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한민성 씨와 아들 한지훈 군.
[일요신문]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학생이 아버지를 위해 간을 기증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서울 세명컴퓨터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지훈(18세)군은 지난 1월 5일 자신의 간 70%를 아버지에게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한 군의 아버지 한민성 씨는 알코올성 간경변증 및 간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한민성 씨는 이미 고주파 치료를 통해 간암 치료를 받은 바 있지만 간경변증이 악화돼 2010년부터는 반복적인 심한 식도정맥류 출혈로 고생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상태가 나빠져 간 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대목동병원 간센터 김태헌 교수와 간이식 전문의 홍근 교수로부터 간이식의 필요성을 듣고 한민성 씨는 이식을 결심했지만 뇌사자 간이식을 받을 상황도 아니어서 가족들로부터 장기를 기증받는 문제로 깊은 고민 속에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투병 과정을 지켜보던 아들 한지훈 군은 흔쾌히 간을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증자 검사 중에 시행한 위내시경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됐다. 어린 나이에는 흔하지 않은 점막 관련 림프조직 종양 가능성이 있어서 두 차례에 걸쳐 정밀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 이어 소화기내과, 병리과, 영상의학과 및 외과 등의 교수진이 참여해 기증 가능성 및 위험성에 대한 다학제 검토를 진행했다.
생체 간이식에서는 기증자 안전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한군의 당시 건강상태로는 쉽게 간이식을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관련 분야 전문의들의 논의 결과 수술을 연기하고 한군을 먼저 치료하기로 했다.
취업 준비로 바쁜 시기가 다가오고 모르던 병도 알게 돼 치료 받는 등 간 기증을 결정하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한 군은 굽히지 않고 간기증을 하기로 했다. 결국 기증자 치료를 위해 수술이 연기될 수 밖에 없었지만 한 군의 치료 결과가 좋아 기증에 문제 없는 상태로 됐다.
한지훈 군은 “취업이냐, 진학이냐는 결정을 앞둔 고3이라는 시기가 매우 중요하고 바쁘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기증 후 후유증이 발생하면 모든 것이 어려워 질 수 있어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면서도 “하지만 취업이나 진학도 아버지가 살아 계셔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기증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 군은 운동 및 음식 조절과 같은 노력과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의 관리로 지난 1월 5일 한민성 씨와 나란히 수술대에 누울 수 있었다.
이대목동병원 간센터 홍근 교수는 한 군의 간 약 70%를 절제해 한민성 씨에게 이식했다. 아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한 군은 간도 역시 작아서 혈관 크기가 맞지 않는 등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현재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한지훈 군은 아버지에게 “간이식이 잘 되었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젠 아버지 혼자만의 몸이 아니니 더 건강에 주의하셨으면 좋겠고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민성 씨 역시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가족의 소중함도 느끼고 이제껏 본인 위주로 살아왔던 것을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살아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생체 간이식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한지훈 군의 어머니는 “이번 일을 계기로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웃으면서 지냈으면 한다”며 “성공적으로 수술을 해주신 이대목동병원 간센터 의료진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편, 수술 후에 한민성 씨는 특별한 합병증 없이 회복돼 퇴원했으며 간을 제공한 한지훈 군도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박창식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