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결과 이 남자의 직업은 대학교수. 경찰도 깜짝 놀랐다. ‘관음증’이라고 하면 저질스럽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단면을 보여준 셈이다.
평소 이성적이고 도덕적이던 사람이 오히려 변태적인 성도착증을 갖고 있기도 하고 남의 성행위를 훔쳐보는 것에 중독이 돼 버린 경우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일이 더 자주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에는 암사동에서 ‘카섹스’를 훔쳐보는 집단이 등장했으며 이들을 일컬어 ‘암사동 갈매기’란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한다.
지난 19일 경북 안동경찰서는 모 지방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아무개씨(55)를 성폭력범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지난 9월부터 수차례 걸쳐 안동의 한 병원 여자 화장실에서 여성들의 용변 보는 모습을 몰래 찍어 오다 덜미를 잡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ㅇ대학 교직원들은 김씨에 대해, “평소 점잖고 말이 없는 분이셨다”며 “20년 넘게 교수생활을 해왔고 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인품이 높았다”고 평하며, 이번 사건에 몹시 놀라는 분위기다.
김씨의 ‘몰카 촬영’이 적발된 것은 지난 17일 오전 11시. 김씨는 이른 아침부터 안동시의 모 병원을 찾아 여자 화장실로 몰래 숨어 들어갔다. 옆 자리에 사람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던 김씨. 마침 병원 직원이 용변을 보러 들어오자 김씨는 준비해 온 8mm 비디오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김씨의 몰래 카메라 촬영 기술은 그야말로 원시적이었다. 칸막이 밑으로 카메라 렌즈를 밀어 넣으면 됐을 뿐. 대부분의 몰래카메라 촬영이 눈에 안 띌 정도의 소형 제품을 이용해 전문적인 기술로 설치된다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런 새로운 장비가 없는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한 김씨가 세 차례나 촬영에 성공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김씨의 변태적인 행위는 결국 들통 나고야 말았다. 용변을 마친 여직원이 카메라 렌즈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고 달아나던 김씨는 병원 직원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 다급했던 나머지 병원 현관 유리창을 깨고 도망가려 했던 김씨로 인해 병원에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경찰은 “김씨의 집을 수색한 결과 2, 3명의 여성의 용변 보는 모습을 찍은 테이프가 발견됐다”며 “추가 범행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재 불구속 입건 상태의 김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도무지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담당 수사관은 “김씨가 척추 디스크 환자인 것으로 볼 때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하다”며 “몰래 카메라 촬영 테이프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얻으려 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전했다.
각종 음란 사이트에 ‘몰카’ 동영상이 판을 치고 있고, 음란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이 구속되는 것은 다반사지만 이번 사건이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김씨가 단란한 가정을 꾸려온 모범적인 가장인 데다 인정받는 대학 교수였기 때문이다.
성의학 전문의 설현욱 박사는 “이번 사건에서 보여진 성도착증은 교육 수준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다만 성도착증 환자들의 경우 실생활에서는 매우 내성적이고 온순해, 주위 사람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에도 이런 관음증을 보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을까.
관음증은 다른 사람들의 성행위나 성기를 몰래, 반복적으로 보면서 성적인 만족을 느끼는 증상이다. 며칠 전 기자는 자신을 ‘암사동 갈매기’라고 소개하는 30대 남성을 만났다. ‘암사동 갈매기’는 암사동에서 무리지어 다니며 ‘카섹스’를 훔쳐보는 집단을 일컫는 자신들만의 용어다.
이아무개씨는 ‘암사동 갈매기족’이 된 경위에 대해 “내가 바로 피해자였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카섹스’ 도중 여러 명이 사방에서 훔쳐보는 것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동영상이라도 찍혔으면 ‘큰일이다’란 생각에 조용히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고. 이씨는 “내 신상정보는 몰랐지만 차 번호판을 외워두고는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다 알고 있더라”며 “이상한 호기심에 이끌려 나도 이 모임의 일원이 됐다”고 말했다.
사업가로 어느 정도 성공한 축에 속하는 이씨는 “그 모임에 가면 의외로 ‘멀쩡한 사람들’이 많다”며 ‘훔쳐보기’를 즐기는 ‘암사동 갈매기족’ 중에는 고학력에 사회적 지위를 보장 받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음을 일러주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이렇게 집단 관음증 증상을 보이는 사례가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왜 이런 ‘훔쳐보기’를 즐기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너무나도 쉽게 대답을 했다. “남자들이라면 동영상을 통해서도 몰카나 포르노를 즐겨보는데 실제 장면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 더 흥분된다”는 것이 이씨의 ‘훔쳐보기’ 이유였다.
대학 교수의 ‘몰카’ 촬영 소동, ‘훔쳐보기’ 집단 현상 등은 정상을 넘어선 성에 대한 집착이 우리 사회에 상당한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양하나 프리랜서 hana01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