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섹스토이 매장들이 과거와는 달리 도심 번화가에 속속 오픈 하고 있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펀팩토리 베를린, 펀팩토리 뮌헨, 뮌헨의 달링 프리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뮌헨의 고급스런 번화가인 라이헨바흐 1번가. 세련되고 고급스런 황금 도트 무늬로 꾸며진 매장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쇼윈도의 마네킹의 모습도 여느 고급 패션매장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잠깐. 매장 안에 진열된 상품을 보니 어딘가 이상하다. 마치 조각작품을 연상케 하는 알록달록한 물건들의 정체가 아리송한 것. 가령 S자 모양의 조각품은 백조를 본뜬 장식품인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답은 ‘아니다’다. 이 S자 모양의 물건은 여성들을 위한 바이브레이터, 즉 섹스토이다. 이처럼 독일 브레멘의 성인용품 회사인 ‘펀팩토리’가 선보이는 섹스토이들은 하나같이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기존의 것들처럼 흉칙하고 불쾌한 모양이 아니라 모두 세심하게 디자인된 모양을 하고 있다.
매장 인테리어도 이에 못지않다. 지난 1월 베를린, 브레멘에 이어 세 번째로 문을 연 뮌헨 매장의 경우 2층 건물에 180㎡ 규모를 자랑한다. 프라다, 소니 등과 협력한 바 있는 미국의 유명 산업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가 실내 인테리어를 담당했으며, 그런 까닭인지 외관만 봐서는 도무지 성인용품 매장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됐다. 게다가 라시드가 직접 디자인한 성인용품들을 보면 ‘디자인 스토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매장이 위치한 장소다. 라이헨바흐 1번가는 뮌헨에서도 노른자에 속하는 번화가다. 공인중개업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AAA 입지’를 자랑하는 곳이다. 인근의 막시밀리안가에는 명품 매장들이 줄지어 있으며, 이 구역을 찾는 사람들은 구매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성인용품 시장이 변화하고 있는 데 대해 ‘펀팩토리’의 회장인 디르크 바우어는 이런 변화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위치가 바로 이를 말해준다. 섹스토이를 포함한 ‘성’은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근래 들어 유럽에서는 섹스토이 시장이 유례 없는 붐을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인용품 매장들이 한적한 길가 모퉁이에 위치한 음침하고 지저분한 싸구려 매장이었다면 오늘날의 매장들은 기품 있는 대로변의 부티크 매장으로 탈바꿈했다. 더불어 바이브레이터나 딜도(남근 모양 인형)와 같은 섹스토이들이 새로운 디자인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 또한 물론이다.
‘펀팩토리’처럼 낡은 옷을 벗어 던지듯 많은 에로틱 업계들이 과거의 불결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있다고 <포쿠스>는 전했다.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스럽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특히 독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가령 슈투트가르트의 ‘프라우 블라움’, 뮌헨의 ‘달링 프리벌’, 오스나브뤼크의 ‘라 코켓’, 함부르크의 ‘클라이네 프라이하이트’ 등 성인용품 업체들이 보란 듯이 모두 도심 한가운데 속속 매장을 오픈했다. 베를린의 유명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는 심지어 섹스토이 상품을 마치 패션상품을 판매하듯이 진열해 놓고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잡지인 <페어트립스매니저>는 “바이브레이터를 비롯한 성인용품들이 다른 무해한 일반 상품들처럼 인식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령 뮌헨의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달링 프리벌’은 럭셔리 에로틱 부티크다. 뮌헨의 남녀 모두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곳의 인테리어는 부드러운 카펫, 우아한 음악,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향기까지 마치 귀부인의 거실처럼 고상하게 꾸며져 있다. 또한 18K 금으로 도금한 바이브레이터나 손으로 깎아 만든 딜도는 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왼쪽부터 수제 딜도, 과일과 채소 모양의 딜도, 컵 케이크 모양의 바이브레이션, 백조 조각 작품을 연상케 하는 딜도.
지난해 3월 문을 연 슈투트가르트의 ‘프라우 블룸’ 역시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긴 마찬가지다. 이곳의 제품들은 재치 넘치고 기발한 디자인들이 많다. 가령 오이, 바나나, 옥수수, 당근, 가지 등 과일과 채소 모양의 딜도가 가장 눈에 띈다. 모두 먹음직스럽게 생겼기 때문에 실리콘으로 만든 섹스토이라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또한 삽입하는 형태가 아닌 음부 위에 올려놓는 컵케이크 모양의 바이브레이터는 집안 장식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이런 톡톡 튀는 디자인 덕에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여기가 뭐하는 곳이에요?”라고 묻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액세서리 가게인 줄 착각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매장 분위기도 밝고 활기가 넘친다. 두꺼운 커튼을 저치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재빨리 들어올 필요도 없다. 과거 성인용품 가게들의 음침하고 어두웠던 분위기와는 정반대다. 또한 손님들이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한 편에는 커피를 마시면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 매장이 여성들 사이에서 만남의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는 ‘프라우 블룸’의 공동 창업자인 알렉산드라 슈타인만과 마샤 휠제히비의 바람처럼 현재 이곳에서는 성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 행사도 열리고 있다. 가령 ‘벌레스크 스트립 강좌’나 ‘낭독회’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걸까. 그 답은 통계포털사이트인 ‘스타티스타’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찾을 수 있다. 성관계 도중에 보조기구나 섹스토이를 사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성 응답자들의 59%가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던 것. 또한 리서치 업체인 ‘입소스 컨설팅’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58%의 여성들이 한 개 이상의 섹스토이를 보유하고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섹스토이를 구석에 숨겨놓지 않고 당당하게 집안 보이는 곳에 두고 사용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용품처럼 보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처럼 성인용품 시장의 변화를 이끈 것은 여성들이었다. ‘달링 프리벌’의 창업자인 캐롤린 스테판은 “오늘날 여성 고객들은 욕망을 자신 있게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욕망이 잘못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성들의 구매가 늘어나자 자연히 시장도 덩달아 커지기 시작했다. 매년 전 세계 성인용품 매출액은 약 120억 유로(약 15조 원)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가운데 80%가 바이브레이터다. 다시 말해 여성들이란 이야기다.
이처럼 섹스토이의 유행으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섹스 문화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성연구가인 뤼디거 라우트만은 “사실 섹스토이는 폼페이 시절부터 있었다. 당시 여성해방운동의 발달과 함께 남성들의 성문화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성들도 원치 않는 경우 ‘아니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면서 오늘날의 남녀관계에서는 ‘계약관계 형태의 성’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성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남녀 모두 성적인 욕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펀팩토리’의 바우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섹스토이는 당연한 것이 됐다. 솔로든 커플이든 섹스토이로 인해 성생활이 풍요로워졌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에로틱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인기도 한몫했던 것이 사실이다. 스테판은 “이 소설로 인해 성과 관련된 주제가 더 이상 터부시되지 않게 됐다. ‘본디지’와 ‘SM’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안에는 수많은 에로틱과 성이 잠들어 있다. 누군가 깨워주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