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신설된 23조의2는 처벌조건이 더욱 강화됐다. 우선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하여 수행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특수관계인이 대주주인 회사에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또 특수관계인은 누구에게든지 불공정한 내부거래 행위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해당 행위에 관여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도 구체화했다.
결국 23조의2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충분조건’인 총수일가 지분율을 제한선 아래로 떨어뜨리는 게 중요하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받고, 관급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총수일가가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더 큰 압박요인”이라며 “재벌가 입장에서는 일단 총수가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대응태세를 갖춘 곳은 삼성이다. 삼성SDS는 비상장이던 지난 2013년 삼성SNS와의 합병을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이서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 사장 등 삼남매 지분율을 20% 아래로 떨어뜨렸다. 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세 자녀가 지분 42.19%를 가진 삼성에버랜드는 2013년 하반기(7∼12월)에 내부거래가 많은 건물관리사업은 에스원으로 양도하고, 급식 및 식자재 사업은 삼성웰스토리로 분사했다. 그룹 지주사인 만큼 총수일가 지분율을 떨어뜨리는 대신 내부거래 요인 자체를 줄이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이부진 사장이 지분 33.17%를 보유한 삼성석유화학도 지난해 8월 삼성종합화학에 흡수 합병시켜 지분율을 20% 아래로 낮췄다. 삼성종합화학은 지난 연말 한화에 ‘빅딜’되면서 이 사장의 지분도 함께 처분됐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인 정보서비스업체 가치네트는 지난해 말 청산됐다. 이로써 삼성은 공정거래법 23조의2 적용을 받지 않게 됐다.
정 부회장 지분율이 57.87%였던 자동차 부품회사 현대위스코도 지난해 11월 현대위아와 합병시켰다. 현재 현대위아에 대한 정 부회장 지분율은 1.95%에 불과하다. 광고대행 계열사인 이노션에서도 정 부회장은 보유지분 40% 가운데 30%를 지난해 매각했다. 올해에는 정 부회장 누나인 정성이 고문이 보유한 지분 40% 일부와 정 부회장 잔여 지분을 기업공개(IPO·상장)를 통해 매각, 지분율을 30% 아래로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 부자가 30%를 보유했던 현대오토에버 지분율도 지난해 말 일부를 계열사에 매각, 19.15%로 낮췄다. 시장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최대주주인 현대엠엔소프트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일 이뤄진 현대글로비스 주식 13.39%의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도 결국 정 부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지분율을 30%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을 제외하면 겉으로는 아직 적극적인 곳은 없다. 재계 3위 SK그룹에서 총수일가 지분율이 30%를 넘는 곳은 SK C&C뿐이다. 그런데 SK C&C가 실질적인 그룹 지주사여서 32.92%인 최 회장의 지분율을 떨어뜨릴 수 없다.
증시 관계자는 “SK그룹은 SK C&C와 공식지주사인 SK㈜를 합병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며 “합병 후 합병법인을 다시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고, 최 회장과 동생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의 사업회사 지분 43.42%를 지주사로 현물출자하면 공정거래법 23조의2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방법은 지주사 위에 또 다른 지주사가 있는 현재의 옥상옥 구조도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SK가 제일모직의 사례를 따라 내부거래가 많은 시스템통합(SI) 부문을 거래가 많은 SK텔레콤 등 다른 계열사에 매각하는 방법도 있다. 내부거래가 이뤄지는 사업 자체를 떼어내는 방법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옥상옥 지배구조를 해소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SK C&C의 사업가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SI부분이다 보니, SK㈜와의 합병 시 최 회장 등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LG는 ㈜LG의 총수일가 지분율이 30%를 넘지만 지주사여서 이번 규제와는 거리가 멀다. GS그룹도 지주회사인 ㈜GS를 비롯해 GS네오텍, 옥산유통, GS ITM 등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곳이 규제 대상이다. 하지만 GS그룹 경영과는 관련성이 적은 방계 회사들로, 건수는 많지만 실제 내부거래 규모(금액)는 다른 그룹에 비해 현격히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도 한국후지필름 등 비상장사 4개사가 대상이지만 내부 거래 비중은 높지 않은 편이다.
한화그룹은 5개 계열사가 23조의2 적용대상이다. 이 가운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한화 S&C의 내부거래 규모가 가장 크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지분 매각보다는 사업구조를 변화하는 쪽으로 검토 중”이라며 “공정위 규제 예외조항 등 다양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화S&C의 100% 자회사인 한화에너지가 삼성종합화학의 지분 29%를 가져가는 것도 사업다변화 전략의 하나로 판단되고 있다. 연결기준 매출이 10조 원에 육박하는 삼성종합화학을 품을 수만 있으면 내부거래 비중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계열사의 경우 거래처 다변화 등을 통해 규제를 벗어난다는 방침으로 전해졌다.
한진그룹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은 정석기업,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 등 비상장사 5곳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해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던 정석기업은 부동산 임대·관리업체로 한진빌딩 리노베이션 공사 등을 했다. SI 사업을 하는 유니컨버스는 한진그룹 계열 콜센터 구축 등의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이 대표이사다. 싸이버스카이는 대한항공 기내 면세품 인터넷 통신판매를 도맡은 업체로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이사로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