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의 여파로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 3편 모두 개봉 시기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왼쪽 사진은 <터미네이터5> 스틸 컷.
영화의 개봉 시기는 그 작품의 흥행을 판가름하는 출발점이다. 소위 ‘타이밍’에 따라 영화 흥행이 좌우되는 일이 영화계에서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영화가 시기와 주변 환경, 경쟁작 등을 꼼꼼하게 따져 개봉 일정을 확정하는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들은 개봉 시기는커녕 그 제목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아직 잠잠해지지 않은 사건 여파로 그 불똥이 혹여 영화로 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병헌이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대기하고 있는 한국영화는 <협녀:칼의 기억>(협녀)과 <내부자들>이다. 또 다른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터미네이터5) 역시 이미 촬영을 끝내고 국내 개봉을 대기 중이다. 특히 <협녀>의 경우 촬영을 마친 지 1년이 가까워 오지만 아직 개봉은 물론 흔한 마케팅 가운데 하나인 스틸 공개 역시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내부자들>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계에서는 이 중 어느 한 작품이라도 먼저 개봉을 결정하면 나머지도 순차적으로 시기가 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선뜻 나서는 영화는 없다.
애초 가장 먼저 공개될 것으로 예상됐던 <터미네이터5>는 한때 국내 개봉을 책임질 배급사마저 오리무중이었다. 이 영화를 제작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파라마운트의 영화들은 그동안 국내서 주로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여러 계약 문제로 인해 CJ엔터테인먼트가 <터미네이터5>의 배급에서 손을 뗐다. 국내 개봉 자체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왔지만 최근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터미네이터5>를 배급하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됐다. 앞서 이병헌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지 아이 조> 1, 2편과 <더 레드>가 높은 흥행 가능성 덕분에 국내 배급사 여러 곳이 욕심을 내왔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분위기는 백팔십도 바뀌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이미 <협녀>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이병헌 리스크를 안고 있는 <터미네이터5>의 배급을 맡은 것. 영화계에선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터미네이터5>를 잘 활용해 <협녀>의 무난한 개봉을 유도하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영화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병헌 스캔들로 인해 개봉 지연은 물론 함께 출연한 배우들까지도 그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봉하기로 했던 <협녀>는 이병헌 사건의 직격탄을 맞았다. 해를 넘겨 1월 개봉을 예정했지만 오히려 사건이 잦아들기는커녕 관련 재판이 진행될수록 새로운 이슈가 쏟아져 나왔다. 당장 3~4월 내 <협녀> 개봉 계획은 잡혀있지 않다. 데뷔하고 처음으로 무협 사극을 소화한 전도연이나 주목받는 연기자 김고은의 변신을 예고한 이 영화는 한때 ‘영화계 기대작’으로 꼽혔지만 이젠 언급조차 조심스러운 영화가 됐다.
때문에 <협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약 100억 원이다. 많은 돈이 들어가고 제작과 투자사, 각 배우들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이병헌 노이즈’ 때문에 개봉을 미루다간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위기감도 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협녀>가 극장가 성수기인 7~8월 개봉을 추진 중이라는 의견도 있다. 대작 규모에 맞춰 성수기를 노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미 겨울을 보낸 만큼 여름시장을 겨냥한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의 완성도가 좋아 일단 개봉하고 관객의 평가를 받자는 의견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망’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가장 먼저 개봉할 가능성이 높은 영화는 <내부자들>이다. 배급사 쇼박스는 연간 개봉 라인업을 수립하며 <내부자들>의 공개시기를 놓고 장고를 거쳤고 결국 6월을 ‘적정시점’으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당장 상반기를 넘긴다면 사실상 개봉시기를 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게 <내부자들> 제작 관계자들의 공감대란 얘기다.
쇼박스의 경우 7~8월 중 200억 원 대작 <암살>을 개봉한다. <도둑들>을 만든 최동훈 감독이 연출하고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등이 주연한 이 영화는 올해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화제작이다. 장기 흥행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강한 만큼 쇼박스로서는 어떻게든 <암살> 이전에 <내부자들>을 개봉해 그 부담을 덜어내려 한다는 의견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내부자들>의 완성도나 특히 주인공 이병헌의 연기는 그동안 보여준 모습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며 “영화 자체로는 경쟁력 있지만 외적인 스캔들로 인해 영화가 자칫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우려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병헌 주연 영화의 개봉 시기는 결국 그의 사건 여파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잠잠해질 가능성이 현재로선 낮다. 이병헌을 협박한 20대 여성 두 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이에 불복해 최근 법무법인 평안과 손을 잡고 항소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 지난해 11월 설립한 로펌이다. 유수의 법무법인과 손잡고 항소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로, 이병헌 사건의 장기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