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꽈배기의 ‘허니(꿀)’, 버터링의 ‘버터’, 칩 포테이토의 ‘칩’을 더한 ‘허니버터칩 3종 세트’. ‘허니버터칩’ 품귀로 한 마트 사장님의 센스 넘치는 상술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오른쪽은 중고거래사이트에 허니버터칩을 개당 500원에 판다며 올라온 사진.
하늘을 봐야 별을 따고, 일단 맛을 봐야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요신문>이 허니버터칩 구매를 위해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누군가는 반나절 만에 다섯 박스를 구했다는데, 다섯 봉지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허니버터칩 생산공장을 공략했다. 허니버터칩은 강원도 원주 문막읍에 위치한 해태가루비 제조시설에서 생산되고 있다. 해태가루비는 2011년 해태제과와 일본의 가루비(Calbee)가 각각 50% 지분을 투자해 만든 합작회사다. 허니버터칩 생산라인은 지난해 10월부터 24시간 풀가동되고 있다. 월 60억 원어치(출고가 기준)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를 기준으로 이론상 하루 생산량이 최대 1만 5000박스(1박스 16봉)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적은 양이 생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편의점 점포만도 2만 점이 넘는 상황에서 24시간 생산라인을 가동한다고 해도 물량 공급이 벅차다는 계산이 나온다. 편의점·대형마트와 같은 큰 거래처를 중심으로 물량이 우선 분배된다고 가정하면 동네 마트나 슈퍼마켓에 분배되는 물량은 극소수라는 이야기다.
인터넷 상에서는 생산지인 강원도 원주에서 비교적 쉽게 허니버터칩을 구할 수 있다는 글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해태제과 소성수 홍보팀장은 “그 이야기는 루머”라며 “물량이 수도권 지역으로 많이 가기 때문에 굳이 비교하자면 서울에서 더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각 지역별로 얼마나 물량이 공급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통상 대형마트·편의점 같은 법인유통망에 50%, 나머지 소규모 유통망에 50%씩 간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다음 행선지는 여의도. 지난해 12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강원도 양구군 을지전망대 장병들을 방문하면서 허니버터칩 5박스를 선물로 가져갔다. 이후 대표실에 ‘구입경로’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 대표 보좌진은 “새벽부터 마트·편의점 등을 돌며 허니버터칩을 몇 개씩 사서 총 50봉을 마련했다”고 한다. 왜 박스째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에 뒤질세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전당대회 당시 “당을 여의도의 허니버터칩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허니버터칩 마케팅에 열심인 모습이다. 여의도 정치권은 더 많은 ‘꿀’을 숨겨두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국회의사당 구내매점 관계자는 “일주일에 한 박스가량 들어오는데, 들어오면 금방 다 나간다. 진열할 틈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무성 대표실에 박스째 준 일은 없느냐 묻자 “아니다. 박스로 구했다면, 우리보다 더 큰 곳에서 얻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시 원점. 이번에는 대형 유통체인인 서울역 롯데마트와 용산역 이마트를 찾았다. 품절표시가 맨 먼저 눈에 띄었다. 스낵 코너에서 진열 중인 한 여성은 “오늘은 안 들어왔다”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판촉사원으로 보이는 또 다른 여성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줄을 서있다. 그 자리에서 몇 봉지씩 팔고 나면 진열할 물량이 없다. 사서 되팔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 구매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냐’ 묻자 “우리야 해태(직원)에 미리 이야기하면 2~3봉지 정도는 얻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편의점의 경우 허니버터칩 구하기는 ‘복불복’과도 같다. 세븐일레븐은 해태로부터 허니버터칩을 일주일에 7000박스가량을 받는데, 물류센터에 입고되는대로 점포별 한 박스씩 배송한다. 세븐일레븐 총 점포수는 7260개. 역시 물량이 모자란다. 모든 점포에 배송할 수 없어 주문이 들어온 점포에 우선 보내고 남는 물량은 지역별·점포별로 순차적으로 배송한다.
GS25의 경우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점포수가 세븐일레븐보다 많아 해태로부터 공급받는 수량 자체가 많기 때문이다. GS25는 점포수에 맞게 입고될 때까지 보관하다가 한꺼번에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중형 마트는 해태 영업사원이 주기적으로 매장에 방문해 없는 물품을 확인하고 이를 다시 채우는 형태로 유통이 이뤄진다. 서울의 경우 두 개 구를 하나의 영업소가 책임지고 있으며 허니버터칩 역시 공급될 경우 곧바로 채워준다. 통상 일주일에 두 박스씩 입고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나들가게의 경우 쿰스나들물류센터에서 배송된다. 물류센터에 일주일에 한 박스씩 입고돼 6봉지씩 묶어 요청이 있는 점포 위주로 배송한다. 일반 도매 물류센터와 거래하는 슈퍼마켓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생산지에서도, 여의도에서도, 대형마트에서도, 편의점에서도 허니버터칩은 그 도도한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고 할까.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기자는 <일요신문>이 입주해 있는 S 빌딩 매점에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한 박스가 들어올 것”이라는 첩보를 미리 입수한 터였다. 이에 2월 10일 화요일 오후 매점을 들러 “입고되기 전에 사전 주문 할 수 있느냐”고 읍소했다.
그러자 매점의 한 직원은 대뜸 “몇 봉지가 필요하느냐”고 되물었다. “4~5봉지”라고 답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2봉지 드릴게요”라고 뒤쪽에 마련된 창고에서 허니버터칩 2봉지를 꺼냈다. 영화 <아저씨>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던 원빈의 포스가 느껴졌다. 그는 “어쩔 수 없다. 찾는 사람은 많은데, 한번 꺼내놓으면 문의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 장사에 방해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허니버터칩 2봉지가 기자의 손에 쥐어졌다.
다음날인 11일 수요일 오후 7시,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 골목. ‘허니버터칩’을 언제,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편의점 직원은 “물류 트럭이 지점별로 돌며 주문한 상품을 내려준다”며 “오늘 밤 12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트럭이 오니까 그 때 한 번 와보세요”라고 살짝 귀띔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곧바로 ‘트럭의 흔적’을 찾아 지역 내 같은 브랜드의 편의점을 찾아다녔다. 한 시간 동안 찾아다닌 곳은 모두 5곳. 역시 허탕. 이틀간 관악구 신림역과 신대방역 근처 마트와 편의점, 슈퍼 등 총 23군데를 찾아갔지만 단 한 봉지도 구하지 못했던 터였다.
밤 12시 40분께. 갑자기 불어 닥친 한파에 언 손을 불고 발을 동동 구르며 발길을 재촉한다. 골목 끝에서 반가운 불빛을 만났다. 터덜터덜 소리를 내는 트럭 한 대가 그 편의점 앞에 멈춰 선 것이다.
“고생하신 보람이 있네요.”
트럭에서 받은 물품을 옮기던 편의점 직원이 기자를 보고 박스를 뜯어 허니버터칩 한 봉지를 건넸다. 계산을 마친 직원은 “운이 좋다. 허니버터칩은 날짜도, 시간도 대중없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동안 다른 매장의 직원들은 ‘허니버터칩’이란 말만 꺼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편의점은 보통 일주일에 한 박스씩 받지만 진열 하자마자 품절이에요. 이틀에 한 번씩 주문은 하는데 그래도 들어오는 횟수나 수량은 항상 같아요. 하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이제는 예약도 안 받아요. 허니버터칩은 운이 좋아야 먹을 수 있는 과자예요.”
신림동 다른 편의점 점주의 시큰둥한 대답에 같은 질문을 얼마나 많이 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동네 슈퍼의 경우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신대방역 근처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슈퍼 사장은 “지난해 여름에 허니버터칩이 처음 나왔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6~7박스밖에 못 팔았다. 찾는 사람은 많은데 주문을 넣어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올해는 한 박스도 안 들어왔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시장 옆에 더 큰 마트 한 번 가봐요. 거긴 매장이 크니까 물량도 많이 들어오겠지”라고 귀띔했다.
슈퍼 사장이 가리킨 마트를 찾았다. 저녁시간이 조금 지나서인지 한산한 매장을 한 바퀴 돌았다. 과자 진열대에 도착해 한참을 둘러봤지만 역시 허니버터칩은 보이지 않는다. 마침 지나가는 매니저가 있어 말을 건넸다. 그는 “여긴 일주일에 두 박스 들어온다. 아마 물어도 없는 걸 알아선지 요새는 손님들도 많이 안 찾는다”고 말했다. 푸념이 이어졌다.
“우리는 해태랑 직거래 합니다. 해태 영업사원이 매장에 방문해서 없는 물품이나 부족한 물품을 채워주고 가요. 허니버터칩은 많이 안 가져와요. 들어올 때마다 가져다준다고는 하지만, 항상 부족하죠. 대형마트가 우선이니까, 우리 같은 개인 사업자는 기다릴 수밖에 없죠.”
허니버터칩 품귀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감자칩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원성이 쌓이는 중이다. 이 같은 전국적 품귀현상과 물량 부족에 관해 해태제과 측은 “아직 출시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백억 원이 드는 생산공장 증설과 같은 투자를 감행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문상현 인턴기자
허니버터칩 vs 미투상품 4종 인턴기자 맘대로 맛평가 “마성의 과자? 별명값은 못해…” 지난해 8월 등장한 ‘허니버터칩’으로 감자칩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짭짤하기만 했던 갑자칩 고유의 맛을 탈피해 달고, 고소하고, 시큼한(?) 맛까지 곁들인 다양한 제품군이 쏟아졌다. 2000억 원대인 생감자칩 시장 규모가 올해 3000억 원대까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소비자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 같은 변화를 이끈 것은 단연 허니버터칩이지만, 오리온 ‘포카칩 스윗치즈’, 농심 ‘수미칩 허니머스타드’ 역시 인기가 만만찮다. 그러자 해태에서도 지난 1월 ‘허니통통’, ‘자가비 허니마일드’ 2종을 후속 출시해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마감 전쟁을 앞두고 당분 섭취가 절실한, 20대 후반의 <일요신문> 인턴기자들이 허니버터칩과 이에 도전하는 나머지 4종을 대상으로 ‘주관적인’ 맛 품평회를 열었다. 개고생을 하며 어렵사리 구한 허니버터칩이 압도적인 승자는 아니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