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울산 현대중공업노조에서 8개 조선사업장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조선업종노조연대’의 회의가 열렸다. 사진출처=현대중공업노동조합 홈페이지
조선노연의 적극적 행보는 조선업 불황에서 기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시작된 업황 침체는 지난해 3분기 현대중공업이 약 3조 원 누적적자라는 ‘어닝쇼크’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홍지욱 조선노연 공동대표(금속노조 부위원장)는 “조선업 위기는 개별 사업장이 아닌 국내 제조업이 직면한 문제이자,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일이라는 인식에 노사정이 다를 수 없다. 수주 감소와 인력 감축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고, 범국가적 대책을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병모 현대중공업노조 위원장도 조선노연 공동대표를 맡았다. 현대중공업 민주노조를 수립하고 87년 대투쟁을 주도한 그가 2013년 가을 당선되며 현대중공업에는 12년 만에 강경 집행부가 들어섰다. 조선노연의 2015년 의장(대표)사업장이 현대중공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상 초유의 조선업 빅3 파업도 예견되었으나 지난 1월 29일 직원 64.1%의 찬성으로 삼성중공업의 임단협이 마무리되면서 가능성이 낮아졌다. 대우조선해양 노사는 통상임금 확대 문제를 놓고 교섭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여전히 ‘시한폭탄’이다. 해양플랜트부문 부진을 이유로 기술·관리직 1500여 명 감원을 추진하자, 과장급 이상 일반직 노조까지 결성됐다. 경영 부진으로 물러난 이재성 전 회장의 급여가 37억 원임이 알려졌고, 앞서 한 간부가 노조를 ‘군고구마’에 비유해 ‘노심’이 들끓었다.
홍지욱 대표는 “각 사업장의 임금협상 등은 연대조직 차원에서 말할 사안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정부와 재계가 먼저 나서야 할 노사정협의체 제안에 어느 언론이 노조 이기주의 프레임을 씌우겠느냐”며 강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이러한 조선업계 노조의 움직임에 정부와 재계는 구조조정 등의 노사 현안을 개별 사업장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선해양플랜트과 담당자는 “업계 자율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가 언급하기는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산업부의 조선업 대표 정책은 ‘해양플랜트산업 발전방안’이다. 생산·건조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설계엔지니어링·연관 서비스 등으로 다각화하는 전략이다.
산업부 담당자는 “중소·대형업체, 조선·해양플랜트업체가 공존하는 산업생태계의 기반인 장비·센터 구축, 인력양성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중소업체의 틈새시장 개척을 돕기 위해, 해양플랜트와 특수선 분야에 진출해 LNG운반선·드릴쉽(심해시추선) 등 고부가 조선해양설비 세계 1위(수주·건조 규모 기준)에 오른 대형 업체 사례도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노조 쪽 생각은 다르다. 홍지욱 대표는 “같은 한국 회사끼리 손해를 감수하고 경쟁하고 있다. 덤핑과 로비가 가능한 대기업 위주로 업계가 재편되고, 정부는 불개입 원칙으로 이를 방관하고 있다”며 “2월 25일 출범 기자회견은 몇몇 대표자 선언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조선업을 살리자고 전체 노동자와 국민들에게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민영 경성대학교 외래교수는 “정부 정책은 산업고도화 전략과 선박금융 육성 등에 맞춰져 있다. 숙련 인력이 사라지면 산업도 무너지므로, 불황기에는 일자리 유지 정책에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업계는 아직 조심스럽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노조들 간 협력 문제라 조심스럽게 본다. 내부적으론 교착상태에 빠진 노사관계의 해빙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출범 전 준비단계라 지켜봐야 할 듯하다”며 말을 아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장별로 상황과 입장이 다르니 어느 한쪽을 대표해 노사관계에 관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올해 선박 수주액 전망치를 전년대비 약 14% 감소한 250억 달러(약 27조 3375억 원)로 잡았다. 컨테이너선을 뺀 모든 수주가 얼어붙고, 에코쉽(환경친화적 선박) 투자부진과 해양플랜트 침체도 지속될 전망이다. 김형근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유가 하락이 지난해 시작돼 아직 바닥이라 할 수 없다. 올 연말까지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인력감축과 부문통폐합이 추진되고 이로 인한 노사갈등도 시장에 반영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채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