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와 함께 국회를 나서고 있는 모습. 이완구 총리 후보자는 ‘김무성 견제용’이라는 해석이 많다. 일요신문 DB
여권 관계자는 “2인자는 없다, 좌장은 없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었다. 존재감이 약했던 정홍원 총리를 보면 간파할 수 있는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현 여권 분위기가 심상찮다. 박 대통령으로선 후계구도를 조기에 짜면서 당내 경쟁을 촉발해야 여당의 청와대 저격을 지연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해석의 근거에는 크게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회창 전 총재를 감사원장에 임명한 뒤 국무총리로 중용하면서 후계자로 키웠다는 것. 앞서 김황식 전 총리의 정치권 진입이 불발된 것처럼 공무원 출신으로선 진흙탕 여의도에 발을 들이기가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이완구 카드는 정치권에 ‘묵혀’뒀다가 꺼냈기에 후계구도 안착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후계 카드가 많을수록 좋다. 한 명뿐이라면 청와대에 독설을 뿜어 단숨에 눈높이를 맞출 수 있지만 여러 명이 되면 구애 경쟁, 충성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 여권은 김무성 대표 외에 뚜렷한 재목이 없다. 이완구 총리 카드는 곧 여권의 대권 경쟁을 향한 신호탄을 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각 지역 대표자가 묵직하게 존재한다. 박원순, 문재인, 안철수, 김부겸, 안희정 등은 대권 상수다.
정가 사정에 밝은 정치권 인사는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에 최경환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가 있지만 사실 총리와 부총리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며 “어찌됐든 여권에선 내각에 이완구(충청), 최경환(경북)이 대권 리스트에 오른 셈이고 경남에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있으니 수도권과 대구, 강원에서 주자가 나타난다면 야권과 어느 정도 출발선을 맞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 주변부에서 이 후보자를 차기로 키워야 한다고 권유했다지만 이 후보자 측은 “걸어온 길을 보면 청와대 3인방이나 십상시 등과 교류할 기회가 아예 없었다”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이완구 총리 기용은 타오르고 있던 ‘충청권 역할론’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이 후보자의 고향인 충남 청양은 국무총리 내정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지역 정치권에선 대전과 충청 발전의 선봉이 탄생했다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야권이 드세게 공세하고 있는 영남권 편중 인사, 특히 TK(대구·경북) 쏠림 현상을 일부 차단하는 효과와 함께 충청권에 대망론을 심어줌으로써 선거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충청표심을 어루만지게 됐다”고 해석했다.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해 중순부터 이완구 총리 이야기가 나왔다. 박 대통령의 ‘수첩 깜짝 인사’ 때문에 인사 예측에 번번이 실패했던 언론사들이 이번엔 준비해놓았던 의혹 리스트를 내놓으며 언론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충청도 잡고 언론도 체면을 살렸다”고 했다.
정가에서는 조만간 이뤄질 개각에서 이 후보자가 공석인 해양수산부 장관에서부터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는 법무부, 통일부, 국토교통부 장관 등에 대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고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 주문한다. 불통 논란은 결국 박 대통령의 수첩 인사에서 파생된 탓이 크기 때문이다.
두 번째가 새로운 당청관계를 정립하느냐다. 여당의 불만은 수평적이지 않은 당청관계로 인해 누적돼왔다. 황우여 전 대표와 이한구 최경환 전 원내대표 체제에서 보여준 ‘작은 여당’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 여당과 청와대 사이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원내지도부에서 함께 일한 이 후보자의 측근은 “김무성 대표와 공식, 비공식적으로 가장 자주 접촉한 이 후보자로서는 여당의 불만을 누구보다 잘 꿰고 있다. 또 원내대표로서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사람들과도 자주 교류했던 그는 청와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안다. 이 둘 사이의 괴리를 최대한 좁혀야 할 임무가 있다”며 “정치인으로서 이 후보자의 장점은 ‘연출을 할 줄 안다’는데 있다.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이 후보자는 공무원연금 등 이 정부가 공들이고 있는 공공부문 개혁과 통과시켜야 할 경제활성화법 등 현안을 간파하고 있다. 앞선 원내지도부와 비교해 야당과의 소통도 매끄러웠다는 평가다.
인사청문회 통과는 무난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자신의 병역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50년 전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꺼낼 정도로 ‘준비된’ 사람이 대형 사고를 일으켰겠냐는 이야기다. 송곳 검증을 자신했던 야당조차 이렇다 할 문제제기를 못하고 있다.
문제는 여당 내 ‘이완구 세력’의 부재다. 특히 원조 친박계에서는 이 후보자를 같은 편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친박계 핵심 의원실 관계자는 “이 후보자 등장에 따른 박탈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우리 의원도 불쑥 들어온 이 후보자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며 “친박 내부에서도 파가 갈려져 있다고 보면 된다. 친박 내 이완구 우호지분은 결코 많지 않다”고 전했다.
서민을 울리고 있는 연말정산 파동과 새롭게 등장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 백지화는 이 후보자가 당장 풀어야 할 숙제다. 이런 난제로 20%대로 추락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도 끌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 후보자의 업무 스타일 지켜봤다는 새누리당 정책 파트의 한 인사는 “이 후보자가 언론에 들고 날 때는 잘 알지만 숙제를 직접 푸는 것에는 약하다”고 평가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