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에 압수된 최첨단 사기도박 장비들. | ||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4월 24일 조직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5억 원대의 사기도박을 벌여온 혐의로 부산 칠성파 추종세력 4명, 경남 용원파 3명과 양포파 3명, 전남 순천 중앙파 6명 등 모두 38명을 붙잡아 이들 중 윤 아무개 씨(27) 등 21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또 백 아무개 씨(39) 등 17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사기도박에 사용된 장비 600여 점을 압수했다. 경찰에 압수된 최첨단 장비는 그야말로 IT(정보통신)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들이 사용한 사기 도박 장비 중 압권은 카드 투시용 적외선 테이블로 나무 판 사이에 적외선 전구 3000여 개가 내장돼 있다. 테이블 다리 속에 감춰진 건전지로 작동하면 이 적외선 전구가 빛을 발산하면서 카드가 투시된다. 작동 원리는 X-레이 촬영 방식과 비슷하다.
상대방의 카드 패를 미리 설치한 폐쇄회로(CC) TV가 읽어 별실이나 도박장 밖의 차량으로 전송하면 밖에서 대기 중인 일당이 전송된 내용을 모니터로 확인한 다음 다시 도박장에 있는 일당의 초소형 무선 수신기를 통해 음성으로 전달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과학적 원리가 총동원됐다는 점이다. 코일이 내장된 테이블의 경우 30분 이상 장시간 사용할 경우 열이 발산돼 상대방이 눈치 챌 수 있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열이 발생하지 않는 적외선 전구를 내장했다. 상대방이 적외선 전구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테이블 덮개로 위장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 위부터 적외선 전구가 내장된 테이블, 방석 속 진동장치, 개조한 휴대폰. | ||
이뿐만이 아니다. 상대방 뒤편에서 휴대전화로 카드를 찍어 무선으로 전송하는 방식의 휴대전화 속 내장 카메라, 책과 핸드백에 구멍을 뚫어 카메라를 넣는 장비도 개발했다. 상대방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런닝셔츠에 코일을 붙인 무선 수신기도 제작했다.
이들은 최첨단 장비를 이용, 상대방의 카드를 훤하게 알아내는 수법으로 상대방의 패를 읽어가며 베팅 금액을 조절했고 이를 통해 손쉽게 수억 원을 챙겼다. 도박판에도 IT 개념을 도입한 이들은 상대방을 감쪽같이 속이며 사기도박을 벌여 나갔다. 물론 판을 벌일 때마다 백전백승을 거뒀다. 이른바 ‘과학 도박’의 개가인 셈이다.
이들이 첨단 장비 제작에 직접 나선 것은 기존 특수렌즈와 목(目) 카드를 이용한 고전적인 수법이 더 이상 도박꾼들에게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산과 경북 경주에 도박장비 비밀 제조공장을 차려놓고 장비를 만들었다. 게다가 사기도박 기술자인 일명 ‘선수’ 17명을 고용, 도박장에 미리 CCTV를 설치하고 도박장 안팎에 배치하는 방법으로 이들 장비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해 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해 9월 23일 부산 기장군 S 모텔에서 송 아무개 씨(45)를 유인해 사기도박으로 3000만 원을 가로채는 등 41차례에 걸쳐 5억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아울러 택배를 이용, 2억 원 상당의 첨단 사기도박 장비를 전국적으로 유통시켰다. 심지어 사기도박꾼들에게 이들 장비를 대여해 주는 것은 물론 설치까지 해 주고 사기도박이 끝난 뒤 이익금의 일부를 배당받기도 했다.
경찰이 압수한 80여 개의 통장을 확인한 결과 1000여 차례에 걸쳐 2억 원 상당의 사기도박 장비를 판매한 사실을 밝혀내고 구입자를 상대로 유통경로를 추적하며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금 현재도 전국 어딘가에서 이 최첨단 장비를 통한 사기도박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도박장비에도 IT기술이 총동원되고 있다. 이들의 솜씨는 ‘맥가이버’를 능가하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오상준 국제신문 기자 letitb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