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말정산에 적용되는 2013년 세법개정안을 만든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조원동 전 경제수석, 김낙회 전 기재부 세제실장(현 관세청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번에 논란이 된 연말정산에 적용되는 세법 개정안은 지난 2013년에 확정된 내용들이다.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구상 아래 김낙회 기재부 세제실장(현 관세청장)이 구체적인 안으로 만들어낸 것이 지금의 2013년 세법 개정안이다. 2013년 8월 세법개정안을 내놓았을 때부터 개정안은 ‘서민증세’ 논란에 휩싸였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세금을 내야 하는 소득선이 대폭 내려간 것이다.
소득공제를 하게 되면 전체 소득에서 공제액을 뺀 나머지 액수가 과세표준이 된다. 예를 들어 연간 5000만 원을 벌 경우 과세표준에 따른 세율은 24%다. 하지만 의료비나 보험료 등을 소득에서 공제하고 남은 금액이 4600만 원 미만이 되면 세율 15%를 적용받는다.
이와 달리 세액공제는 적용된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따라서 올해처럼 공제액이 줄면 5000만 원에 적용되는 세율에 따라 24%의 세금을 내야 한다. 세액공제는 이 24%가 적용된 세금에서 액수를 깎아주는 것이다. 당연히 소득공제보다 세액공제가 적용되면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게 된다.
당시 현오석 경제팀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연간 소득 3450만 원 구간부터 세금을 내도록 바꿨다. 전체 근로자 28%(434만 명)의 세 부담이 늘어나도록 설계한 것이다. 현오석 전 부총리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것은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비과세·감면 정비에 따라 혜택이 줄어드는 분들은 이번 세법개정안을 지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서민·중산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면서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정부의 고충을 넓은 안목으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고소득층에 유리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확보한 세수는 서민·중산층에 돌아가게 하겠다”며 “세법 개정안이 경기 회복의 불쏘시개가 되고 서민·중산층의 아랫목을 지펴주는 장작불이 돼 타오르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현오석 전 부총리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당장 여론은 ‘서민 증세’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과거 면세 대상이었던 근로자들이 대거 과세 대상으로 포함된 마당에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세제개편이라는 설명은 오히려 반감만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게다가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출입기자들에게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는 것이 세금을 걷는 것”이라며 “어느 정도는 감내해야 하지 않나”고 말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정부와 여당은 부랴부랴 수정안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세부담 증가 기준은 연 소득 3450만 원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산층 기준인 5500만 원으로 올라갔다. 이에 따라 세부담이 늘어나는 근로소득자는 200만 명대로 줄었다. 그럼에도 중산층에 세금폭탄이 될 수밖에 없는 세액공제로의 변화, 다자녀 공제 축소, 출산 공제 폐지 등은 그대로 추진됐다. 세법개정안이 논의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세액공제로의 변화나 다자녀·출산공제 폐지가 서민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지만 김낙회 전 세제실장이 세금 증가는 없다며 방어막을 쳤다.
이러한 야당 의원들의 문제제기에 당시 세제실장이던 김낙회 현 관세청장이 방패가 돼서 막아서는 역할을 했다. 그는 “정부안은 전체적으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일부 전환하면서 총 급여 기준으로 7000만 원 정도부터 세금이 조금 늘어나게 했다”며 “5500만 원까지는 하나도 세금이 안 늘도록 했고, 5500만 원에서 7000만 원까지는 한 3만~4만 원 늘어나게 했다”고 답했다.
그는 또 “7000만 원이 넘어가면 그때부터 확 늘어나는 개념으로 돼 있다”면서 “원래 세법 개정안 발표 때 3450만 원부터 조금씩 늘어나도록 했는데 언론의 여러 가지 지적도 있고 해서 7000만 원까지는 사실상 늘어나지 않게 조정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세법 개정안이 “세수가 한 2300억 원 정도 줄어드는 내용”이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올해 당장 정부 말과 달리 연말정산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 5500만 원 이하 소득자들이 정부 말과 달리 세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아이가 없어 자녀세액공제와 교육비, 의료비 등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혼자들의 경우 환급금이 대폭 줄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납세자연맹도 “다른 공제가 없는 연봉 2360만 원에서 3800만 원 사이의 미혼 직장인은 최고 17만 원이 증세되고, 지난해에 자녀가 출생한 연봉 5000만 원인 직장인은 31만 원 증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6세 이하 자녀가 2명 이상 있거나 부양가족공제를 받지 못하는 맞벌이부부도 외벌이보다 증세가 많이 되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21일 긴급 당정을 통해 자녀세액공제를 상향조정하고, 자녀 출생·입양 세액 공제를 신설키로 했다. 또 보험료·교육비 등 공제대상 지출액이 적은 경우에 직장인들이 적용받을 수 있는 표준세액공제를 상향 조정하고,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연금보혐료 세액공제로 확대키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현오석 전 부총리, 조원동 전 수석, 김낙회 전 실장 등은 모두 거시 경제를 다루는 이들로 수조 원대의 예산을 주물러왔다. 그렇다보니 단돈 몇 만 원에도 웃고 우는 월급쟁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는 정무적인 감각이 부족했다”며 “이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다. 이 동화 같은 공약에 대한 제고 없이는 이번 사태는 재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