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현 정부에선 이른바 비서관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이 여기에 해당한다. 통상 ‘문고리 3인방’이라 부른다. 이들은 ‘정윤회 문건’ 파동 후 인적 쇄신 논란의 장본인으로 도마에 올랐지만 박근혜 대통령 신임 아래 건재했다. 여권 내에서조차 교체 요구가 거세게 나왔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일축했다. 정치권에서는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까지 함께할 ‘순장조’가 될 것이란 데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처음 시작은 ‘4인방’이었다. 3인방 외에 지난 2012년 대선 와중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고 이춘상 보좌관도 1998년 박 대통령 보좌진으로 합류했다. ‘막후 비서실장’이라 불리는 정윤회 씨가 박 대통령 대구 달성 보궐선거 승리 후 지인들 추천을 받아 4인방을 ‘세팅’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당시 정 씨는 급여가 없는 입법보조원 자격이었지만 실제론 비서실장을 맡았다고 한다. 정 씨는 정책(이재만)·정무(정호성)·홍보(이춘상)·수행(안봉근)으로 업무를 나눴고, 총괄은 본인이 직접 했다. 정 씨로부터 남다른 신뢰를 받았다는 이재만 비서관이 선임으로서 4인방 중 맏형 노릇을 했던 것도 이 무렵부터다.
정윤회 씨가 박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모셨던 1998년부터 2004년까지 3인방의 정치적 위상은 지금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금이나 그때 모두 ‘일개 비서관’이겠지만 말이다. 당시 ‘박근혜 의원실’에 출입했던 한 언론인의 귀띔이다.
“박근혜 의원과의 만남이나 통화는 정윤회 씨가 도맡았다. 정 씨가 지금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한 번은 3인방 중 한 명에게 박 대통령 관련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를 안 정 씨가 전화를 걸어와 ‘비서관이 뭘 안다고 그럽니까’라고 핀잔을 준 적이 있다. 서열이 분명해 보였다. 3인방도 정 씨를 깍듯이 모셨다.”
정 씨는 2004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은 뒤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에 대해 정 씨는 과거 기자에게 “박 대통령은 큰 정치를 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 (최태민 목사 사위인) 내가 부담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며 비서실장 사퇴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 씨는 그후로도 비서실장 업무를 놓았는지는 의문이다.
정 씨는 여전히 막후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외부에 있었던 정 씨가 박 대통령과 ‘핫라인’을 유지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3인방 덕이었다. 박 대통령은 중요한 사안을 결정해야 할 때 3인방을 통해 정 씨와 긴밀히 협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3인방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심부름이나 하는 일개 비서관’라며 일축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한 친박계 전직 의원은 “박 대통령이 진짜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 씨가 비서실장을 그만둔 후 3인방은 주로 가교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보면 심부름 아니겠느냐. 아무리 비서관이라도 심부름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을 텐데. (정 씨에게 심부름을 보냈던) 그런 기억이 남아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3인방을 연결고리로 움직이던 정 씨 정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도마에 올랐다. ‘삼성동팀’, ‘논현동팀’ 등으로 불렸던 박 대통령 비선 라인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는 상대 진영이었던 이명박 당시 후보 측은 물론 친박계에서도 제기됐다. 박 대통령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다른 친박계 전직 의원은 이렇게 털어놨다. “캠프라는 게 의미가 없었다. 박 대통령이 우리 앞에선 알았다고 하고는 몇 시간 만에 전략이 바뀐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 씨를 중심으로 한 비선 캠프가 움직였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었고, 경선에서 진 후 이에 적지 않은 인사들이 박 대통령에게 실망해 떠났다.”
이러한 비선 논란은 3인방 입지를 오히려 강화시켰다. 3인방이 정 씨와 박 대통령을 잇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들과 접촉하려는 정치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던 것이다. ‘문고리 3인방’의 시작을 2007년부터라고 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2008년부터는 그야말로 ‘3인방 전성시대’다. 2007년 경선 패배, 2008년 ‘총선 학살’ 등을 거치며 여러 친박 의원들이 ‘탈박’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박 대통령은 묵묵히 10년간 자신을 따른 3인방에게 더욱 두터운 신임을 보였다. 정윤회 씨가 비선 실세로 지목받으며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도 오히려 3인방에겐 ‘득’이 됐다.
3인방은 고 이춘상 보좌관을 합쳐 ‘4대 천황’이라고까지 불렸다. 웬만한 초선 의원들은 상대도 안 해준다고 해서 ‘재선급 보좌관’이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박 대통령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한 의원이 타려하자 3인방 중 한 명이 막아섰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모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 대권주자의 문고리 권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친박계 의원의 한 보좌관은 “주위에서 자꾸 이상한 소문이 나니까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다보니 3인방 스스로가 더욱 조심을 했다. 사람도 가려 만나고. 그런 과정에서 오해도 많았던 것 같다”라고 3인방을 두둔했다.
지난해 12월 1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1세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정호성 비서관으로부터 자리 안내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또 다른 친박계 의원 보좌관은 “3인방 자신들이 우리(일반 보좌관)와는 ‘급’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면서 “2009년인가 보좌관들 모임이 있어 불렀는데 ‘거기 앉아서 밥 먹기 불편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우리랑은 겸상하기 싫다는 소리로 들려서 상당히 불쾌해했던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2008년부터 2012년 대선 캠프까지 3인방 업무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라는 목표 아래 명확히 분담돼 있었다. 우선 이재만 비서관은 박 대통령 공약 개발을 주도했다. 경영학 박사라는 점이 감안됐던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이 비서관이 박 대통령 ‘수첩’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3인방 중 가장 권한이 세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 수첩 메모를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수첩엔 인사를 비롯해 정책, 민원 등이 모두 망라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박 대통령이 누군가로부터 인사 추천을 받아 그것을 수첩에 적으면 이를 다시 이 비서관이 검증해 박 대통령에게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다. 이 비서관이 청와대 ‘집사’인 총무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인사위원회에 포함됐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정호성 비서관은 말 그대로 ‘복심’이다. 박 대통령이 외부로 전하는 메시지를 다듬는 것이 정 비서관 역할이다. 이는 그 누구보다 박 대통령 의중을 잘 알아야 가능한 업무다. 2007년 박 대통령 경선 패배 수락 연설문 역시 정 비서관 ‘작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대선 경선 때도 출마 선언문을 비롯해 과거사 사과까지 주요 연설을 맡았다.
이 때문에 당초 연설기획비서관에 발탁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정 비서관은 비서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1부속실로 배치됐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대통령 일정을 챙기는 1부속실은 누구보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신다. 그만큼 대통령 마음을 잘 읽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 비서관이 적격”이라고 설명했다.
안봉근 비서관은 박 대통령 사생활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참모다. 의원 시절 박 대통령은 자신의 휴대폰과 핸드백을 안 비서관에게 맡겼을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친박 중진 의원들조차 박 대통령과 통화하기 위해선 안 비서관을 거쳐야 했다. 박 대통령과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았던 친박 의원들 중 상당수가 아직까지 안 비서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가는 곳이면 언제나 안 비서관이 있었다. 이는 청와대에 들어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과거 영부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제2부속비서관에 임명된 안 비서관은 박 대통령 관저생활 지원과, 현장 수행, 국민 민원 등을 챙겼다. 홍보수석실로 발령 나기 전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이 관저로 출·퇴근 할 때 항상 동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권 출범 후 승승장구하던 3인방은 정윤회 문건으로 잠시 위기를 맞았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거취 문제가 거론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3인방을 다시 품었다. 이재만 비서관이 인사위원회에서 빠졌다지만 여전히 청와대 살림을 맡는 총무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다. 정호성 비서관은 1·2부속실을 모두 맡으며 오히려 힘이 세졌다. 안 비서관은 부속실에서 나와 홍보수석실로 옮겼다. 보직 변경과 역할 조정이 있었지만 여전히 문고리 권력 핵심인 것만은 틀림없다.
친박계의 한 중진급 의원은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누가 뭐래도 박 대통령은 3인방을 내치지 못할 것이다. 3인방은 순장조가 될 것”이라면서 “박 대통령 말대로 자신이 가장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일개 비서관’이 그들 말고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