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위험회피) 투자처로 여겨진다. 따라서 정부가 디플레이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져 금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공정에서 금 사용이 많은 IT산업이 발전하면서 산업용 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금값을 좌우한 것은 금융시장이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양적완화는 2011년 9월 9일 역대 최고점인 트로이 온스당 1923달러까지 금값을 끌어올린다. 이후 2013년까지 1600선을 지지선으로 조정을 보이다 2013년 상반기 미국의 양적완화 속도조절 논의가 나오면서 현재 1200~1400달러대의 박스권이 만들어졌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올해 미국 금리 인상을 이유로 추가적인 금값 하락을 예상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시중에 풀린 달러를 회수하는 효과가 있다.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반작용으로 금값은 하락한다.
그런데 최근 유럽이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선언하면서 상황이 달라지는 모습이다. 미국의 달러 회수와 유럽의 유로 살포가 금값을 아래와 위로 팽팽히 당기고 있다. 김윤상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리인상 우려는 이미 지난해 4분기부터 금값에 선 반영돼 추가 급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일시적인 출렁거림은 있겠지만 현재 가격대가 바닥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유럽에서 일고 있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러시아의 디폴트 우려 같은 이슈도 금값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정치·경제적 불안감에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량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지난해 3분기에만 55t의 금을 사들였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의 금화 판매가 전달보다 2배 이상 늘어난 4만 2000온스에 이르기도 했다. 세계 금 소비 1, 2위 국가인 중국과 인도의 금 실물 수요도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추세적인 상승을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는 조언도 있다. 천정훈 키움증권 연구원 “일부 수요 회복이 가시화되고 있긴 하지만 저가매수를 노리고 들어오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면서 “금값 상승에 베팅하는 거대 자본이 움직여야 추세적인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