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패션기업 형지가 ‘에스콰이아’ 운영업체 EFC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최병오 형지 회장과 에스콰이아 역삼 직영점(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1961년 설립된 에스콰이아는 5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제화 브랜드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지나오면서 서서히 위기에 봉착했다. 위기의 진원지를 수입 브랜드의 성장에서 꼽기도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구두 상품권’에서 찾는 의견도 많다.
정장과 구두를 주제로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명 ‘상품권 신공’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구두 상품권은 명목가격보다 약 30% 정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10만 원짜리 구두상품권의 경우 약 7만 원에 사는 식이다. 이 카페 유저들은 상품권 가격의 추이를 그래프로 공유하며 가장 쌀 때 사재기를 해서 모아뒀다 필요할 때 사용한다. 이들은 정기세일 기간에 구입했던 상품권을 이용해 반값에 구두를 구입한다.
이들처럼 구두 상품권이 널리 유통·사용되면서 구두의 실구매가는 낮아졌고 명목 가격은 높아져만 갔다. 상품권을 이용하지 않는 고객의 경우 정가만 놓고 보면 해외 고급 브랜드와 큰 차이가 없어 토종 브랜드의 메리트는 사라져 갔다. 결국 상품권으로 인한 가격 인상이 토종 브랜드의 제살 파먹기로 번진 것이다. 더군다나 구두회사들의 상품권 매출이 연간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달해 쉽사리 손을 뗄 수도 없었다.
지난 2009년 에스콰이아는 경영난 속에 사모펀드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로 매각됐다. 당시 매각가는 800억 원대로 알려졌다. 하지만 매각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더 나빠졌다. 지난 2012년 53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 전환한 에스콰이아는 지난 2013년에도 62억 원의 적자를 내면서 적자폭을 키웠다.
결국 지난해 7월 에스콰이아는 채권단이 회사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부결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지방법원 파산부가 회사의 매각을 결정했다. 지난 1월 23일 매각주관사 딜로이트안진은 인수의향서(LOI)를 제출 받았다. 이랜드, 형지, ㈜하나, 삼라마이더스(SM), 네 곳이 참여했다. 이 중 이랜드, 형지가 ‘빅2’로 꼽혔고, 나머지 두 곳이 복병으로 통했다.
특히 이랜드는 막대한 중국 위안화 자금을 등에 업고 공격적 M&A(인수·합병)로 유명했기에 인수전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혔다. 더군다나 이랜드는 지난 2011년 적자에 허덕이던 엘칸토를 인수해 3년 만에 영업이익을 흑자로 전환시켰고 매출도 두 배가량 늘린 경험도 있었다. 본입찰 전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가 에스콰이아를 인수하면 엘칸토를 흑자 전환시킨 노하우를 투입할 수 있다”며 운영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맞선 형지는 매출 1조 원을 달성한 종합 패션기업이면서도 구두 브랜드가 없어 에스콰이아에 더 큰 욕심을 낼 것으로 예상됐다. 최병오 패션그룹 형지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시 경제사절단에 빠지지 않고 ‘개근’한 대표적 친박 인사로 최 회장의 인맥도 일정부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형지의 싱거운 승리였다. 이랜드와 삼라마이더스는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나는 일부 사업부만 인수하길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매각주관사 딜로이트 안진은 형지가 EFC 인수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형지에 통보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의 M&A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언제 흑자 전환을 할 수 있는지, 기존 사업부와 시너지는 낼 수 있는지 등을 다각도로 살핀다”며 “종합적으로 봤을 때 참여하지 않는 쪽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당분간은 엘칸토에 집중할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본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형지는 지난 2012년부터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우성I&C, 에리트베이직, 까스텔바작 등을 M&A하며 매출 규모를 늘려왔다. 형지는 공공연하게 ‘2017년 그룹 매출 3조 원 달성’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 현재 규모와 비교하면 3년 안에 규모를 3배나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번 에스콰이아 M&A도 이런 계획 하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형지가 인수했다고 에스콰이아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형지는 지난해 8월 ‘아날도바시니’ 브랜드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지난 2009년 형지가 남성복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설립한 아날도바시니는 한류스타 배용준을 기용하며 인기를 구가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에스콰이아도 토종 구두 브랜드 3강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적자 폭이 점점 커지고 있기에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형지에 앞서 토종 구두브랜드 3강인 엘칸토를 인수한 이랜드는 적자 늪에 빠진 엘칸토에 자금 지원을 통해 제품 개발에 힘썼다. 또한 판매가 부진한 매장은 과감하게 접고 자사의 유통망을 이용해 ‘되는’ 매장을 확대해 매출 두 배 성장과 흑자 전환이라는 결실을 냈다. 형지는 이랜드의 NC백화점처럼 자체 유통망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구두상품권에 의존해 오던 에스콰이아를 더욱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계획이 필요해 보인다. 한 M&A 전문가는 “형지는 구두 브랜드가 약하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잘 채운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경영을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에스콰이아가 법정관리까지 가는 부진으로 인해 채권단과 함께 큰 손해를 본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삼성라이온즈 타자 ‘홈런왕’ 이승엽 씨다. 이 씨는 지난 2009년 293억 원에 성수동 에스콰이아 본사 빌딩을 매입했다. 인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에스콰이아는 해당 건물을 판 이후에도 세일앤리스백(매각 후 임대) 방식으로 임차해서 썼지만 회사가 매각되며 해당 건물 임차를 중단하고 본사를 옮겼다. 해당 건물은 한 층이 막힌 데 없이 넓은 구조여서 공실률이 높아 이 씨의 손해도 막심했다고 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