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경찰과 용의자 수배 전단. | ||
특히 범인들 중 일부는 범행 전날 경비업체 직원을 가장해 귀금속센터에 들러, ‘센서 점검’을 빙자해 보안장치를 미리 손보는 대담함을 보였다. 당시 범인들은 천장에 설치된 열감지기 내부 센서에 두루마기 화장지를 끼워넣어 15개의 열감지기 중 14개를 ‘무장해제’시켰고, 그 덕에 사건 당일 아무런 제재 없이 범행할 수 있었다. 그후 범인들은 범행에 사용한 1.5t 화물차, 사다리, 가방 등을 귀금속센터 근처에 버려둔 채 유유히 사라졌다.
사건 초기 경찰은 “범인들의 수법으로 보아 적어도 전문절도범, 전기 및 경비시설전문가, 운반책, 장물아비 등 5~6명이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해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공범이 많을수록 상대적으로 범인들이 남기는 범죄의 흔적도 깊게 마련. 그러나 베테랑 수사관 40여 명이 투입돼 사건을 맡고 있으나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한 수사관은 “범행에 사용한 1.5t 화물차, 사다리 등 범행도구 모두가 도난품이어서 범인들의 윤곽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들은 지난 5월11일 새벽 익산 귀금속센터를 털기 일주일 전부터 마치 각본을 짜놓은 듯 사전준비를 착착 진행해왔다고 한다.
우선 범인들은 지난 5월3일 광주광역시 양동시장에서 훔친 보석을 담을 가방 31개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범인들은 한 곳에서 가방을 많이 사면 의심을 받을까봐 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소량으로 가방 31개를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사흘 뒤인 5월6일 범인들은 전북 김제시 신풍동에서 향후 보석을 실어 나를 1.5t 화물차를 훔쳤다. 이틀 후인 5월8일에는 익산시 미동에서 높이 2m의 사다리를 훔쳤다. 이 사다리는 범행 당일 범인들이 귀금속센터에 침입할 때 3m 높이의 뒤쪽 담장을 넘는 데 사용됐다.
그런 후 5월9일 오전 11시30분께 범인 일당 중 2명이 경비업체 보안요원을 가장해 익산 귀금속센터에 들어섰다. 이들은 통상 경비업체 직원들이 입는 검정색 바지와 검정색 조끼 차림에 군화를 신고 있었다. 이들의 조끼에는 ‘○○보안경비회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이들이 훔쳐 타고온 1.5t 화물차에도 경비회사의 영문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귀금속센터 상인들은 이들이 설마 절도단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보안요원을 가장한 이 두 명은 약 1백분 동안 귀금속센터 내의 열감지센서를 무력화시킨 후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틀 후인 11일 새벽 2시께 전문절도범 등 범인 일당이 무방비 상태의 귀금속센터에 침입해 귀금속을 싹쓸이해 간 것이다.
경찰은 10일이 귀금속센터 정기휴일이어서 이 곳의 상인과 직원들이 야유회를 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9일 ‘사전작업’을 한 것으로 보아, 범인 일당 중 귀금속센터 내부사정에 밝은 사람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경찰은 보안요원으로 가장해 열감지 센서를 무력화시킨 2명의 경우 외지에서 합류한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절도범들이 훔친 보석의 행방을 찾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절도범들이 훔쳐간 보석은 그 무게만 5백kg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를 섣불리 시중에 유통시켰다가는 바로 들통 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범인들은 사건의 여파가 수그러들기를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 관계자는 “귀금속만을 전문으로 이른바 ‘땡처리’하는 장물아비들이 있다고 한다. 범인들이 이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어 땡처리 전문 장물아비들을 상대로 한 수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훔친 보석을 이미 재가공해서 시중에 유통시켰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은 고온에서 쉽게 녹기 때문에 정밀한 장비 없이도 재가공할 수 있다. 그러나 재가공 후 화공약품으로 많은 재처리를 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 많은 금을 재처리할 약품을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화공업체의 협조로 누군가 대규모로 약품을 구입할 경우 바로 경찰에 통보하도록 조치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보석 역시 마찬가지. 도난당한 다이아몬드, 큐빅, 사파리, 진주 등은 재가공에 특수 장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최초 가공한 상태에 변형을 가하면 그 가치가 뚝 떨어져 이를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귀금속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귀금속들은 산지마다 그 특징이 다르고 가공한 지역마다 디자인이나 가공방식이 달라 전문가들이 귀금속의 ‘출신지역’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익산의 경우 대규모로 귀금속이 제작되는 곳이라 익산에서 만들고 유통되는 귀금속은 전문가들이 금방 파악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경찰이 수사망을 펴고 있는 한 범인들이 섣불리 훔친 물건을 시중에 팔아넘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찰은 도난당한 귀금속 목록과 사진을 담은 전단지를 전국 1만 5천여 개 보석판매점에 이미 배포한 상태다. 사건 해결이 길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범인들의 운신의 폭도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 사건은 지역의 대표적인 미제사건이어서 최근 전담팀을 따로 구성해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면서 “단서를 하나하나씩 역추적하고 있는 만큼 범인들의 꼬리가 머잖아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