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어디서 오셨습니까?”
예상대로다. 기자를 막는 의경의 모습에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를 찾은 것은 지난 10일. 2013년 6월 ‘전두환 추징금 정국’ 이후 근 1년 반 만이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딱 한 가지뿐이다. 진을 친 기자들이 사라졌다는 것. 사저 앞 길목 경비는 여전히 삼엄하다. 15m쯤의 간격으로 의경 세 명이 나란히 입구 길목 쪽을 지키고 있다.
“요즘 전두환 전 대통령 보신 적 있으세요?”
막고 있던 의경에게 살짝 떠본다. 의경은 “말할 수 없다”며 한 발 뺀다. “손님이 많이 오시지는 않나”라고 묻자, 이 역시 대답은 같다. 말을 할 수 없고, 교대를 하기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때마침 교대 시간이 다가왔다. 대여섯 명의 의경들은 힘찬 경례와 함께 일제히 교대를 했다.
전 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2014년 5월이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이순자 여사와 함께 별세한 이학봉 전 안기부 차장의 빈소를 찾아 화제가 됐다. “추징금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중에 결정되면 얘기하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무엇보다 화제가 됐던 건 그의 건강상태다. 84세에 나이에도 정정한 모습이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전 전 대통령의 건강은 현재까지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추징금 정국’ 때 마음고생을 하다가 현재는 심신의 안정을 찾았다는 게 측근들의 말이다.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다. 별다른 운동이나 외출은 자주 하진 않으시지만, 초청을 하는 곳이 있으면 가시곤 한다”라고 전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성탄절에 지인의 초청으로 이순자 여사와 함께 서울 명일동에 있는 교회를 찾았다고 한다. 그 이전, 여름 즈음에는 강원 양양군 낙산사를 찾아 며칠씩 머물고 온 것으로 파악된다.
측근에 따르면 한때 즐겨하던 골프는 최근에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추징금 파문의 여파가 확실히 가시지 않았고, 무엇보다 계절의 영향이 큰 것으로 파악된다. 한 측근은 “지난 1년 동안 골프를 치진 않았고 최근에는 날이 추워 골프를 치기에도 여의치 않다. 날씨가 풀리면 건강관리도 할 겸 다시 골프를 칠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전경. 일요신문 DB
한때 전 전 대통령은 ‘치매설’이 돌기도 했다. 2013년 추징금 파문 즈음이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들로부터 “최근 있었던 일을 자주 잊어버린다”라는 말이 있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최근 근황을 전하는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측근이 전 전 대통령과 함께 강원도에서 식사를 하고 옥수수를 먹었는데, 이후에 전 전 대통령이 갑자기 “요즘 강원도에는 옥수수가 안 나느냐”고 물어봤다는 것. 측근이 어리둥절해 “방금 옥수수를 드셨다”고 얘기하자, “예전 일은 기억하는데 코앞의 일은 깜박깜박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민 전 비서관은 항간의 치매설을 일축했다. 민 전 비서관은 “치매는 확실히 아니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방금 한 말씀을 또 다시 하시고 하는 부분은 있다”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전 전 대통령을 찾는 ‘손님’이다. 기자가 사저를 찾은 그날도 “손님 오셨습니다”라는 경호원의 말과 함께 중년의 여성 두 명이 사저로 들어갔다. 측근에 따르면 한때 연희동에는 ‘월요 티타임 모임’이 있었다. 매주 월요일 오전에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장세동 전 안기부장,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 등 5공 핵심 인물들이 모이는 모임이다. 민 전 비서관은 이 모임을 “말동무를 해드리는 것이다. 주로 옛날이야기, 군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임의 성격을 듣기 위해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게 연락을 취해봤지만 닿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별다른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고 한다. 민 전 비서관은 “최근에는 특별한 손님이 없었고 별다른 모임도 없다”라고 전했다. 한때 전 전 대통령은 한문 학자를 사저로 초대해 한문과 주역 등을 꾸준히 배우기도 했는데, 추징금 파문 이후 배우지는 않는다고 한다.
지난 1월 18일은 전 전 대통령의 생일이기도 했다. 18일은 일요일이기에 가족들과 측근들이 사저로 찾아 간단하게 파티를 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인 19일에는 이순자 여사와 5공 당시 비서관들, 측근과 함께 신촌 근처에 있는 불고기 집을 찾아 점심식사를 했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나름 활동이 왕성한 셈이다. 전 전 대통령은 이전부터 준비해왔던 회고록 작업을 최근까지 계속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과 관련한 원고들을 연희동 사저에 들여올 정도로 회고록을 작성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측근에 따르면 회고록이 상당 부분 진척됐다고 한다. 아직 계획된 바는 없지만 출판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83)
2002년 노태우 전 대통령 내외가 제16대 대통령선거에 투표하는 모습.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현재 건강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는 게 측근들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지난 1월 20일에는 갑작스럽게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여론의 관심이 쏟아졌다. 당시 서울대병원 측은 노 전 대통령이 입원한 까닭은 특별한 증세가 있거나 약 처방을 받은 게 아니라 간단한 검사를 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 측 관계자도 “집에서 기력이 좀 없고 (건강이) 좋지 않아 보여서 입원했는데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 퇴원해 사저에서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사저에서 머물며 병간호를 받은 지 어언 10여 년이 넘어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최측근인 문동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태에 큰 차이는 없으시다.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다는 얘기다. 퇴원 후 김옥숙 여사가 옆에 항상 붙어 계신다. 김옥숙 여사의 건강상태는 괜찮은 상태다”라고 전했다.
현재 노 전 대통령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노 전 대통령 최측근인 손주환 전 공보처 장관은 “거동을 거의 못하시고 말씀도 잘 못하시는 상태다. 그래도 친근한 사람이 보이면 노 전 대통령의 눈빛과 얼굴 등 표정에서 반응이 보인다. 인사하려고 손을 잡으면 손을 꽉 쥔다”라며 “영부인(김옥숙 여사)이 항상 옆에 있으니, 노 전 대통령의 통역사도 영부인이 맡고 있는 셈이다. 가령 영부인이 ‘무엇을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물어보고는 노 전 대통령의 표정을 읽곤 가져올지 말지 알아차린다. 눈빛만 봐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는 6공화국 당시 참모들이나 측근들이 병문안을 오고 있다고 한다. 문 전 비서실장은 “옛날 참모들이나 친인척들, 아들 따님 분들도 자주 오시는 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외부 접촉이 잦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의료진들이 권고해, 최대한 병문안을 자제하는 편이라고 한다. 특히 친한 사람들을 보면 심장, 혈관계 질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 손주환 전 장관은 “가족들 외에 외부 인사들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88)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갑작스레 꽤 오랜 시간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2013년 4월 가벼운 감기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갑자기 급성 폐렴 소견으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한 달간 치료를 받은 후 다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이후 병원 생활이 ‘1년 6개월’ 동안 지속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씨(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식사를 하시는데 무척 어려움을 겪으시고 아직 거동도 상당히 불편하셔서 매일 열심히 재활연습을 하시면서 상당한 의지를 보이고 계시지만,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회복하시는데 무척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라고 전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급성 폐렴으로 입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원을 앞두고 병실에서 찍은 인증샷.
현재 김 전 대통령은 상도동 사저에서 머무르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차남 현철 씨에 따르면 아직까지 김 전 대통령의 몸 상태가 완전한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매일 사저 주변을 산책하고 운동했던 습관도 현재는 잠시 접어두었다고 한다. 현철 씨는 “아직까지는 회복 중이시다. 자유롭게 말씀을 나누시거나, 거동이 편한 상태는 아니다. 회복에 중점을 두며 재활활동을 하시는 중이다”라고 전했다. 지난 새해 첫날에는 정의화 국회의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김 전 대통령의 자택을 찾았으나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고 한다. 김무성 대표와는 간단한 인사만을 나눴다는 후문이다.
지난 1월 23일은 김 전 대통령의 생일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집안에서 식구들과 조용히 축하 파티를 했다고 한다. 현철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직 건강이 완전치 않으시지만 아버지는 어머니 볼에 입을 맞추시면서 ‘사랑합니다’를 외치시고 어머니는 화답하듯 손으로 아버지 볼을 어루만져 주신다. 이런 두 분이 정말 오랫동안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이번 생신에 찍은 사진들을 활용하지 못해 아쉽다”라고 전했다. 사진을 활용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현철 씨는 “가족들하고 케이크 커팅 등을 하며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병원에서 퇴원하시기 전 그 이상의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때 현실 정치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은 현재 비서들에게 현안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받지만 별다른 언급은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가끔 이런저런 멘트를 하는 정도. 현철 씨는 “아무래도 몸 상태가 온전치 못하니까 정치에 대한 별다른 언급을 하시진 않는다. 현안과 관련해서는 꾸준히 보고를 받고 계시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