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한국마사회
이상의 것은 특정한 조건에 따라 ‘정해진 부중’을 부여하지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핸디캡 경주다. 핸디캐퍼들이 그 경주 출전신청마의 능력을 평가한 뒤에 능력에 맞게 부담중량(핸디)을 결정한다. 센 말은 무겁게 달고 약한 말은 가볍게 해줌으로써 모든 출전마들에게 우승기회를 공평하게 준다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핸디캐퍼들도 사람인지라 선입견이 작용하고, 때로는 간과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이라 간혹 공평하지 못한 경우도 발생한다.
지난주 일요경마(1월 18일)를 살펴보자. 먼저 일요신문 예상팀과 현장에서 의견일치를 보인 경우다. 부경 6경주에선 4번 비룡이 가장 뜨거운 관심사였다. 최근 들어 최고 성적이 5위 1회가 고작일 정도로 인기 최하위권의 마필이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 예상에서도 초벌구이를 할 때만 잠깐 논의됐을 뿐 5두에도 아예 배제됐었다. 그렇지만 현장에선 마필 상태가 좋았고 아마추어 한 분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 재고키로 했다.
‘직전경주에서 비록 6위를 했지만 착차가 없었고, 무엇보다 56㎏의 부담중량을 달고도 당시 인기 1위마인 감동의바다(부중 57㎏)와의 착차가 불과 약 1.2마신밖에 안되었을 정도로 선전했었고 이번엔 부중이 4.5㎏이나 줄었다’는 것이다. 아마추어의 말이었지만 워낙 강하게 얘기하는 데다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만큼 논리 정연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기록을 검토해봐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경주로에 출장하고나서도 필자는 확신이 안들어서 급히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직전경주 예시장과 주로출장상태를 다시 한번 검토해봤다. 그 결과 이 정도의 감량이점이라면 최소한 직전보다 못 뛸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많은 분들이 반신반의했지만 우리는 ‘강축’으로 팔린 벌마의꿈과 비룡을 놓고 여러 마리를 베팅하는 삼복승 피아노를 치고 복승식도 두 방으로(한 방은 최저배당에 방어로 베팅) 조금 구매했다. 비룡은 경주 초중반 후미에서 힘겹게 뛰는 듯해 ‘역시 안되나?’ 싶었는데 막판에 맹렬하게 치고올라와 기어이 2위마저 뒤로 밀어냈다. 직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부담중량의 덕을 톡톡히 본 경우였다. 결과론이지만 이 마토는 경마이론에도 충실한 셈이었다. 핸디캡 경주에선 축마는 부중이 늘어난 마필 중에서, 복병마는 부중이 줄어든 마필 중에서 고르라는 경마이론과 딱 부합됐던 것이다.
다음은 서울 9경주다. 이 경주의 최고 인기마는 8번 유쾌통쾌였다. 일요신문 예상팀과 현장의 많은 분들은 ‘유쾌통쾌는 직전경주에서 완벽하게 살아난 마필이라 한 번은 더 간다’는 의견을 내면서 강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필자의 의견은 달랐다. 유쾌통쾌는 직전에 좋은 기록으로 우승을 했지만 결정적인 특혜가 있었다. 외곽을 달리긴 했지만 느린 페이스로 수월하게 선행을 갔었고, 특히 부담중량에서 평소보다 2~3㎏의 감량혜택이 있었다. 감량혜택이 있는 말이 수월하게 선행을 나가면 버티기 쉬운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요컨대 직전경주 결과가 ‘능력상승’이냐 ‘감량이점’이냐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필자만 감량혜택이라고 우겼다. 유쾌통쾌는 크지 않은 체구(450㎏)여서 경마의 일반론에 따르더라도 부담중량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결정적인 것은 이번 경주에선 에이스더블, 마이티홍콩, 검화, 새명장 등 내로라하는 선행마들이 즐비해 직전처럼 수월한 선두권 가세는 불가능했다.
경주결과는 필자의 의견대로였다. 유쾌통쾌는 초반에 선입권에 가세했지만 빠른 페이스를 따라가지 못해 중간으로 처졌고 막판에도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8위에 그쳤다. 경주결과를 보는 눈은 전문가들도 이처럼 다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결과론일 수도 있다. 이번엔 운 좋게 필자의 생각이 적중했지만 다음엔 거꾸로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론이 바탕이 된 자신의 기준을 확고히 하고 일관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두 가지를 이론적으로 정리를 해보자. 우선 부경의 비룡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1군 말들은 부담중량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90년대식 경마이긴 하지만 20전 이상 뛴 말들은 부담중량에 대한 한계치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 한계치에서 부중이 플러스냐 마이너스냐를 분석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 결과 상당히 많이 유리한 마필은 최근기록과 예상되는 경주전개를 대입하면서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예전에 어떤 기수는 공식 인터뷰에서 “1군까지 올라온 말들은 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부담중량이 적절하고 컨디션만 좋다면 어떤 말도 무시해선 안된다”고 조언한 적이 있다.
두 번째는 실전경험이 적은 어린 말들은 마필체중과 관련지어 분석하라는 것이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마필일수록 부담중량 증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고, 암말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많다. 체구가 작은 말들이 신인급 기수를 태워서 이변을 일으키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많이 봐왔다. 대부분 감량혜택의 결과로 인식되고 있다. 마체중과 부담중량의 관계는 이 코너를 통해서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피한다.
세 번째는 단거리보다는 장거리 경주에 더 유용하다는 것이다. 필자와 만난 몇몇 기수들은 부담중량이 늘면 스타트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거리도 쉽지 않다고 했지만 상대적으로 덜 불리하다. 장거리에서는 꾸준히 길게 힘을 써야 하기 때문에 힘을 한 번에 몰아쓰는 단거리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행마보다는 추입마가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선행마는 앞선에서 버티기하는 스타일이라 초반 힘 안배가 이뤄지면 조금 무거워도 입상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추입마는 종반에 앞에 가는 말을 따라잡아야 한다. 중량이 늘어나면 늦추입이 되거나 한발이 모자라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우리가 너무 늦게 올라왔다고 기수들을 욕하는 경주를 보면 직전경주에 비해 부중이 늘어난 경우가 적지 않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