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한 단원고 학생 등 피해자들이 “사고가 났을 때 해경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광주지법 형사 11부(임정엽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전 목포 해경 123정 정장 김경일 경위에 대한 재판에서 단원고 학생 2명, 일반인 승객, 화물차 기사 등 4명을 증인으로 불러 당시 상황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세월호 생존자인 단원고 학생 A군은 “4층 레크레이션룸 앞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기울면서 선내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군은 특히 “사고 직후 기울어진 배 반대편(우현) 복도로 올라갔고, 캐비넷을 열어 구명조끼를 꺼낸 뒤 각 방 문 앞에 있는 여학생들에게 던져줬다”며 “나와 일반인 승객들이 다른 학생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해경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A군은 또 “헬리콥터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때 해경을 처음 봤다”고 말했고, 이에 검사가 “당시에 해경이 뭐했느냐”고 묻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기했다”고 답했다.
이어 A군은 “123정이 출동한 사실을 몰랐다. 구조하러 온 해경은 헬리콥터 뿐 이라고 생각했다. 퇴선방송이나 안내를 들은 사실이 없다”며 “바다에서도 구조가 이뤄졌다면 선박의 우현이 아닌 좌현 갑판 바다 방향으로 나갔을 것 같다”고 말하자 방청석에 있던 피해자 가족 100여 명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증언에 나선 세월호 생존 학생 B군 역시 “탈출하는 동안 해경의 도움은 없었다. 퇴선 안내나 이와 연관된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고, 검사가 “사고 당시 인명구조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라고 묻자 B군은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B군은 “상공에 헬리콥터가 떠 있었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며 “선박 좌현쪽에 123정이 도착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탈출 뒤에야 해당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순간까지 구조 활동에 몸을 사리지 않아 ‘파란 바지의 구조 영웅’으로 알려진 김동수 씨는 “밤마다 나를 죽이려고 누가 쫓아오는 꿈을 꿔서 아내에게 밤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아내가 일을 하고 고 3이 되는 딸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살아남은 것이 죄가 되느냐”고 흐느꼈다.
아울러 구조활동에 동참한 또 다른 김 아무개 씨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아픈 사람들은 손을 잡아 일으켜 줘야 한다”며 “피고인이 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슬픈 사람들을 더 슬프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그는 첫 재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설령 퇴선방송을 했더라도 헬리콥터가 상공에 떠 있는 상황에서 방송내용이 배 안에 있는 승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됐을지, 전달됐다고 해도 배가 이미 기울어 승객들이 바다로 뛰어들었을지 의문”이라며 검찰이 적용한 업무상과실치사상의 공소사실을 부인해 피해자 가족들의 공분을 샀다.
윤영화 온라인 기자 yun.layl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