 60%로 각각 집계됐다. 박 대통령 취임 때부터 계속 돼 온 이 기관의 정례 조사에서 긍정평가는 역대 최저치, 부정평가는 역대 최고치 기록을 깨뜨리게 됐다.
특히 박 대통령의 지지율에 해당하는 긍정평가 수치는 2주 전 40%, 전주 35%에 이어 2주 연속 5%포인트씩 급락하는 추이를 보였다. 정치 전문 조사업계에서 대통령의 지지율 30%는 통상 ‘국정운영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30%선이 무너질 경우 국회와 여당, 야당의 협조가 없다면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어떤 정책도 밀어붙일 수 없다는 의미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박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효과로 인해 역대 어느 대통령들보다 탄탄한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받아 왔다. 이 때문에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박정희 지지층을 뺀 순수 박근혜 지지층은 거의 남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진단을 내놨다.
이날의 청와대 기자실의 두 번째 술렁임은 갑작스럽게 전해진 청와대 조직개편 및 인사 발표 소식 때문이었다. 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일부 기자들이 금요일을 맞아 미처 출근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사 발표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이번 인사 발표가 얼마나 기습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짐작케 한다.
발표 내용 역시 기자실을 술렁이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물러나고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후임에 지명된 반면 김기춘 비서실장은 유임됐고,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은 업무조정 형식으로 재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 실장이 청와대 조직 개편을 마무리한 뒤 물러나게 될 것이고, 비서관 3인방의 역할도 축소됐다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 뒤따랐다.
청와대 고위 인사는 “대통령이 제2부속비서관실을 폐지하고 이재만 비서관을 인사위원회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은 3인방에 대한 쇄신 요구에 화답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러 이런 설명을 늘어놨다는 것은 청와대 역시 이번 인사 발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했다. 김기춘 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내치지 않고 인적쇄신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군색하고 명분 없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청와대 관계자들조차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출입기자들에게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하루였지만, 이날 두 번의 술렁임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의 갑갑한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과도 같았다. 한편에서는 박 대통령의 지지층이 사정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청와대가 내놓는 대응책은 너무도 한가하고, 너무도 자기중심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민들의 현실 인식 사이에 극도의 괴리가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조직개편을 단행했지만 김기춘 비서실장과 비서관 3인방은 유임 또는 보직변경시켰다. 김 비서실장과 이재만 비서관이 1월 9일 열린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최근 연말정산 방식 변경을 둘러싼 ‘꼼수 증세’ 논란과 그에 대한 청와대 및 정부의 대응 태도 역시 이런 극단적인 인식차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연말정산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서 “증세 없는 복지라더니 왜 세금이 올랐느냐”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증세는 없었다”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했다. 20일 오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긴급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날 오후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브리핑에서도 마치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듯했다.
심지어 21일 정부와 새누리당의 당정회의를 통해 국민들의 불만을 반영해 연말정산 방식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고 소급입법까지 추진하기로 정해진 뒤에도 청와대와 정부에서는 똑같은 얘기가 나왔다. 안종범 수석은 22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연말정산 방식 변경으로 인한 증세 논란에 대해 “이런 세제개편은 증세나 감세 목적이 아니다. 소득공제 방식에서의 형평성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세 부담의 구조조정’이 바람직한 표현”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들도 새누리당이 소급입법까지 추진하겠다고 밀어붙인 데 대해 불쾌한 심사를 감추지 않고 있다. 증세가 아닌 데도 증세라고 우기는 포퓰리즘에 여당이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안 수석의 브리핑을 지켜본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증세의 교과서적 의미가 국민들의 실생활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면서 “국민들은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청와대는 손가락이 비뚤어졌다고 우기고, 심지어 국민을 가르치려 든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식에 대해서는 여당 내 친박계 인사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여권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뼈를 깎는 쇄신을 보여줘야 할 청와대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친박계의 한 전직 의원은 “쇄신이라는 것은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의미가 있는 건데, 청와대는 국민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에서 쇄신을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식이라면 어떤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박 대통령이 김기춘 실장을 물러나게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도 실제 그의 거취를 정리하는 데 주저하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는 “청와대 참모들한테 물어보니 ‘김 실장을 경질하듯 내쫓지 않고 예우를 갖추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하던데, 이런 생각이야말로 청와대가 얼마나 민심을 모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과감한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국민들은 아마 그런 청와대의 설명에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박계 의원실의 한 고참 보좌관도 “연말정산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여당이 대놓고 반기를 들고 있는데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상황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고 일갈했다. 이 보좌관은 “최근 한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를 강조했는데, 과연 청와대는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할 일을 다 하고 있는지 성찰해 봐야 한다”며 “대통령이 국민보다 측근 참모들을 더 챙기는 것처럼 비치는 한 국정운영 동력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여권 인사는 “박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다는 점을 청와대가 가볍게 봐선 안 될 것”이라며 “지난해 개헌론으로 청와대와 여당이 충돌했을 때와 이번 연말정산 문제로 충돌했을 때의 양상은 정반대로 진행됐다. 여당이 더 이상 청와대의 2중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박 대통령이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