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남녀 4명을 자신의 배에 태워 나간 뒤 바다에 떠밀어 살해한 70대 어부 노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성추행을 하려다 반항해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노인(가운데)이 자신의 배에 올라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
경찰에 따르면 오 씨는 자신의 배에 태운 여성들을 바다 한가운데에서 성추행하려다 반항하자 이들을 밀어 바다로 빠트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오 씨는 바다에 빠진 피해자들이 배 위로 올라오려고 하자 갈고리가 달린 어로장비로 다리 등을 내리치는 잔인함을 보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과연 사건이 일어났던 날 바다 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0대 후반부터 고기를 잡으며 파도와 50년을 넘게 사투를 벌여온 오 씨가 왜 갑자기 성욕에 굶주린 노인으로 변해 자신의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과 몸싸움을 벌였던 것일까. 경찰의 수사결과와 현장검증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추석 연휴기간이던 지난 9월 25일 전남 보성군 회천면 율포리의 한 선착장. 출항준비를 마치고 막 배에 오르려던 오 씨에게 20대 여성 2명이 다가와 “멀리 경기도에서 왔는데 배 한 번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라며 말을 건넸다. 그들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안 아무개 씨(23)와 조 아무개 씨(24)였다. 오 씨는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이고 두 여성을 자신의 0.5t짜리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갔다.
선착장에서 2.2㎞쯤 떨어진 어로작업장에 도착한 오 씨는 이곳에서 약 3시간 동안 주꾸미 등을 잡았다. 그 사이 두 여성은 오 씨가 잡은 고기를 맛보기도 하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하지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았던 오 씨가 돌변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오 씨가 다가와 느닷없이 조 씨의 가슴을 만진 것.
두 여성은 오 씨의 갑작스런 행동에 적잖이 당황했다. 특히 직접 성추행을 당한 조 씨는 오 씨의 멱살을 잡으며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안 씨는 낮에 한 여성이 자신의 휴대폰을 빌려 걸었던 전화번호로 ‘배를 타다 갇힌 것 같다. 경찰보트를 불러 달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뒤 안 씨는 친구 조 씨를 도와 오 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비록 70대 노인이긴 했지만 평생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온 오 씨의 완력은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10분간을 배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중 조 씨가 먼저 수심 5.2m 바다로 빠졌다. 잠시 뒤에 오 씨와 안 씨도 서로의 멱살을 붙잡은 채 같이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뱃사람인 오 씨에게 거센 바다의 조류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여성이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오 씨는 능숙하게 헤엄쳐 배 위로 올라왔다.
오 씨가 배에 올라탔을 때 이미 조 씨는 조류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내려간 상태였다. 안 씨 역시 겨우 배를 붙잡고 올라오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코 올라설 수 없었다. 배 위에 있던 오 씨가 어로 장비인 삿갓대(길이 2m 정도의 나무막대 끝에 갈고리를 매단 어로장비, 부표를 끌어당길 때 쓰임)를 이용해 안 씨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오 씨는 배에서 떨어진 안 씨의 다리 등을 삿갓대로 다시 2~3번 내리치기도 했다. 체포된 후 오 씨는 “살려주면 내가 발각될 것 같아서 삿갓대로 여자를 밀어 넣었다”라고 진술했다.
한편 바다 위에서 오 씨와 두 여성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안 씨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이는 안 씨의 휴대폰을 빌렸던 30대 여성의 남편이었다. 이 남성은 자신의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부인은 문자메시지의 발신자가 아까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간다던 여성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전 직원을 비상소집해 피해자들이 배를 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비롯해 일대 해안가에 대한 수색에 나섰다. 이와 동시에 안 씨의 휴대폰 위치추적을 병행해 나갔다. 하지만 수사는 이내 벽에 부딪혔다. 다음은 당시 상황에 대한 경찰 관계자의 얘기.
“해안가 수색작업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통신수사 역시 바닷가의 특성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육지에서는 기지국 한 개가 반경 200m 정도의 거리를 관할하지만 여기서는 기지국 한 개가 7㎞를 맡는다. 바다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문자를 보낸 위치를 추적해도 바다라는 것 이외에 별다른 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따라서 수사는 피해자가 발견되기 전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실종 다음날인 26일 피해자들이 배를 탔던 선착장에서 불과 200m 떨어진 해안가에서 조 씨의 사체가 발견됐다. 또 28일 새벽엔 안 씨의 사체마저 근처 해안가에서 발견됐다. 모두 어로작업을 하던 어선이 발견한 것이었다. 사체를 인양한 경찰은 사체에 대해 검안을 실시했다. 그 결과 심하게 다툰 흔적이 있고 신체 여러 군데에 얻어맞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안 씨의 시신은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한쪽 발목이 부러진 상태였다.
경찰은 우선 피해자가 탔던 배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관내 335척의 선박에 대해 사건 당일 출항 여부와 선주의 알리바이를 면밀히 조사해 가던 중 오 씨의 선박이 사건 당일 오전에 출항한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오 씨의 선박 내부를 수색한 결과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긴 머리카락 수십 개를 비롯해 피해자의 신용카드와 볼펜 한 자루도 찾아냈다.
경찰은 오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29일 그의 소재지를 파악해 검거에 나섰다. 경찰이 오 씨의 집으로 갔을 때 그는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경찰을 따라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에 도착한 오 씨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런 여자들은 태운 적도 없다’며 발뺌을 한 것. 하지만 배에서 나온 증거들을 가지고 계속 추궁하자 오 씨는 “배에 태워달라고 해서 태워줬다. 그런데 조 씨가 조업을 방해해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조 씨가 빠졌고 조 씨를 구하려던 안 씨도 스스로 물에 뛰어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당시 오 씨는 “조 씨의 가슴을 만지다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바다에 빠졌는데 나만 올라왔다. 두 명 중 한 명은 바다에 떠내려갔고 한 명이 배에 올라타려는 걸 내가 삿갓대로 밀어낸 뒤 달아났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 씨는 피해자들이 물에 가라앉은 것을 확인하고는 태연하게 옷을 갈아입은 뒤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오 씨의 범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한 달 전 남녀 대학생 2명이 실종됐던 장소와 비슷하고 당시 사체로 발견됐던 남학생의 상처와 이번 사건 피해자인 안 씨의 상처가 유사한 점을 파악하고 오 씨에게 여죄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결국 당시 실종됐던 2명의 대학생들도 자신이 살해했다는 오 씨의 충격적인 고백이 흘러나왔다. 경찰이 밝힌 남녀 대학생들의 살해사건 전모는 이렇다.
지난 8월 31일 오후 4시 30분경 선착장에서 출항 준비를 하던 오 씨에게 연인 사이였던 대학생 김 아무개 씨(21)와 추 아무개 씨(여·20)가 ‘배를 태워 달라’며 다가왔다. 오 씨는 두 사람을 배에 태우고 자신의 어로작업장으로 갔다. 이곳에서 1시간가량 고기잡이를 하던 오 씨는 배의 앞쪽에서 나란히 앉아 바다를 보던 김 씨와 추 씨에게로 다가갔다. 갑자기 오 씨는 한 손으로 김 씨의 엉덩이를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의 등을 잡은 후 바다 속으로 빠트렸다. 여자친구 추 씨는 갑작스런 오 씨의 행동에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오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빠진 김 씨를 향해 삿갓대를 휘둘렀다. 오 씨가 김 씨에게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추 씨는 119에 무려 네 차례나 전화를 했다가 끊었다. 겁에 질린 추 씨가 말은 하지 못하고 그냥 걸었다가 끊기만 반복했던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도 김 씨가 계속 배에 오르려 하자 오 씨는 삿갓대로 김 씨의 다리 등을 내리쳤다. 김 씨가 빠진 바다는 훗날 추석연휴에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빠진 곳에서 100m쯤 떨어진 곳이었다. 물도 깊고 물살도 빠른 곳이어서 바다를 잘 아는 사람도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장소라고 경찰은 전했다.
김 씨가 떠내려간 것을 확인한 오 씨는 겁에 질려 떨고 있던 추 씨에게 다가가 가슴을 만졌다. 추 씨가 오 씨의 옷을 쥐어뜯으며 거세게 반항하자 오 씨는 ‘너도 같이 죽어라’라고 하면서 추 씨를 바다로 밀었다. 추 씨는 바다에 빠진 후 배에 오르려 했으나 배 위에서 훼방하는 오 씨를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추 씨도 물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들의 실종신고가 접수된 것은 다음날인 9월 1일. 추 씨의 부모가 ‘딸이 보성에서 실종됐다’며 신고를 한 것. 당시 신고를 받은 경찰은 추 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확인하고 해안선 일대를 수색했다. 경찰은 추 씨가 119에 여러 차례 전화한 것을 밝혀냈지만 바다라는 특성상 추 씨의 ‘실종’ 위치를 발견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던 중 이틀 뒤인 3일 오후 6시께 추 씨의 사체가 발견됐다. 처음 물에 빠진 곳에서 무려 4㎞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추 씨의 시체에는 특별한 외상이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남자친구인 김 씨의 시체가 처음 물에 빠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역에 떠올라 여수 해양경찰이 인양했다. 발견 당시 김 씨의 사체는 발목이 부러져 있었고 흉부에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애초 오 씨는 이 사건에 대해 “둘이 내 배에 탄 것은 맞다. 하지만 내가 죽이진 않았다. 김 씨가 소변을 보다 미끄러져 떨어졌고 이에 놀라 소리치던 추 씨를 나도 모르게 밀어 빠트린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의 몸에 난 상처 등을 봤을 때 피살된 것으로 확신하고 오 씨를 계속 추궁한 끝에 범행 전모를 밝혀낼 수 있었다.
한편 김 씨의 시체를 처음 발견했던 당시 여수 해경은 사체를 부검까지 했지만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잠정 결론을 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의 한 관계자는 “처음 사건을 접수한 수사팀이 동반 자살한 사건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할 경찰서의 당시 수사 역시 피해자를 봤다는 목격자나 유류품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초동수사가 미흡해 2차 살해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해양경찰서와 보성경찰서는 오 씨가 검거된 이후에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사건에 대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경과 경찰이 보다 유기적인 공조 시스템을 하루 빨리 갖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피해자 추 씨의 친척이라고 밝힌 한 40대 남성은 “솔직히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렇게 수사를 (제대로) 했으면 됐을 것 아니냐. 모든 선박을 샅샅이 조사하고…. 또 아무리 바다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119에 그렇게 신고를 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충 얼버무릴 수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번 사건도 문자메시지가 아니었다면 자기네들끼리 미루다가 대충 넘어갔을 것 아닌가”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1일 보성경찰서에서 만난 피의자 오 씨는 시골마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인이었다. 그는 심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죽을죄를 지었다”라며 뉘우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4명의 꽃다운 생명을 수장시킨 죄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게 수사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지금 오 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등 신빙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겠나. 피해자들이 모두 죽은 상황이라 오 씨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여죄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어 오 씨가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 이상 별 도리가 없다. 그래도 혹시 다른 실종사건과 연관이 있지는 않은지 좀 더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보성=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