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불가능이 없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영화 속에선 우주에서 외계인과 맥주 파티를 벌일 수 있으며 평범하게 출퇴근하는 일상의 도심에 괴물이 출현할 수도 있다. 악당들을 물리쳐줄 히어로가 함께 사는 세상이며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의 남녀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섹시한 남성과 여성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영화 <사막에서 연어낚시> 역시 이런 ‘불가능은 없다’는 영화적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막지역인 중동의 예멘에서 연어 낚시를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와 소재가 바로 이 부분이지만 여기에는 깊은 정치적 고민이 포함돼 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의 ‘불가능’은 다른 데 있다. 오랜 부부 생활을 해온 유부남과 우연한 계기로 짧지만 깊은 사랑에 빠진 처녀와의 사랑, 게다가 그 처녀의 애인은 중동 지역 임무에 투입됐다가 행방불명된 상태다. 당연한 얘기지만 죽은 줄 알았던 애인은 살아 돌아온다. 그럼에도 이런 평범한 유부남과 운명적으로 만난 처녀 사이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을까? 진정한 불가능은 여기에 있다. 사실 이는 원작을 지나치게 할리우드 색채로 각색하다 벌어진 오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할리우드는 이런 오류를 너무나 훌륭하게 스크린에 담아낸다. 일반 관객들은 이것이 오류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이 영화를 ‘2015년 설 특집 기나긴 연휴 솔로들을 위한 영화’로 선정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다만 솔로 남성이 아닌 솔로 여성을 위한 선택이다.
<사막에서 연어낚시>, 원제는 <Salmon Fishing in the Yemen>로 지난 해 10월 국내에서 개봉했지만 관객 수는 채 2만 명이 되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서일까? 아니다. 요즘 멀티플렉스 개봉 시스템에선 종종 극장에서 관심 받지 못한 채 부가판권 시장으로 흘러 들어온 명작이 꽤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막에서 연어낚시>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네티즌 평점 7.3, 네이버에선 관객 평점 8.12를 받았으니 어느 정도 검증은 된 영화다. 제목이 영어 원제인 예멘에서 사막으로 바뀐 것은 아무래도 예멘보다 넓은 개념인 중동지역 전체를 의미하는 사막으로 바꾸는 게 한국인들이 다가가기 쉬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이 영화는 폴 토데이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원작 소설은 영화와 달리 음모가 판치는 정계의 중심부를 비꼬며 풍자를 이어가는 정치 코미디물이다. 아무래도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패트리샤 맥스웰(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의 비중이다. 원작 소설이 총리실 홍보 담당자인 패트리샤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음모를 풍자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영화는 알프레드 존스 박사(이완 맥그리거 분)와 투자 컨설턴트 해리엇(에밀리 블런트 분)의 로맨스에 더 중점을 뒀다.
따라서 패트리샤 맥스웰를 중심으로 한 영국 정계의 음모보다는 존스와 해리엇의 멜로가 더 중심이 된 영화다. 그렇지만 애초 이 영화의 시작점이 된 ‘사막인 예멘에서 연어 낚시를 하겠자’는 예멘의 부호인 왕자 무하메드(아미르 웨이키드 분)는 큰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하메드 왕자는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프로젝트를 강행하는 것일까. 연어 낚시를 위해 5000만 파운드 정도는 가볍게 쓸 수 있는 철없는 왕자이기 때문일까. 사실 무하메드 왕자의 진심은 연어낚시를 통한 개혁이다.
그는 연어낚시를 통해 계급 사회인 중독 지역이 이를 극복하게 되길 기원한다. 낚시를 할 때 물고기는 계급과 무관하게 아무 미끼나 물기 때문이다. 또 이런 얘기도 한다. “나는 작은 기적을 만들고 싶다. 신을 찬양하고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도록.” 결국 무하메드 왕자가 사막에 댐을 만든 것은 연어낚시를 위함이 아닌 사막 지역에서도 물을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는 치수사업을 위함이며 그는 이를 신의 뜻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무하메드에 반대하는 세력은 오히려 ‘사막에 물을 끌어 오는 것은 중동 지역에 서양 문물을 강요하는 것으로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런 무하메드와 그의 반대자들의 갈등은 결국 신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것이 중동 내에서의 종교적 정치적 갈등을 함축적이고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는 전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다. 이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테러 세력을 소탕하는 대테러 전쟁이 아닌 그들을 진정한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현재의 서구 정치권은 이 영화처럼 대테러 전쟁을 벌이며 ‘사막에서 연어낚시’ 프로젝트와 같은 정치 외교적인 쇼만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패트리샤를 중심으로 한 영국 정치권의 생각은 이를 제대로 보여준다.
다만 영화는 원작 소설의 핵심인 패트리샤를 중심으로 한 서구 정치권의 음모와 꼼수를 최소화 하는 대신 존스와 해리엇의 멜로에 더욱 중심을 두고 있다. 서구 정치권과 사회가 중동 문제를 외교적인 쇼와 음모, 그리고 꼼수로 활용하고 있는 현실에 서구 세계의 영화계가 발맞춰 정치 코미디물인 원작 소설을 로맨스 영화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 줄거리
영화 <사막에서 연어낚시>는 부호인 예멘의 왕자 무하메드의 어처구니없는 발상에서 시작된다. 평소 낚시를 즐겨 연어 낚시가 가능한 지역에 별장까지 갖고 있는 무하메드 왕자는 사막 지역인 예멘에서 연어낚시를 하기 위한 ‘사막에서 연어낚시’ 프로젝트를 세운다.
그의 자산을 관리하는 투자 컨설턴트 해리엇은 영국 정부에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영국 해양 수산부의 어류학자 알프레드 존스 박사에게 자문을 구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총리실 홍보 담당자 패트리샤가 끼어들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중동 대테러 작전으로 외교적 위기에 몰린 영국 정부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예멘에서의 ‘사막에서 연어낚시’ 프로젝트 강행을 결정한 것.
패트리샤나 총리 영국 정치권 입장에서 중동은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지역이다. 이에 따라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대테러 작전을 진행한다. 그렇지만 중동 지역과의 외교적인 마찰까지 감내하는 데에는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중동 관련 아름다운 뉴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막에서 연어낚시’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존스 박사는 원치 않는,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위해 해리엇과 함께 예멘을 방문한다. 그러는 사이 존스 박사는 무하메드 왕자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연인의 실종으로 슬픔에 빠진 해리엇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배 아플 걱정 없이 로맨스 영화를 보고 싶다면 클릭
사실 이 영화를 올해 설 연휴 솔로인 여성들에게 추천하는 까닭은 그들의 사랑이 이뤄지느냐 아니냐에 중점을 뒀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전제 조건들의 위기에 포인트를 뒀다. 존스는 평범한 학자 겸 공무원으로 어린 시절 만난 연인과 결혼해서 겉으로는 평온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 뿐 실제 행복한 부부의 모습은 아니다. 그리고 결국 예멘에서 연어낚시를 한다는 프로젝트와 거기서 만난 해리엇이라는 여성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주위에서 평범하게 결혼 생활을 하며 지내는 지인들을 무조건 부러워할 까닭은 없다는 얘기다.
평범한 결혼 생활에 뜻이 없는 여성의 상당수는 번개처럼 다가오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 역시 덧없음을 보여준다. 큰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에서 만난 군인과 뜨거운 사랑에 빠진 해리엇. 누구보다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이던 그는 그렇게 만난 연인이 중동에서의 작전 도중 행방불명이 되면서 누구보다 깊은 절망에 빠진다. 제발 운명적으로 만난 사랑이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스포일러일 수도 있지만 그의 연인은 사망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이는 당연한 해피엔딩의 전조겠지만 이는 해리엇은 존스 박사와 사랑에 빠진 뒤다. 결국 번개처럼 다가온 운명적인 사랑도 다 찰나의 환상일 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들 사랑 얘기에 배 아파하며 봐야 하는 멜로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설 연휴 솔로 여성들에겐 가장 적합한 영화가 아닐까 싶어 추천한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2000원
무난한 영화인 만큼 다운로드 추천 가격 역시 무난한 수준에서 정했다. 설 연휴 무난하게 즐길 만한 영화라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요즘 한창 시끄러운 테러 소식으로 시끄러운 중동의 현실을 또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도 이 영화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