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액이 위험하지 않느냐”고 묻자 “위험하다. 때문에 웬만하면 손님들에게 ‘김장’은 하지 말라고 권한다. 잘못해서 손에 닿거나 눈에 들어가면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점원은 이어 “그래도 액상이 비싸다 보니 퓨어 니코틴을 찾는 손님이 점점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매한 니코틴 용액은 안약병처럼 생긴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었다. 용량은 2ml로, 니코틴 함량은 380㎎/ml였다. 엄밀히 말하면 니코틴만 포함된 퓨어 니코틴은 아니지만 고용량의 용액이었다.
병에는 ‘절대 마시거나 피부에 닿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눈에 넣지 마십시오’라는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깨알같이 적혀 있어 눈이 나쁘면 읽지 못할 정도였다. 용기는 일반 안약 용기와 비슷하게 생겨 자칫 착각할 수도 있고, 어린이들이 열지 못하게 만든 안전 뚜껑이 아닌 일반 뚜껑을 적용했다.
현재 퓨어 니코틴은 해외 직구를 통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도 국내 전자담배 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농도별로도 다양한 종류를 구할 수 있다. 최대 999㎎/ml의 순수 니코틴도 판매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담배 관련 제품은 전자상거래가 불법이지만, 개인이 해외직구로 산다고 해서 처벌받게 되진 않는다. 판매자도 해외업체이기 때문에 사실상 물품을 이동해준 사람이 처벌받게 되는데, 이마저도 적발이 어렵기에 니코틴 해외직구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구매가 쉽다보니 퓨어 니코틴으로 인한 사고도 염려되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50대 남성이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중앙법의학센터 박소형 법의관팀이 <대한법의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외상이 전혀 없이 사망한 채 발견된 50대 남성을 가족의 의뢰로 부검을 한 결과 니코틴 중독에 의한 사망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남성의 혈액에서 검출된 니코틴 농도는 58㎎/L. 니코틴은 혈액뿐만 아니라 위장에 남아 있던 내용물에서도 발견됐다. 성인의 혈중 니코틴 농도 치사량은 3.7㎎/L다. 이 남성은 치사량의 15배가 넘는 양을 어떤 형태로든 복용해 사망에 이르렀다. 또 지난해 12월, 미국에서도 한 살배기 아기가 전자담배용 니코틴 용액을 복용해 사망한 일이 있었다. 자칫 구하기 쉬운 퓨어 니코틴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자담배 액상을 제조하다가 실수로 병원에 실려 갈 뻔했다는 경험담도 전자담배 이용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온다. 글을 올린 한 남성은 “1000㎎/ml의 퓨어 니코틴을 100㎎/ml로 오인해 용액을 만들어 피웠다가 쓰러질 뻔했다. 한 번 빨았을 뿐인데 폐가 녹아버릴 듯한 통증이 느껴져 병원에 다녀왔다”고 경험담을 말했다. 또 다른 남성 역시 “니코틴 원액을 액상으로 착각해 카트리지에 넣고 썼다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렇듯 독성이 치명적임에도 전자담배 액상을 직접 만드는 ‘김장족’은 점점 늘고 있다. 온라인상에 떠돌고 있는 김장법은 수십 가지다. 기본적으로는 프로필렌글리콜(PG)과 VG라고 불리는 식물성 글리세린(Vegetable Glycerin)을 기본으로 단맛을 내는 첨가제, 향료인 ‘후레바’에 퓨어 니코틴을 섞어서 만든다. 하지만 배합 비율을 맞추기가 까다로워 실패하는 경우도 잦다. 또 니코틴 배합 비율을 맞추기도 어려워 자칫 고용량의 니코틴을 흡입하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이렇게 만든 액상을 남에게 팔기도 한다. 보통 30ml에 1만 2000원 수준에서 거래된다. 시중에서 액상이 20ml에 2만 5000원부터 4만 원 사이에 판매되는 것과 비교할 때 저렴한 편이지만 모두 불법이며, 안전성 인증을 받지 않았기에 위험하다.
김장족 중에서도 퓨어 니코틴의 위험성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한 전자담배 이용자는 “니코틴 원액이 위험하다면 해골마크 등 위험성을 알릴 수 있는 표시를 크게 하지 않겠느냐. 그런 게 없으니 크게 위험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들끼리 모여 한꺼번에 액상을 만든다는 최 아무개 씨(27) 역시 “니코틴이 그렇게 위험한 줄 몰랐다. ‘김장’할 때 손에 닿은 적도 많다”며 “그렇게 위험하다면 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한국금연학회 이성규 이사는 “전자담배 액상을 제조하는 건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니코틴 양을 임의로 조절함으로써 잘못하면 과다 흡수될 수 있다”며 “퓨어 니코틴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에 문제”라고 경고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전자담배 허와 실 금연하려 피운다? 되레 ‘골초’될 수도 전자담배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일반 연초보다 전자담배가 냄새도 덜 나고, 니코틴 외 유해성분이 들어있지 않아 건강에도 나을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이사는 “물론 타르나 다른 발암물질은 전자담배엔 없지만, 포름알데히드는 전자담배에서도 검출된다”고 경고했다. 또한 전자담배를 피울 경우 오히려 니코틴 중독이 심해질 수 있다. 일반 연초의 경우 한 갑 단위로 돼 있어 스스로 얼마나 피웠는가를 의식할 수 있지만, 전자담배는 액상 형태로 돼 있어 자각이 어렵다.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니코틴을 흡수하게 될 수 있다. 이 이사는 “금연 보조제를 찾는다면 니코틴 패치, 니코틴 껌 등을 사용하는 게 현명하다. 오히려 니코틴 중독을 심화시킬 수 있는 전자담배는 금연보조제로 적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