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첫 수학에 임하는 자세
01 수학에 ‘대화’가 중요한 이유
유아 수학에서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문제의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는 것이다. 왜 그런 답을 내게 되었는지 아이가 추론하고 답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또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자. 그래야 아이의 머릿속에 개념이 논리적으로 정리되며 이른바 ‘사고력’을 키울 수 있게 된다.
‘2×3=6’이라는 사실은 구구단만 외울 줄 알면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답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2×3’이 ‘왜’ 6인지 되묻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2’가 세 묶음 있기 때문에 ‘6’이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수학을 서술적으로 설명하는 연습을 할수록 아이의 사고력이 길러진다. 그리고 나중에는 ‘15×15=225’라는 사실을 좀 더 빠르고 합리적으로 계산해내게 된다. 종이에 ‘15×15=225’라고 적어 계산을 하는 게 아니라, 10이 15묶음(150), 5가 15(75)묶음 있기 때문에 225가 된다는 사실을 산출해낼 것이다.
02 친숙한 소재, 실제적인 구체물을 택한다
수학은 생활이다. 그렇기 때문에 ‘4+2=6’보다 ‘봉지에 귤 4개가 있었는데 2개를 더 담으면 몇 개가 될까?’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실제적으로 와 닿는다. 수학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일상생활에서 수학을 접하게 할 때는 ‘구체물’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아이가 숫자를 순서대로 잘 읽고 쓰더라도 해당 수의 양적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아이들은 추상적인 이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접하는 구체적인 물건들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단추, 바둑알, 사탕, 종이컵, 과일 같은 구체물을 활용하면 아이의 흥미를 끄는 데 효과적이다. 머리로만 생각한 것은 잊히기 쉽지만 일상적으로 접하는 물건을 가지고 즐겁게 몸으로 체험한 수학 개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Tip 수학놀이에 추천하는 구체물
바둑알, 땅콩, 알사탕, 단추 | 아이의 흥미를 끄는데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체물이다. 수 세기, 더하고 나누기 등 다양한 수학놀이에 쓰기 좋다.
블록 | 구조물이나 특정한 패턴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 다양한 색상의 블록을 이용해 분류 놀이도 할 수 있다.
클레이, 밀가루반죽 | 자유롭게 변형되는 특성을 지녔다. 반죽하는 과정 자체도 즐거워 아이들이 좋아한다. 자유로이 주무르고 떼어보고 붙이는 과정을 통해 부피의 개념을 익히며 나누기, 더하기, 분수 등의 개념까지 익힐 수 있다.
그 밖에 | 각종 보드게임, 주사위, 시계 등
03 일상생활에서 수학 개념을 찾아보자
집에 수학 교구나 교재가 있다면 활용해도 좋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물건을 활용할 때 아이들은 ‘수학이 곧 우리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우리 주변은 온통 수학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통해 분류 개념을 알 수 있고, 거실·안방·작은방을 오가며 ‘넓다’, ‘좁다’의 개념을 배울 수 있다.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며 ‘무겁다’, ‘가볍다’는 개념을 익힐 수 있으며, 화장실의 타일이나 벽지의 패턴을 통해 배열의 규칙성을 배우게 된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수학적 개념을 친숙하게 접하면 수학이 단순히 더하고 빼는 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흥미를 갖게 된다.
Tip 수학놀이가 중요한 이유
저명한 수학자 디너스(Dienes)는 일찍이 놀이를 중심으로 한 수학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아이들은 구체적이면서 실제적인 놀이와 게임으로 수학을 접할 때 더욱 흥미를 갖고 자발적인 학습 동기에 의해 수학을 시작한다. 그리고 수학적인 상황 놀이를 통해 조직된 학습으로 발전하고, 또 수학적 구조의 구성과 그 구조를 응용한 학습 과정을 통해 수학적 사고가 완성된다.
04 보드게임이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직접 수학놀이 프로그램을 짜는 게 어렵다면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보드게임을 활용해보자. 아무리 난이도가 쉬운 보드게임이라 하더라도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수학적인 룰이 존재한다. 또한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논리력과 사고력도 키워진다.
잘 알려진 ‘루미큐브’는 훌라 게임과 비슷한 보드게임인데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 대여섯 살 아이도 즐길 수 있다. 숫자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수 개념을 익히게 된다. 또 ‘할리갈리’는 돌아가면서 카드를 1장씩 뒤집다가 같은 과일이 5개 나오면 종을 치고 다른 사람의 카드를 모두 가져가는 놀이다. 어린아이들도 이해하기 쉬운 게임으로 손꼽힌다.
도안을 따라 두께감 있는 색도화지를 오리기만 해 즉석에서 만들 수 있는 칠교도도 많은 수학자들이 추천하는 놀이다. ‘칠교도’라고 하는 7조각의 퍼즐로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볼 수 있다. 정사각형을 7개 조각으로 나눈 형태인데 직각 삼각형 큰 것 2개, 중간 크기 1개, 작은 것 1개, 정사각형과 평행사변형 각 1개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05 단순 연산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능숙하게 연산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과 수학을 연계시키는 것이다. ‘연산’이 기본이라는 생각에 연산 문제만 줄창 풀어야한다면 아이는 본격적인 수학 공부가 시작되기도 전에 수학에 질려버린다. 수학의 본질은 ‘셈하기’나 정해진 공식에 따라 ‘문제 풀이’를 하는 게 아니다. 문제를 해석하는 이해력, 논리력, 추리력, 합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는 물건을 사고, 시간을 알아보고, 음식을 나눠 먹을 때 숱하게 많은 수학적 상황을 접한다. 지면의 단순 연산을 빠르게 푸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닥친 수학적 상황의 개념을 이해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유아기에 기계적인 연산에 익숙해지면 자칫 수학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
Mini Interview.
“대화와 놀이로 우리 아이 수학 본능을 깨우세요”
- 박병하(<처음수학> 저자, 러시아 모스크바대학 수학박사)
‘나는 정말 수학 머리가 없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말이에요. 누구나 자연스럽게 말을 배워나가듯, 아이라면 누구나 수학을 잘할 수 있는 ‘수학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학 본능은 놀이와 대화로 깨어납니다. 애초에 수학은 삶과 놀이에서 탄생했고, 추론하는 즐거움 덕분에 꾸준히 발전을 거듭한 학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활동과 추론 없는 수학은 수학이라 할 수 없지요.
놀이를 통해 꾸준히 수학을 접하게 해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워나가죠. 놀면서 세상을 파악하고 추론하며 재미를 느낍니다. 아이들의 이러한 본능은 수학의 본능과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해주는 것은 ‘대화’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른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공식에 수를 넣고 값을 산출해내게 하는 게 아니라 수학을 매개로 놀이를 하는 것,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핵심이지요. 수학은 연산에 그치지 않습니다. 논리, 분류, 확률, 알고리즘 등 이 모든 것이 수학의 근본이고, 이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데 ‘수학놀이’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좋은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학놀이가 이루어질 때 공부가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일찌감치 깨쳐나갑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또래 집단끼리 동아리를 짜서 정기적으로 수학놀이를 하는 겁니다. 여럿이 수학놀이를 하기 위해선 나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정기적으로 날짜를 잡아야 합니다. 집에서 아이와 단둘이 수학놀이를 하게 되면 이런저런 변명이 붙게 되고 흐지부지되기 십상이지만, 이렇게 동아리를 짜서 매주 특정 요일에 모여 수학놀이를 한다면 의무감에서라도 꾸준히 하게 됩니다.
30여 년 전, 러시아의 유명한 수학자 알렉산더 즈본킨이 네 살배기 아들 지마와 또래 친구들을 모아 자신의 집에서 수학 동아리를 시작했어요. 수업은 매주 한 번씩 짧게는 15분, 길어도 1시간을 넘기지 않았죠. 그렇게 이어진 4년 동안 호기심 많은 꼬마들과 아빠는 좌충우돌, 엎치락뒤치락 수학놀이를 즐겼어요. 아이들끼리 서로 상호작용하며 정말 신나게 수학을 고민하고 즐겼지요.
그 4년간의 기록은 책으로 나오기도 전에 이미 러시아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었고, 이후 ‘유아 수학교육의 고전’이라 불리고 있지요. 이렇게 대화하고 놀면서 아이의 수학 본능을 깨워주세요. 자연스럽게 일상어를 깨치며 생각을 키워가듯 수학 언어도 그렇게 익혀나가야 합니다. 애초에 수학은 셈하기가 아니며 우리 삶 속에 함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그게 바로 부모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요.
러시아 수학자 알렉산더 즈본킨의 수학일기를 최초로 국내에 번역 소개한 수학자. 모스크바 국립대학 수학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영재교육 관련 정책기획과 교육 일을 했다. 수학캠프 및 강좌를 열고 있으며, 수학고전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수학 교육 때문에 고민에 빠진 부모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최근 수학놀이 안내서 <처음 수학>(양철북)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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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박시전 기자 / 사진 이성우(모델), 인지은(인터뷰) / 모델 박혜인(4세), 심현우(6세) / 일러스트 경소영 / 도움말 박병하(<처음수학> 저자) / 스타일리스트 김유미 / 의상협찬 모이몰른(02-3215-0017), 베베드피노(www.bebedepin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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