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국회 정보위위원장과 국민생활체육회장 겸직으로 ‘셀프국감’의 주인공이 될 뻔한 서상기 회장. 당시 빨강색 넥타이를 착용한 것에 대한 야당 의원이 특정 정당을 표시한다고 지적하자 웃으면서 넥타이를 풀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서상기 국민생활체육회장은 지난 30일 공식적으로 사퇴를 선언했다. 당초 사퇴를 약속했던 서 회장은 지난 15일 국민생활체육회 제61회 이사회에서 돌연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생활체육법이 통과될 때까지만 직을 유지할 것이라며 사퇴를 번복해 비난을 자초했다.
서 회장은 국회의원 겸직 금지법에 따라 지난 연말부터 사퇴 의사를 밝혀왔고 이날 이사회에서 임원(회장) 선출 건을 의결해 30일 열린 대의원 대회에서 신임 회장을 선출하기로 돼 있었다. 서 회장의 갑작스런 입장 변경에 따라 이날 이사회에서는 임원 선출 건을 제외한 다른 안건만 대의원 대회에 상정했다.
서 회장의 사퇴 번복에 임원진들 사이에서는 법적 문제인 만큼 사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민생활체육회 부회장단은 서 회장을 찾아가 사퇴 요구를 위한 면담을 요청하기로 하는 등 내부 반발이 일었다. 당시 국민생활체육회 내부에서는 서 회장의 사퇴 입장 번복이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관련이 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지난 30일 선거를 하기로 잠정 결정되면서 예비후보들이 선거준비를 해왔는데 자신이 추천해온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추대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돌연 직을 유지키로 했다는 것이다.
예비후보로는 대한롤러경기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유준상 상임고문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 전병관 체육학회장이 각각 정계와 재계, 체육계를 대표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됐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실제 이 과정에서 서 회장은 자신의 서울대 후배인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대의원들에게 추천했다. 회장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대의원들은 종목별 연합회에서 75명, 시·도생활체육회에서 75명을 추천받아 총 150명으로 구성된다.
대의원인 한 시·도체육회장은 “서 회장이 (우리에게)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추천한 것은 사실”이라며 “서 회장이 전화를 해와 권 회장이 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겠느냐 식으로 의사를 물어봤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서 회장이 권 회장의 추대가 어려워지자 자신이 원하는 다른 후임자를 찾기 위해 사퇴를 번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한 이사회 멤버도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국민생활체육회장으로 추대를 하면 나오려 했다고 한다. 요즘 기업들도 상당히 어렵고 포스코가 대기업인데 회장이 경선까지 치르는 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서 회장이 권 회장을 좋은 분이라고 추대하기 위해 이사진과 대의원 등 여러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그랬다. 권 회장이 이사회 전에 안하겠다고 하니 갑자기 사퇴를 번복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권 회장 추대가 어려워지자 서 회장이 또 다른 경제인을 추천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생활체육회 예산이 1000억 원이 넘는데 기업인이 예산 때문에 오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그건 옛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전임 생활체육회장이었던 유정복 현 인천시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 경선캠프의 직능본부 본부장으로 활동해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는 제천시생활체육회 18개 종목별연합회가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충북도당이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국민생활체육회는 2012년부터 친박계 정치인들이 회장을 맡아왔다. 2012년 2월 당선된 유정복 전 회장은 이후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을 대의원들에게 추천했고 서 의원은 단독후보로 등록해 2013년 회장으로 선출됐다. 포스코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바뀌는 등 민영화됐지만 정치적 외풍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 회장 측이 사퇴를 번복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지난 연말에 해결될 줄 알았던 생활체육진흥법이 올해까지 넘어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서 회장이 올해 생활체육진흥법 통과를 위해 회장직을 유지하며 성과를 거두려 했다는 것. 대한체육회와의 통합논의도 고민이었다고 한다.
서 회장은 사퇴 선언 직전인 지난 29일 저녁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생활체육진흥법이 상임위에서 여러 가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회장직 유지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권오준 회장 추천에 대해서 “그런 얘기를 한 건 사실이다. 재계에서 회장직을 맡는 게 조직 발전을 위한 하나의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어 얘기를 했다”며 “예를 들면 이건희 회장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정몽준 전 의원도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을 맡지 않았나. 재정적으로 도움도 많이 주고 그룹에서 줄 수 있는 지원이나 이런 게 생활체육회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어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버티기’에 나섰던 서 회장은 대의원 대회가 있는 날이자 국회의장이 규정한 겸직 사퇴 기한인 지난 30일 공식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서 회장은 이날 오전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법에 따라 사퇴를 결정했다. 국민생활체육회장 선거는 임시총회 등 다시 임원선출 건 의결을 거쳐 공식 선거 절차를 밟게 된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