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1월 초 자신 앞으로 도착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침해중지 및 손해배상청구’ 경고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A 씨가 영상저작물 총 6편을 무단 유포했다는 것이었다. 서울 강남의 한 법률사무소는 A 씨에게 보낸 경고장에 ‘15분에 이르는 영상저작물 한 편당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은 50만 원으로 추정된다. 저작재산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액 300만 원과 저작인격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 50만 원을 합산한 금액이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제야 A 씨는 자신이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는 영상’을 전문으로 하는 J 사이트의 영상 6개를 다른 카페에 업로드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경고장을 받은 사람들이 수십 명에 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경고장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대학생은 물론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었다.
문제가 된 영상은 J 사이트가 제작한 영상으로 짧게는 2분 길게는 20분에 걸쳐 여성이 누군가로부터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는 장면이 촬영된 영상이다.
문제의 영상은 스토리가 없다. 등장인물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때리는 역할과 맞는 역할이 나눠지면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체벌하는 장면만을 보여준다. 음부 등 신체 특정부위가 노출되는 음란영상물과는 달리 종아리를 때리는 장면만 나오지만 ‘회초리 체벌’로 인해 종아리에 선명한 상처가 생기는 등 다소 엽기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카페에는 이러한 ‘체벌카페’나 SM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꾸준히 신설되기도 한다. 이 중 신설카페는 회원들을 모으기 위해 정회원 등급 조건으로 ‘체벌영상’이나 ‘J 사이트의 영상’을 업로드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 문제의 영상을 업로드해 경고장을 받은 사람 중 신설카페 회원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J 사이트의 체벌영상이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의 여부다. J 사이트 대리인 법률사무소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J 사이트 법률대리인 측은 “J 사이트 운영자는 해당 영상들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한 상태다. 이 영상들은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판례에 의하면 음란물이라고 하더라도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음란물로 취급되는 영상물이라 할지라도 저작권법 제4조 제1항 제7호에 의하여 보호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 저작물에도 해당된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조약 가입국 국민의 저작물도 국내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과거 일본의 성인 비디오 업체가 공유사이트들을 대상으로 저작권 침해를 고소하였을 때 대한민국 사법부에서는 일본 성인물은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 카페 회원은 “J 사이트 측은 해당영상이 예술영화라고 주장하면서 저작권 위반이라고 하고 있다. 제작이 누군지 감독이 누군지 자막으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영상이었다. J 사이트에서 제작했다든가 저작권이 J 사이트에 있다는 자막 또한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경고장을 받았다는 한 카페회원의 지인 B 씨는 “지인이 경고장을 받고 굉장히 힘들어 하고 있다. 청소년유해정보사이트였던 곳에서 제작한 영상이 저작권을 인정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이 안 된다”며 “법률사무소가 그런 사이트를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고 공권력에 청소년유해사이트의 저작권을 찾아달라고 기대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J 사이트 운영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영상에는 저작권을 표시하는 자막이 있다. 워낙 여러 곳으로 영상이 퍼져나가다 보니 특정부분만 편집이 되는 형식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며 “이미 지난해 8월부터 영상유출을 하지 말아달라는 공지를 수차례 했지만 이를 막을 수 없어 경고장을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J 사이트가 법률사무소를 통해 수십 명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처음부터 ‘저작권 위반 합의금’을 노린 것이 아니겠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의 B 씨는 “자신의 성향이 드러나는 문제에 큰 압박감이 있다 보니 수백만 원의 합의금을 건네고 무마하는 경우도 있다”며 “미성년자의 경우 법률사무소에서 각서만 받고 선처해준다고 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합의금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에 J 사이트 측은 “포털에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자체적으로 신고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미 너무 여러 곳에 퍼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장애인, 기초수급자, 미성년자와 관련해서는 선처하는 방안을 마련해 뒀다. 하지만 J 사이트도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막대하다”고 주장했다.
법률사무소 측은 ‘저작권 합의금 장사’라는 주장에 대해 “정말로 합의금 장사를 하려고 했다면 경찰에 바로 신고하고 합의를 보면 되지 법무법인을 통해 경고장을 보내는 방법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합의가 되지 않은 분들은 순차적으로 고소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합의금 장사였다면 합의에서 끝내지 고소까지 가지는 않는다. ‘합의금 장사’라는 말은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